▲ 탁선호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이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농성을 시작한 지 327일 만이었다. 지난달 26일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국회 정론관에서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에게 사과를 했다. 정치인의 기자회견으로는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김무성 전 대표는 건조하게 사과문을 읽어 내려갔고, 사과를 받아들인 기타노동자 방종운은 우렁찬 목소리로, 그러나 절박한 마음으로 노동조합은 혐오의 대상이 아니므로 노동조합에 대한 모든 탄압을 중단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많은 기자들은 ‘김무성 전 대표’를 주어로 해 기사를 써내려 갔고, 플래시는 그의 수북한 수염을 향해 터졌다. 눈에 잘 띄진 않았지만 김 전 대표의 양복에는 기타노동자 임재춘이 달아 준 'NO CORT' 배지가 달려 있었다. 정리해고 투쟁 3천495일째 되는 날의 국회 안 모습이었다.

팩트만 말해 보자. 콜트악기는 세계 전자기타 시장에서 3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던 회사였다. 2006년 한 해만 당기순손실이 있었을 뿐 2005년까지 계속 당기순이익을 유지했고, 차입금 하나 없는 신용등급이 우수한 회사였다. 콜텍도 마찬가지였다. 2000년부터 2006년까지 연평균 90억원이 넘는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는 등 재무구조가 매우 안정적이었다. 회사는 더 값싼 노동력을 찾아 중국과 인도네시아로 떠났고, 현지 생산이 안정되자 국내 공장의 문을 닫고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했다. 그리고 콜트악기와 콜텍은 지금도 정부 선정 세계일류상품생산기업으로서 ‘콜트’라는 브랜드의 기타를 전 세계 61개국에 수출하며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을 받으며 목재 분진과 미세 먼지 속에서 기타를 만들던 노동자들이 요구한 것은 저임금·장시간 노동 해소, 위험한 작업환경 개선, 남녀 차별 시정과 정당한 노조활동 보장이었다. 헌법과 법률에 보장된 노동 3권을 행사한 것뿐이다.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정리해고였다. 아마도 이렇게 오랜 투쟁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지 생각하지도 못했을 테다.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은 이제 플래카드에서 ‘김무성 사과하라’는 문구를 지워 버렸지만, 새누리당 당사 앞을 떠나지 않고 있다. 콜트·콜텍 정리해고 투쟁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때문에 기업이 망한다는 소설 같은 이야기들이 사실로 둔갑해 시중에 떠돌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를 활성화시키고 경제를 살린다는 미명하에 노동자들과 노조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와 공격이 가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 언론과 정치인들은 노조 때문에 나라가 망하는 것처럼 혐오 담론을 생산하고 유통시킨다. 기업들은 부당노동행위를 일삼으며 노조파괴 전략을 실행하고, 경제단체들이 이를 측면 지원한다. 불법을 감시·감독해야 할 노동청과 검찰은 뒷짐을 지고 있다. 이제 제발 강성노조 타령은 그만하자. 대신 ‘보수’라면 마땅히 이런 연구에 관심을 가져 보는 게 어떨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4년 12월 ‘불평등과 성장’이라는 보고서에서 소득불평등 확대가 경제성장률 하락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7월 ‘불평등과 노동시장’이라는 보고서에서 노조 가입률이 하락할수록 소득 불평등이 커진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리처드 프리먼 미국 하버드대 교수 등은 노조 가입률이 높은 도시 지역에서 태어난 저소득층 출신 아이들일수록 계층상승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최근의 실증적인 연구들은 노조 가입률이 높아야 계층상승 기회도 많아지고, 소득불평등은 줄어들며 경제성장률도 유지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기회·계층상승·경제성장·가족·중산층 등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보수’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연구 결과가 아닌가. 보수정치인이라면 미국인들에게 노조 가입을 권유했던 오바마가 지난해 9월8일 보스턴의 노동절 기념식에서 한 다음과 같은 말도 진지하게 고민해 봄직하지 않을까.

“여러분의 부모님들, 조부모님들, 증조부모님들이 바로 우리에게 주 40시간 노동시간을 얻어 내 주신 분들입니다. 그분들이 우리에게 시간외 근무 수당, 최저임금, 그리고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모든 것들을 얻어 내 주신 분들입니다. 우리에게 건강보험과 사회보장연금, 노인의료보험 및 퇴직연금을 가져다 준 것은 그분들의 투쟁이었습니다. 그 모든 것은 노조가 얻어 낸 것들입니다. 그 모든 것에 노조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우리가 오늘 기념하고자 합니다.”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의 투쟁이 3천500일을 넘어 여전히 앞으로 전진 중이다. 사과를 넘어 해결로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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