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욱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경남사무소)

대상판결 : 광주고등법원 2016.8.17 선고 2013나1128 근로자지위확인 등

1. 들어가며

광주고등법원 제2민사부(재판장 홍동기)는 8월17일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포스코사내하청지회 조합원 15명이 주식회사 포스코를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광주고법 2013나1128사건)에서 1심을 파기하고 근로자 파견을 인정했다. 이번에 판결을 받은 포스코 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은 1996년~2002년께부터 현재까지(혹은 해고시까지) 포스코에서 크레인을 이용해 코일·롤 운반, 스크랩 처리, 정비 지원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해 왔다. 원고들은 2011년 5월31일 소장을 접수해 근로자 파견을 주장했으나 광주지법 순천지원(1심)은 2013년 1월25일 패소 판결을 내렸는데 고등법원이 이를 파기한 것이다.

2. 판결의 취지

그간 자동차 회사들의 불법파견 판결이 연이어 선고됐고, 올해 2월에는 현대제철 순천공장(옛 현대하이스코) 비정규 노동자 161명이 제기한 소송에서 순천지원이 근로자 파견을 인정하기도 했다. 이번 판결은 이러한 판결들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으로 ① 연속흐름 공정에서의 도급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확인하고 ② 사용자들이 파견법 위반을 회피하기 위해 협력업체 규모를 키우고 마치 협력업체가 실질적인 권한이 있는 것처럼 위장하더라도 업무의 성질을 고려하면 근로자 파견이라는 점이 바뀌지 않는다는 점을 밝힌 것이다. 즉 포스코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이 수행한 크레인 작업은 정규직이 수행하는 각 개별 공정들(압연·열연·정정라인 등)과 밀접하게 연동돼 있고, 포스코가 통제하는 전산관리시스템(MES)과 진행반 등의 정규직 작업자 지시에 의해 작업이 이뤄진다. 이는 크레인 업무가 단순히 물건을 운반하는 물류가 아니라 크레인 업무 자체가 연속흐름으로 이뤄지는 철강제조 공정의 일부임을 의미한다. 또한 포스코는 2004년 고용노동부(여수지방노동사무소, 현 여수지청)가 불법파견에 대해 ‘위반사항 없음’이라는 결정을 내린 시점을 전후해 적극적으로 파견 징표를 없애려 하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현장대리인을 두고, 협력업체가 작업표준을 제작하게 하고, 협력업체에 일정 범위에서 작업변경 권한을 부여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연속흐름 공정에서 MES의 지시에 의해 혹은 정규직 근로자들과 밀접하게 연동돼 단순 반복적인 작업을 하는 업무의 성질상 협력업체에 몇 가지 외관상 변화가 있다고 해서 근로자 파견에 대한 판단이 달라지지 않는다. 이와 같은 원청업체의 실질적인 통제는 비단 자동차나 철강뿐 아니라 제조업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속성이기도 하다. 이번 판결은 이러한 점을 확인한 의의가 있다. 이하에서 이번 판결이 근로자 파견 관련 몇 가지 쟁점에 대해 주는 시사점을 살펴본다.

3. 자동생산시스템을 통한 지시 역시 사용자 지시에 해당

생산시스템이 갈수록 자동화·전산화되는 현재 너무 당연한 것이지만 ‘사용자’의 지시는 자연인에 의한 지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최근의 생산시스템에서는 자연인에 의한 지시보다 시스템에 의한 지시 비중이 더 크다.

따라서 원청 회사가 자동화된 생산시스템을 통제하는 한 그 생산시스템의 지시에 따라 작업하게 되는 비정규직은 원청 회사의 지시를 받는다고 봄이 타당하다. 이 사건에서도 광주고법은 포스코가 통제·관리하는 MES에 의한 지시를 정규직 근로자를 통한 지시와 달리 평가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이는 ‘정규직 근로자’는 없지만 “원청 회사가 통제·관리하는 공정”(예를 들어 정규직 없이 자동화된 생산공정)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의 경우에도 원청의 “상당한 지휘명령”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4. ‘공동작업’을 장소적 개념이 아니라 기능적 관점에서 파악

지난해 2월26일 대법원 판결에서 말한 ‘공동작업’의 의미를 두고 여러 소송에서 논쟁이 진행 중이다. 특히 불법파견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면서 사용자들이 소위 공정분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고, 정규직 공정은 핵심 공정, 비정규직 공정은 ‘지원’ 같은 부수적 공정으로 구별을 시도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공동’의 개념은 장소적(소위 혼재) 개념이 아니라 기능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데, 이번 판결은 이를 명확히 했다. 그리고 외관상 지원업무로 보이는 경우라도 그 업무가 기능적 측면에서 제품 생산이라는 단일한 목적하에 밀접하게 연동돼 이뤄지는 경우(예, 연속흐름 공정)라면 공동작업에 해당한다는 점도 확인했다.

5. 도급관계에 관한 지시와 사용사업주 지시 간 차이 명확화

이번 소송의 주요 쟁점 중 하나는 포스코가 원고들에게 하는 지시를 도급관계상 수급인의 이행보조자에 대한 지시로 볼 것인지, 아니면 파견근로에 관한 지시로 볼 것인지 여부였다. 이번 판결은 “수급인의 이행보조자에 대한 도급인의 지시는 어디까지나 수급인의 계약 이행을 보조하는 것에 그쳐야 하고, 도급의 목적물에 관한 지시여야 한다. 도급인이 원칙적으로 수급인이 아니라 수급인의 이행보조자를 상대로 지시를 내림으로써 수급인의 이행보조자가 제공하는 노무 과정에 관해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지휘·감독까지 행한다면 이는 근로관계(혹은 파견근로관계)에 관한 지시”라고 함으로써 양자의 구별을 명확히 했다. 이에 따르면 원고들은 포스코로부터 협력업체의 이행보조자로서가 아니라 파견근로자로서 지휘를 받은 것이다.

6. 협력업체의 조직 및 설비와 근태관리·교육 등에 관해

협력업체의 조직 및 설비는 단순히 어느 정도의 조직과 설비가 구비됐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수급업체로서 ‘독립적’ 조직과 설비를 갖췄는지의 문제다. 근태관리와 교육 또한 협력업체가 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얼마큼 ‘독자적’으로 이뤄지는가의 문제다. 즉 협력업체가 일정한 범위에서 조직과 설비가 있고 또 교육과 근태관리를 하더라도 그것이 독립적·독자적이지 않으면 근로자 파견 인정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번 판결도 협력업체들이 ‘독자적’ 사업주로서의 실제와 결정권한이 있는지 여부의 관점에서 파악했다.

또한 포스코는 협력업체가 오직 포스코와의 관계에서만 매출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주장했으나, 파견법상 1개 사용사업주에 전속된 경우에는 아예 파견허가가 나지 않도록 돼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전혀 문제될 사정이 아니다.

7. 협력업체가 한 해고의 효력에 관해

이 사건 15명의 원고들 중 10명이 해고자여서 협력업체가 한 해고의 효력도 주요 쟁점이 됐다. 고용의제 효과 발생 이후에 협력업체가 해고를 한 경우 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와 관련해 아직 대법원 판결이 존재하지 않는다.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건(서울고등법원 2007나56977 판결)에서 쟁점이 됐으나 상고심에서는 다뤄지지 않았다. 광주고법은 고용의제 이후에도 파견사업주와의 근로관계가 바로 상실되는 것은 아니라는 이유로 고용의제 이후에 협력업체(파견사업주)가 한 해고가 아무런 효력이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그러나 고용의제 조항의 취지상 파견사업주가 한 해고를 사용사업주에 의한 해고로 볼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고용의제로 발생한 사용사업주와 해당 근로자 간의 고용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봐 원고들의 정규직 근로자지위를 인정했다.

한편 10명의 해고자 중 3명의 경우는 해고된 지 상당기간(3년6개월) 후에 근로자지위확인 소를 제기했으나 이 역시 고용의제 효과를 배제할 특별한 사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이번 판결이 고용의제 이후 파견사업주에 의해 행해진 해고가 아무런 효력이 없다고 보기 어렵다고 한 점은 수긍할 수 없지만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미 발생한 고용의제 효과가 소멸되지 않는다고 본 점은 타당하다.

8. 나가며

이번 판결은 원고 숫자(15명)에 비해 참으로 오래 걸렸고 소송 진행 과정에서도 우여곡절이 많았던 사건이다. 필자는 2심부터 관여했는데 2심 기간만 3년6개월이 걸렸고 1심부터 보면 무려 5년3개월이 걸렸다. 위 기간 동안 재판이 추정됐던 것도 아니고 대부분 실제로 진행됐으며, 현장검증만 두 차례 실시되는 등 매우 충실하게 심리한 결과 법원이 위와 같이 판단한 것이다. 포스코는 불필요한 상고 등의 조치를 할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불법파견의 범죄를 범해 온 사실을 인정하고, 2만여 포스코 비정규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고 직접 교섭에도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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