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하경 변호사(법률사무소 휴먼)

소송은 승패가 있는 게임이다. 하여 노동자 편에서 이기기도 한다. 그러나 개별 전투에서 이긴다고 하여 전쟁에서의 승리까지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전투를 벌이는 것 자체가 노동자에게는 전쟁에서의 패배로 필히 이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할 일이다.

부당 전보발령을 받은 어느 노동자가 모든 법적 절차에서 이기는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노동자가 인사권자에게 괴롭힘을 당하다가 결국 이유 없이 원거리 전보를 당하고, 억울함을 하소연할 곳 없이 끙끙 앓던 중 생활의 불편과 생계의 곤란마저 깊어져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한다. 우선 노동자 개인을 부당하게 인사발령한 사용자 개인은 법적 구제절차에서 ‘회사’라고 지칭돼 등장한다. 노동자를 공격한 사용자 개인은 인격이 소거된 채 조직 전체의 이름 속에 녹아 버리고 노동자로서는 거대한 산을 비로소 눈으로 확인하는 것부터가 모든 절차의 시작이 된다.

법적다툼이 시작되면 사용자는 사내 직원들에게 해당 노동자에 대해 좋지 않은 말들을 퍼뜨린다. 한때 동료였던 이들은 현직 ‘을’의 지위로 인해 사용자를 위해 해당 노동자를 비난하는 내용의 진술을 제출한다. 그러나 이 노동자는 지방노동위원회에서 이긴다. 그리고 회사는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하고 다시 번거로운 절차들을 거쳐 또 이 노동자가 이긴다.

그러자 회사는 행정법원에 중앙노동위원회 결정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한다. 이제 본격적인 법원에서의 소송전이다. 노동자는 소송 준비와 부담감에 일상과 직장생활이 더욱 불안정해진다. 변호사라도 선임하게 되면 그 비용은 노동자를 더욱 짓누른다. 다행히 1심에서 이긴다. 그리고 2심에서도 이긴다. 소송 중 회사가 제출하는 글과 말들로 인해 노동자는 온갖 인격적인 상처를 입는다. 회사는 이 노동자에게 일거리도 주지 않으며 동료들은 그의 근처에 다가오지 않는다. 철저한 고독의 고통이 끝 모르게 이어지는 것이다. 한편 대법원에서도 승소해 확정판결을 받는다. 노동자가 원직복직을 하거나, 회사와의 합의로 얼마간의 금액보전을 받고 스스로 퇴사하거나 하는 결론이 있을 수 있겠다. 실무에서는 체불임금 외에 정신적 피해배상금은 거의 인정되지 않는다. 남은 것은 노동자가 겪은 고통의 시간들이다.

사용자 개인이 고통받는 일은 없다. 모두의 책임은 무책임이라고 했던가. 회사는 회사 비용으로 소송을 했고, 소송 진행 중에 회사 업무가 방해받는 일도 크게 없었다. 패소비용 푼돈 지불하면 그만인 것이다. 승패와 관계없이 시간은 언제나 회사 편이다. 회사는 조직에 저항한 노동자를 무대 위에 올려놓고 모든 소송이 끝날 때까지 구성원 모두에게 전시한다. “자 봐라. 너희도 이렇게 될래?”

‘상처뿐인 영광’을 뒤로한 한 명의 노동자가 다시 전쟁터로 들어가고, 다른 곳에서 또 다른 노동자가 똑같은 전투를 반복한다.

노동자는 소송과 같은 전투를 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불가피한 경우는 분명히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투의 룰을 먼저 손봐야 하고, 나아가 악화일로의 전쟁을 공정한 평화로 전환하는 방법을 노동자들 스스로, 그리고 집단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첫째, 노동법원을 신설해 노동사건 구제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 노동위원회부터 대법원까지 이어진 절차를 거쳐 부당한 인사권 행사임이 확정돼도 사용자가 벌금 처분을 받고 행정처분을 이행하지 않으면 노동자는 별도로 민사소송을 해야 하는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진다. 원상회복과 보상에 이르기까지, 노동위원회와 별도 민사소송까지 포함하면 노동자 입장에서는 사실상 7심에서 10심까지 겪게 되는 것이다(지노위-중노위-행정 1·2·3심-파기환송심-대법원 확정, 민사 1·2·3심).

노동사건은 일반 민사와 달리 생계와 직결된 일이 많으므로 구제절차의 신속성과, 집중심리를 위한 법관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이에 2005년 사법개혁추진위원회가 제안한 ‘참심제 노동법원’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 참심제란 직업판사 외에 노사를 대표하는 명예판사가 판결에 참여하도록 해서 재판을 공정하고 빠르게 하는 제도를 말한다. 노동분쟁 사건을 노동법원에서 일원화해 처리하게 되면 실질적인 구제와 조정이 용이해진다.

둘째,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이다. 최근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자동차 배기가스 조작 문제 등이 발생하면서 기업의 횡포와 도덕적 해이가 초래한 사회적 피해에 대해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하다. 이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입법이 검토되고 있는데, 해당 제도는 노동사건에서 회사의 부당한 인사권 전횡에 책임을 묻고 재발을 막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부당해고·부당징계·위법한 구조조정·부당노동행위 등 사용자 불법행위에 대해 회사가 실제로 타격을 입을 만큼의 상당한 손해배상금을 반드시 인정해야 한다.

셋째, 노동조합 가입률의 혁신적 제고(提高)다. 우리나라 노조가입률은 10% 내외다. 비정규직의 경우 1.5%에 불과하다. 노동자들이 뭉쳐 있지 않으면 사용자의 인사권 남용과 근로조건 저하가 빈번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재론을 요하지 않는다.

새누리당 정권하에서 고용노동부가 본분과는 정반대로 노동조합 활동을 저해하는 처분을 내리고, 정부는 대놓고 반노조적 입장표명을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정부는 사실 헌법 제33조에 따라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활동하는 것을 적극 권유하고 지원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직무유기, 나아가 헌정질서 유린이다. 범정부 차원의 노조가입률 제고정책을 언제나 기대한다. 또 한편으로는 노동자들 스스로 집단적 선택으로 정치세력화해서 내 자신을 지키는 ‘이기적 행위’들을 통해 분쟁을 미연에 방지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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