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석호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회의 내내 모두가 착잡하고 무거웠다. 지난 2일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는 총원 53명 중 52명이 참석했다.

한상균 위원장은 서울구치소에서 변호사를 통해 사퇴서를 제출했다. 지난달 31일이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민주노총 집행부 몇몇은 위원장 생각을 돌리려고 나름의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한 단어 한 문장 남김없이 고뇌가 서리서리 맺혀 있었다.

"한상균은 민주노총 위원장직을 사퇴합니다. 고민 끝에 내린 위 결정사항을 상집·중집에 보고드립니다. 민주노총과 이천만 노동자를 위한 결단이오니 절차에 따라 신속하게 집행하시어 더욱 거세지고 있는 박근혜 정권의 반노동 반민주 정책에 맞서 강력한 투쟁으로 대반격을 이끌 지도부를 세워 주십시오. 노동의 위기, 민주노총의 위기 돌파를 위해 직선지도부를 세웠으나 혁신을 통한 희망을 만들어 내지 못해 죄송하고 그 책임을 통감합니다. 모든 것은 위원장의 무능함 때문입니다. 미안합니다. 성찰의 시간을 갖겠습니다."

위원장의 갑작스런 사퇴 표명에 민주노총 안팎은 혼란에 빠졌다. 9월27일로 예정된 공공부문 파업과 11월12일로 계획된 민중총궐기대회를 앞두고 사퇴하면 어떡하란 말이냐는 탄식이었다. 갑을오토텍과 유성기업 등 각종 현안 투쟁은 어떡하란 말이냐는 탄식이었다.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넘기려는 정파논리가 작동하기도 했다. 누구는 반대세력이 흔들어서 그럴 것이라며 흥분했다. 누구는 정책대의원대회에서 위원장의 정치방침 의중이 반영되지 않아서 그럴 것이라고 분석했다. 직전의 정책대대에서 진보정당 건설 방침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충돌했던 터라, 이 같은 논리는 그럴듯하게 포장됐다.

한상균 위원장의 고민은 올해 1월 총파업이 무산되면서 시작됐다. 일반해고를 용인하고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을 허용하는 행정지침을 노동부가 밀어붙였는데도 총파업은 실패했다. 그 뒤로 한 위원장은 정책대대를 통한 혁신의 출발을 갈망했다. 그러나 정책대대는 이렇다 할 혁신을 결의하지 못했다. 민주노총 최초의 정책대대는 정치방침에서 정파 논리가 작동하면서 파행으로 끝났다. 감옥에 갇힌 처지에서는 난국을 극복할 수 없다고 위원장은 판단했다.

이날 오후 2시 조금 넘어 중앙집행위가 시작됐다. 최종진 위원장 직무대행과 이영주 사무총장은 위원장 사퇴에 따라 동반 사퇴한다면서 회의장을 나갔다. 김종인 부위원장이 임시의장으로 회의를 진행했다. 김 부위원장은 나머지 임원들도 거취를 함께할 것이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으나, 중앙집행위 성원들은 사회를 보게 만들었다. 4시간에 걸친 논의 끝에 중앙집행위는 결론을 내렸다.

"한상균 위원장 사퇴 표명과 관련해 위원장 의사를 존중하나 중앙집행위 만장일치 결정으로 사퇴 재고를 요청한다."

5일 김종인 부위원장·변성호 전교조 위원장·임순광 비정규교수노조 위원장·강규혁 서비스연맹 위원장·김창곤 인천본부장 5인이 면회를 가서 중앙집행위 뜻을 전달하기로 했다. 사퇴서에서 밝힌 대반격 지도부와 혁신에 대한 의중도 확인하기로 했다. 그걸 토대로 9일에 회의를 속개하기로 했다.

누구 하나 뺄 것 없이 진정성 있게 회의에 임했다. 감옥에 있는 위원장 책임이 아니라는 것에 일치했다. 민점기 전남본부장은 본부에서 한 달에 한 번 찾아뵙는다는 위원장 노모 얘기를 전했다. 8월 초 통일선봉대가 찾아가 마당을 청소하고 큰절을 올리는데 “다음엔 상균이하고 같이 오니라” 하셨다면서, 사퇴 표명 소식에 어머니가 생각났다고 울먹였다.

중집 성원들은 그냥 재고만 요청해선 안 된다는 판단을 했다. 위원장의 사퇴 결심엔 이유가 있는데, 그 상황은 그대로 놔둔 채 재고를 요청한다는 것은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논의는 9일 속개되는 중앙집행위에서 하기로 했다.

자칫하다간 논의가 책임 공방으로 갈 수 있다. 그럴 거면, 차라리 논의하지 말아야 한다. 위원장이 사퇴서에서 표명한 대반격 지도부와 혁신은 바깥에서 어떻게든 의기투합해야만 가능한 과업이다. 민주노총 실력은 드러날 대로 다 드러났다. 더구나 위원장은 감옥에 있다. 어느 일방의 노력만으론 불가능한 과제다. 그러려면 지도집행력을 통합해야 하는 전제가 깔린다. 이는 사람 문제가 걸리는 지점이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한편 정책대대를 거치며 첨예한 노선갈등으로 비화한 정치방침 문제도 골칫덩이다. 정책대대 이전에 의견을 종합하고 조율했다면 충분히 합의할 수 있었던 내용인데, 과도하게 노선이 작동하는 바람에 꼬여 버렸다.

아무튼 중앙집행위는 위원장이 사퇴를 재고할 수 있도록 다각도의 고민을 하고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재고를 끌어내려면, 바깥에서 먼저 결단하는 헌신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파들이 주판알 굴리다가 실패할 수도 있다.

나는 위원장 한상균이 아니라 감옥에 갇힌 인간 한상균을 생각한다. 3년을 꼬박 살고 나와서 몇 년 되지도 않아 또 5년을 선고받았다. 홀로 밥 먹다가 자신도 모르게 눈물 뚝뚝 떨어지도록 만드는 곳이 감옥이다. 나는 감옥살이 뭐 별 것 있나 하고 쉽게 얘기하는 운동가들을 경멸한다. 그런 부류 치고 감옥에 앞장서 가는 경우를 못 봤다. 입으로만 할 것 같으면 나는 내일 혁명을 위해 총을 들자고 한다.

고통 그 자체인 감옥 안에서 수없는 밤을 지새우며 고뇌했을 인간 한상균이다. 그가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존중하련다. 어떤 결론이더라도 인간 한상균을 향해선 운동이 어떻고 민주노총이 어떻고 입방정 떨지 않으련다.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jshan896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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