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이달 하순부터 연쇄파업에 돌입할 예정인 가운데 성과연봉제 도입과 임금체계 개편을 둘러싼 노정갈등이 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올해 상반기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성과연봉제 도입을 밀어붙였던 정부는 임금체계 개편을 하반기 주요 정책과제로 설정한 상태다.

20대 첫 정기국회가 지난 1일 개원하면서 이른바 노동 4법 향방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4·13 총선이 야당 승리로 끝나면서 “입법이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높았다. 그런데 최근 박근혜 대통령을 필두로 고위 당정청 인사까지 나서 불씨 살리기에 여념이 없는 모양새다.

4일 노사정에 따르면 금융노조는 성과연봉제 반대를 내걸고 23일 파업에 나선다. 철도공사·건강보험공단·가스공사를 비롯한 공공운수노조 산하 15개 사업장과 보건의료노조는 각각 27일과 28일 파업에 돌입한다.

◇노동개혁 밀어붙였던 정부, 동력 떨어지나=정부는 그동안 노동계 반대에도 △공정인사(일반해고) 지침·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지침 발표 △임금피크제·성과연봉제 도입 △공공부문 복지 축소 △민간기업 단체협약 시정 같은 정책을 강행했다.

하지만 정권 후반기에 들어선 탓인지 탄력은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노사관계 바로미터로 평가받는 현대차 노사가 최근 “임금피크제를 확대 시행하지 않겠다”고 합의한 것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도입 성과를 앞세워 민간부문 확산을 공언했지만 뜻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현대차 노사가 하청업체 근로자들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연일 비판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내세워 노조 동의 없이 임금체계 개편에 나설 수 있다는 신호를 주고 있지만 실제 법원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불명확하다”며 “공공기관에서 소송이 진행될 것이기에 위험부담을 안고 뛰어들기보다는 소송 결과를 본 다음 판단하자는 게 경영계의 대체적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공공기관들이 노조 또는 노동자 동의를 받지 않고 이사회 결의로 임금피크제·성과연봉제 도입을 위한 취업규칙 변경을 강행하자 노조들은 줄소송에 나섰다. 심지어 국가인권위원회도 공정인사·취업규칙 지침을 문제 삼았다. 인권위는 “두 지침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안내서인데도, 노동부가 사업자 지도·감독·교육 기준으로 삼으면서 마치 구속력이 있는 기준인 것처럼 오해된 측면이 있다”고 제동을 걸었다.

◇금융·공공부문 파업, 노정관계 변곡점 될까=노동계는 박근혜 정권과 맞서면서도 노동정책을 변화시키거나 노정관계를 새롭게 정립할 만한 역량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사실상 노동 4법을 제외하고는 이른바 노동개혁이라고 불렸던 정부 정책 대부분이 실행됐다. 공공기관 복지축소나 임금피크제가 그렇다.

노동계는 “금융·공공부문 노조 파업을 계기로 노동이슈를 노동계에 유리하게 재편해야 한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내년 대선까지 이어질 권력 재편기에 노동이슈를 선점하겠다는 의지도 엿보인다.

관건은 파업 강도와 지속성, 그리고 우호적 여론의 뒷받침이다. 한 공공기관 노조 관계자는 “이번 파업은 성과연봉제에 반대하고 노사합의 없이 각종 정책을 밀어붙인 정부에 항의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며 “억눌렸던 목소리가 분출되는 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조건 후퇴와 정부 강압에 대한 조합원들의 반발이 거세다는 설명이다. 금융노조는 조합원 9만명, 공공운수노조는 조합원 6만명 참여를 목표로 파업을 조직 중이다.

한국노총은 이달 중으로 국회 앞 천막농성에 들어가면서 파업 연대전선을 확대하고 11월 전국노동자대회로 이어지는 투쟁을 계획하고 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정기국회 개원과 금융·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파업에 맞춰 투쟁을 확대하고 노동자 목소리를 키워야 한다”며 “조만간 노동계 투쟁을 지지하는 단체들과 모임을 만들어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우호적 여론 조성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과 93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공공성 강화와 공공부문 성과퇴출제 저지 시민사회공동행동은 지난 1일 서울역광장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선전전을 하면서 여론 조성에 나섰다.

◇노동 4법의 운명은?=노동계 투쟁은 노동 4법의 향방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 노동계 저항이 거셀수록 이미 반대 뜻을 밝힌 야당이 힘을 얻는다. 정부·여당이 관련 입법을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이 조성된다. 여소야대 국회는 정부·여당의 의지를 꺾기에 충분하다. 노사정 관계자 대부분이 4·13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하자 “노동입법은 사실상 어렵지 않겠냐”고 전망한 이유다.

변수는 박근혜 대통령이다. 지난달 15일 광복절 축사에서 노동입법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한 것이 단순한 '오기 정치'로만 보이지 않는다. 교체설이 나돌았던 이기권 장관도 유임했다. 안보 이슈와 함께 대선을 앞두고 이슈화할 경제 어젠다로 상정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총선에서 임금피크제를 청년고용과 매칭했듯이 말이다. 박 대통령이 깃발을 들자 같은달 25일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 황교안 국무총리와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이 만나 노동 4법 재추진 의사를 밝혔다.

그럼에도 노동 4법이 국회 문턱을 넘기는 힘들어 보인다. 각종 국정현안을 둘러싼 여야 대립이 갈수록 심화하는 가운데 야당이 입장을 바꿀 만한 소재가 없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노동 4법 반대 입장을 바꿔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로 범위를 좁혀도 마찬가지다. 4·13 총선에서 노동문제에 중립적 입장을 취했던 국민의당은 오히려 개원 후 환경·노동 현안에서 더불어민주당·정의당 등 야당과의 공조를 강화하고 있다. 환노위는 야당 10명, 여당 6명의 압도적 여소야대 상임위다.

환노위 여당 의원들의 속내도 복잡하다. 한 새누리당 의원실 관계자는 “환노위는 야당 의원이 다수라 노동 4법이 상정되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며 “그럼에도 당 차원에서 추진할 경우 의견을 따르지 않을 수 없고 노동계 눈치도 봐야 해서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환노위에는 노동계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한국노총 출신 새누리당 의원이 3명이나 포진해 있다.

여당 간사인 하태경 의원은 최근 이기권 노동부 장관을 상대로 한 질의에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청년일자리인데 파견법을 포함한 노동 4법에 청년이 없다”고 지적한 뒤 “청년일자리가 없는데도 대통령이 요구한다고 해서 하면 되느냐”고 따져 물었다. 마치 노동부가 잘못하고 있다는 뉘앙스였다. 하태경 의원실 관계자는 “노동 4법에 반대한다는 뜻은 아니었다”고 해명했지만 같은당 다른 의원실 관계자는 “하 의원이 비박계로 분류되는 것을 감안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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