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사용자들의 사용자협의회 일방 탈퇴로 산별교섭의 판이 흔들리는 상황인데도 김문호(55·사진) 금융노조 위원장의 표정은 차분했다. 노조는 다음달 23일 총파업을 준비 중이다. 노조가 파업 준비에 나서자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는 지난 26일 사실상 자진 해체를 선언했다. 산별노조를 흔들어 사업장 단위로 쪼개겠다는 의도다. 김 위원장은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제대로 된 총력투쟁으로 노사관계를 정상화시킬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매일노동뉴스>가 29일 오전 서울 다동 노조 투쟁상황실에서 김 위원장을 만났다. 그는 “성과연봉제는 박근혜 정부 노동탄압의 정수로, 이를 막아 내는 것에 금융산업과 한국 노동운동의 미래가 걸렸다”며 “10만 조합원과 함께 사즉생의 각오로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즉생 각오로 선봉에서 싸울 것"

- 파업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지부 순회 연석회의를 하고 있는데 현장 분위기는 어떤가.


“하루에 두세 곳을 방문한다. 이달 중순 무렵부터 현장 분위기가 확 달아오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34개 중 절반 이상의 지부가 분회 순방과 홍보물 배포, 조합원 교육에 나선 상태다. 모두가 열심이지만 NH농협지부의 준비 상황이 눈에 띈다. 소산별 형태의 조직인데, 지부 간부와 지역본부 간부가 전체 조합원 1만5천500명 중 휴직자와 연수자를 제외한 전원인 1만4천200명을 총파업에 참여시키기로 의견을 모으고 이를 추진하고 있다. 지방 조합원이 파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227대의 버스까지 예약을 마쳤다. 김영준 씨티은행지부 위원장이 한 말도 인상 깊다. ‘총파업 성공 여부는 지부에서 얼마나 발로 뛰었느냐에 달려 있다’고 했다. 전체 조합원(2천500여명) 참여를 결의하고 이달 8일부터 분회 순방을 하고 있다. 대다수 지부들이 열심히 발로 뛰고 있다.”

- 2년 전인 2014년에도 14년 만에 파업을 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참여를 목표로 하고 있나.

“당시 파업은 정부의 공공기관 복지축소 시도가 도화선이 됐다. 대부분의 공공부문이 파업을 성사시키지 못했는데, 노조는 금융공기업 조합원을 중심으로 3만명이 파업을 했다. 정권의 노동탄압에 맞서는 파업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아쉬움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9·23 총파업 집결지는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이다. 좌석에 7만명, 그라운드에 3만명이 운집할 수 있는 공간이다. 3만~4만명의 참여로는 우리의 분노와 의지를 충분히 드러낼 수 없다. 조합원 10만명 중 휴직자와 연수자를 제외한 실근무자 전체인 9만명을 참여시키는 것이 목표다. 특정 산업 종사자 전원이 일시에 일을 멈추는 행동으로 의지를 표현한다면 정부와 사용자의 태도가 달라질 것이다. 대공장 파업도 힘들지만 노조 조합원의 경우 전국 1만개 이상의 영업점에 흩어져 있다. 조합원들을 한데 모으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조합원들은 고과와 승진에 영향을 미치는 관리자와 같은 공간에서 일한다. 땀과 피눈물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 금융산업의 총파업이다. 넘어야 할 높은 산과 벽이 있겠지만 극복할 것이다. 실근무자 전원 참석을 추진하겠다.”

"성과연봉제는 '박근혜표 노동개악' 결정판"

- 성과연봉제 저지가 파업 목표다. 반대하는 이유가 뭔가.


“박근혜 정부 들어 노동탄압이 그치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일방 발표한 공정인사(일반해고) 지침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지침이 대표적이다. 해고를 쉽게 하고 임금체계를 사용자 마음대로 바꿀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2대 지침이 핵심적으로 녹아 있는 게 바로 성과연봉제다. 오죽하면 박병원 한국경총 회장이 '성과연봉제가 도입되면 해고도 명예퇴직도 필요 없다'고 했겠는가. 정부와 사용자가 원하는 노동개악의 핵심이 성과연봉제라는 얘기다.

금융권에 성과연봉제가 도입될 경우 금융노동자의 일터는 지옥으로 변할 것이다. 지금도 금융노동자들은 사측이 요구하는 과도한 목표와 실적경쟁으로 매일 전쟁을 치르고 있다. 거기에 개별 성과연봉제가 들어서면 동료가 적이 된다. 동료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된다. 영업점 단위 협업이 완전히 무너진다. 이뿐 아니다. 동료 간 실적경쟁으로 불완전 판매를 낳을 수밖에 없다. 소비자 편의를 위한 금융판매가 사라지고 모든 영업활동이 개인 실적을 쌓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다. 피해는 모두 국민이 지게 된다. 노조가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이유다. 금융권에서 성과연봉제를 막지 못하면 전체 산업과 민간으로 확산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한국 노동운동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노조가 선봉에서 성과연봉제를 막아 낼 것이다.”

- 사용자협의회가 개별교섭을 위해 해체 수순을 밟고 있는데.

“예상한 일이었다. 표면적으론 민간은행 사용자들이 개별교섭을 통해 성과연봉제를 관철시키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정부의 강력한 개입이 있었을 것으로 확신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악의 일환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산별노조 중 하나인 금융노조를 약화시키려는 책동이다. 정부가 해 온 그간의 노동탄압을 감안해 보면 산별노조 무력화 기도는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다. 언제 감행하느냐 하는 시기의 문제였을 뿐이다. 총파업을 시작으로 하반기 총력투쟁을 제대로 하는 것만이 사태를 원상으로 되돌릴 수 있는 해법이다. 다른 말은 필요 없다. 노조가 행동과 힘을 보여 줘야 산별중앙교섭이 재개될 수 있다. 은행장들의 사용자협의회 탈퇴를 인정하지 않는다. 노사합의 위반이다. 하영구 사용자협의회 회장에게 산별중앙교섭 재개를 요구한다. 대각선 교섭 같은 다른 전략적인 교섭 방식을 고민할 것이다.”

"공공부문 노동자들 덕분에 힘납니다"

- 정부와 사용자들의 태도가 완강하다. 파업의 현실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성과연봉제 철회다. 파업 후에도 사측과 지속적으로 교섭해 나갈 것이다. 다만 이후 교섭에서도 사측의 태도 변화가 없으면 10월 이후 2~3차 파업, 무기한 총파업을 추진하겠다. 정부와 사용자들이 금융권 노사관계에 파국을 원한다면 그에 맞춰 행동하겠다.”

- 금융공기업들은 이사회를 거쳐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산업은행·기업은행 등에서 조합원들이 눈물을 흘리며 동의서에 서명했다. 사측의 강압에 의한 것이고, 명백한 인권유린이자 불법이다. 대다수 법률가들이 불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문제가 발생한 사업장의 경우 전문가 자문을 거쳐 법리를 구축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준비가 되면 무효소송을 할 것이다. 결국 법원에 의해 불법 이사회 의결이 무효화될 것으로 확신한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95.7%의 찬성률로 총파업을 결의해 준 조합원들에게 감사드린다. 금융노동자 생존권이 달린 싸움이다. 이번에야말로 우리의 분노와 열망이 한데 모여야 한다. 10만 조합원 직선제로 당선된 위원장으로서 하는 당부이고, 명령이기도 하다. 파업 현장에서 보자. 총파업을 성사시키기 위해 불철주야 현장을 누비고 있는 지부 간부 동지들에게도 감사드린다. 이번에는 보여 주기 식이 아닌 위력적인 총파업을 성사시켜야 한다. 파업의 중요성을 홍보하고 교육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끝으로 하반기 총력투쟁을 진행 중인 양대 노총 공공부문노조 공동대책위원회 동지들에게 감사드린다. 구체적으로 파업을 조직 중인 철도·건강보험·가스부문 노동자 동지들에게 지지와 격려를 보낸다. 금융노동자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우리의 투쟁에도 무척 중요한 파업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