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1천만명 중에 10만명만 서울에 모여서 하루만 집에 가지 말고 싸우면 세상을 바꿀 수 있어.”

어느 집회였던가, 마이크를 잡으신 이소선 어머니께서 노동자들에게 호소하신 말씀이다. 늘 그렇듯 길게 이어지던 말씀 중에 찰나와 같이 지나간 문장이었지만, 규모 있는 집회나 싸움을 준비할 때마다 기억 어디선가 나타나 머리를 때리는 말씀이기도 하다. 민주노총 창립 당시 그 누구보다 기뻐하시며 눈물을 흘리셨던 어머니는 민주노조운동 곳곳에 셀 수 없는 가르침을 주셨으며, 그 가르침의 핵심은 ‘낮게 함께 옳게’가 아닐까 싶다.

오늘날 ‘낮은 곳’에 있는 노동자는 바로 중소·영세·비정규 노동자라는 데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미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선 비정규직이 서지 않고서는 민주노조운동의 미래도 마냥 밝지만은 않다. 민주노총이 3기에 걸쳐 전략조직사업에 방점을 찍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앞선 비정규직 조직화 사업에 더해 최근에는 비정규 노동자가 보다 쉽게 민주노조운동에 함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직형태를 고민하고, 비정규직 관련 임금·단체협상 요구안 수립, 의결기구 할당제 도입 등 조직혁신 사업을 병행 추진하고 있다. 또 최저임금 1만원 쟁취와 ‘노조 할 권리 쟁취’ 등의 의제를 전략투쟁과제 전면에 내건 것도 이러한 맥락이기도 하다.

양극화의 주범은 다름 아닌 재벌이다. 노동시장 분할과 비정규직 확산정책 속에 2001년 2.1%에 머물던 최저임금 적용률이 올해 18.2%로 급증하는 등 저임금·불안정 노동이 크게 증가했다. 1천조원에 가까운 재벌 사내유보금이 드러내듯, 같은 기간 동안 저임금 노동자의 희생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곳간을 불려 온 재벌은 최근 구조조정 국면에서도 비정규 노동자에게 고통을 집중시키고 있다. 재벌체제를 무너뜨리지 않고서는 그 어떤 노동자도 생존권 투쟁에서 한발 더 나아갈 수 없으며,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비정규직·저임금·불안정 노동 역시 해결하기 어렵다.

이 싸움을 펼치는 과정에서 노동자 연대투쟁은 매우 소중하고 절실하다. 이는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함께’의 가치이기도 하다. 더 큰 목소리와 더 힘찬 싸움은 노동자를 승리의 곁으로 한 발 가까이 다가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조직된 노동자와 미조직 노동자가 한목소리를 내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싸우고, 민간부문과 공공부문이 함께 싸우고, 제조업과 서비스업 노동자가 힘을 모으는 것은 승리의 관건적 요소 중 하나다. 최근 공공부문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과퇴출제 저지와 공공성 강화 투쟁에 민주노총 소속 모든 산별연맹이 주목하고, 더 큰 싸움으로 만들어 내기 위해 힘과 의지를 모으려 노력하는 과정 역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리고 함께하는 과정에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옳게’의 중요성이 아닐까 싶다. 노동자를 위한 올바른 길, 모든 노동자가 함께 사는 길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그 요구와 투쟁의 정당성에 있기 때문이다. 적절한 타협과 거래를 통해 순간을 모면하려는 유혹, 더 크게 힘을 합치기보다는 지금 자기 집을 지키려는 욕망, 양비와 중립을 가장해 결국은 힘이 센 자의 손을 들어주는 현학이 혹시 우리 안에 있지 않은지, 늘 어머니께서 주신 거울을 들여다봐야 한다. 이들 모두가 어머니께서 그토록 강조하셨던 단결과 연대를 가로막는 적들이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눈물 속에 출범한 민주노총은 아직 갈 길이 멀다. 더 낮게, 더 함께, 더 옳게 나아가기 위한 뼈를 깎는 노력과 실천이 필요하다. 오랜 기간 이어져 온 민주노조운동의 영광과 상처를 이어받은 민주노총은 탄압과 시련 속에서도 그 역할을 잊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유성기업과 갑을오토텍 등 수많은 사업장에서 오직 이 ‘민주노조’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 온몸을 내던지고 있다. 투쟁하는 노동자를 통해 어머니의 말씀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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