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공기업에 이어 시중은행을 포함한 민간금융기관도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 탈퇴를 결정했다. 정부발 성과연봉제 확대 움직임에 편승해 산별교섭 대신 개별교섭을 추진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금융노조(위원장 김문호)는 사용자협의회 탈퇴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각 조직에는 “개별교섭 금지령”을 내렸다. 노조가 예고한 총파업을 한 달여 앞둔 상황에서 금융권 노사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사용자들 '개별교섭'으로 태세 전환

28일 노동계에 따르면 사용자협의회는 지난 26일 오전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에서 제5차 대표자협의회를 열었다. 27개 회원사 중 22곳이 참여했는데 모두 사용자협의회 탈퇴를 의결했다. KB국민은행과 부산은행을 비롯한 14개 시중·지방은행이 포함됐다.

이날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5개 금융기관도 조만간 공식적으로 탈퇴 절차를 밟을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써 올해 3월 말 사용자협의회를 탈퇴한 7개 금융공기업을 포함해 노조 산하 34개 사업장 대다수가 사용자협의회 테두리를 벗어나게 됐다.

사용자협의회는 노조의 산별교섭 요구에 따라 각 금융기관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은행연합회 회원사를 중심으로 2010년 만들어진 조직이다. 노조의 산별교섭 요구에 비교적 성실히 응해 왔는데, 설립 6년여 만에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게 됐다.

갈등의 축에는 성과연봉제가 자리 잡고 있다. 사용자협의회는 올해 산별교섭을 앞두고 이례적으로 자신들의 요구안을 먼저 마련해 노조에 교섭을 요구했다. 성과연봉제 도입과 저성과자 관리기준 마련이 핵심 요구안이었다. 노조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고, 5차례 산별중앙교섭 끝에 6월 말 교섭결렬을 선언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달 추가 교섭 여지가 없다고 판단하고 쟁의조정 중지를 결정했다.

노조는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조합원 95.7%의 찬성으로 가결했다. 그러자 은행연합회는 직원 간 임금격차를 향후 40%까지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민간은행 성과연봉제 가이드라인' 발표로 맞불을 놓았다. 노사는 두 차례 추가 교섭을 했지만 성과연봉제에 대한 당초 입장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노조는 다음달 23일 성과연봉제 저지를 위한 총파업을 준비 중이다.

사용자단체가 스스로 해체의 길에 나선 것은 이 같은 상황과 맞물려 있다. 노조의 태도를 감안했을 때 산별교섭 형태로는 성과연봉제 도입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교섭 단위를 사업장별로 쪼개는 편법을 동원한 셈이다. 사용자협의회 관계자는 "사측의 지속적인 설득에도 노조가 성과연봉제에 대해 논의 자체를 거부하고 철회만 요구하고 있다"며 "지금 상황에서는 협상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보고 각각의 은행들이 단체 탈퇴 후 개별 교섭에 나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노조 "금융 노사관계 미래 저버렸다"

노조는 사용자단체 탈퇴를 결정한 대표자협의회가 끝난 직후 긴급지부대표자 회의를 열고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노조와 지부 대표자들은 “사용자들의 사용자협의회 탈퇴를 규탄하고, 성과연봉제 개별교섭과 합의를 금지한다”는 데 공감했다.

각 지부들은 사용자단체 탈퇴 여부와 상관없이 교섭권이 노조에 있음을 알리고 개별교섭에 응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하기 위해 빠른 시일 내에 경영진을 항의방문하기로 했다.

노조는 이와 함께 하영구 사용자협의회장과 탈퇴를 결정한 각 은행장에게 공문을 보내 “그간 유지해 온 사용자단체를 통한 산별교섭은 노사합의 사항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단체를 탈퇴하는 것은 금융 노사관계의 미래를 저버리는 행위”라며 “탈퇴로 인해 일어나는 모든 민형사상 책임은 각 기관장에게 있다”고 경고했다.

노조는 성명을 내고 “사용자협의회 탈퇴의 목적은 개별교섭을 시도해 그 과정에서 온갖 불법적인 협박과 회유로 인권을 유린해서라도 성과연봉제를 강제로 도입하겠다는 것”이라며 “절대 굴복하지 않고 10만 총파업 등 총력투쟁으로 맞설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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