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8시간씩 격일제로 일한 버스노동자들이 “연장근로수당을 제대로 달라”며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법원이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버스업계는 그동안 버스기사의 근로시간을 정확하게 산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포괄임금약정을 맺거나, 연장근로수당을 주먹구구식으로 지급해 왔는데 이런 관행에 제동을 건 판결이다.

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김신)는 대원여객 소속 노동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소송에서 “미지급된 수당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28일 밝혔다.

"연장근로수당 떼먹기 꼼수 안 돼"

서울시버스노조와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이 체결한 단체협약·임금협정은 “기본근로 8시간, 연장근로 1시간을 포함한 9시간”을 하루 근무시간으로 정하고 있다. 대원여객은 이 같은 단협 조항을 변칙적으로 해석해 적용했다. 하루 18시간씩 격일로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기본근로 16시간, 연장근로 2시간”을 일했다고 해석한 것이다. 하루 근로시간을 8시간으로 정한 근로기준법대로라면 10시간분의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해야 했지만 회사는 2시간분만 지급했다.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종일근무로 인한 추가 연장근로수당 없음”이라고 적힌 동의서에 서명할 것도 요구했다.

수년 동안 이 같은 방식으로 급여를 받은 노동자들은 결국 “근기법에 정해진 대로 수당을 달라”며 소송에 나섰다. 그러자 회사측은 엉뚱한 주장을 펴기 시작했다.

회사는 “회사와 근로자 사이에 포괄임금제 방식 임금지급에 관한 묵시적 합의가 이뤄졌다”며 “추가 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포괄임금약정을 체결한 것은 아니지만, 암묵적 합의가 존재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법원은 회사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포괄임금제 관련 명시적 합의를 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고, 근로자들이 여러 해 동안 연장근로수당이 가산되지 않은 급여를 받아 온 사정만으로는 회사와 근로자들이 묵시적으로 포괄임금제에 의한 임금약정을 체결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노동자들의 요구처럼 근기법대로 수당을 지급하라는 뜻이다.

재판부는 “근로자들이 근로시간 연장에 따른 불이익을 모두 감수할 것을 전제로 격일제 근무를 요청하고도 이제 와서 추가 수당을 청구하는 행위는 신의성실 원칙에 반한다”는 회사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오표 공인노무사는 “이번 사건에서 회사는 포괄임금약정 효력을 주장하면서 개별 노동자에게 임금청구권 포기·신의칙 위반·부당이득 반환을 주장하거나 청구했는데, 법원은 이를 모두 기각했다”며 “노동자들이 근기법에 명시된 연장근로를 인정받는 데 무려 5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근기법이 우선, 포괄임금제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포괄임금제는 △사용자와 노동자가 기본임금을 미리 산정하지 않은 채 법정수당까지 포함된 금액을 월 급여액이나 일당 임금으로 정하거나 △일정액을 법정 제 수당으로 정해 이를 실제 근무한 시간에 상관없이 지급하기로 약정한 임금지급계약이다. 노동의 양보다는 질이 중요한 직종에서 주로 활용된다. 근로시간이 아닌 일의 완성을 통해 성과가 측정되는 사무·관리직, 운행시간보다 운행의 완수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버스·택시 노동자가 대표적이다.

그간 포괄임금제에 대한 법원 판단은 엇갈렸다. 광주고법은 지난해 1월 금호고속 직행버스 노동자들이 추가 수당을 달라며 제기한 임금소송에서 “동일한 버스노선이라도 도로여건·실시간 교통상황·주행조건·주행시간·기상조건·운행기간 특수성 등 환경적 요인과 근로자의 근무태도·운전습관 같은 개별적 요인에 따라 실제 운행시간(근로시간)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며 “이런 경우 적용되는 포괄임금제는 해당 근로자들에게 불이익하지 않고, 회사는 근로자들에게 추가 수당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처럼 포괄임금제를 둘러싼 쟁점은 ‘근로시간을 정확하게 산정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요약된다. 이런 차원에서 대원여객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주목할 만하다.

대법원은 “운행경로가 정해져 있고, 운행시간도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노선운행의 특성상 근로자들의 근로시간을 계산하기가 어렵지 않다”며 “굳이 포괄임금제 방식의 임금약정을 체결할 합리적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본 원심을 그대로 인정했다. 노동자가 일한 시간에 따라 기본임금과 초과근로수당을 지급하는 것이 원칙이고, 포괄임금약정은 예외적인 경우로 한정해야 한다는 데 무게를 실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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