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는 국가인권위원회가 공정인사 지침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지침에 대해 “법적 구속력이 없는 안내서 혹은 참고자료 성격”이라고 규정한 데 대해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두 지침이 이미 산업현장에 널리 알려진 상태에서 ‘지침’ 성격을 둘러싼 뒤늦은 논란은 의미가 없고 노동계가 주장했던 노동권 침해나 노동법 위반 사항에 대한 의견표명이 없어 실효성이 적다고 비판했다.

양대 노총은 25일 “인권위 판단으로 두 지침은 어떤 법적 근거나 구속력도 없다는 것이 증명됐다”며 “노동부는 지금이라도 두 지침을 폐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동계 진정 5개월 만에 답변=국가인권위의 이날 판정은 올해 2월 양대 노총이 두 지침에 대해 “헌법과 노동법을 위반하고 노동권을 침해했다”며 진정을 제기했던 것에 대한 답변이다.

노동계는 당시 “공정인사 지침은 쉬운 해고 지침이고 취업규칙 지침은 노동조건 불이익변경을 사용자 마음대로 하려는 것”이라며 “노동기본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불이익변경시 노조와 노동자 과반의 동의를 얻도록 한 근로기준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또 “두 지침은 ‘근로조건 기준은 법률로 정한다’는 헌법(32조3항)과도 배치된다”고 주장했다.

인권위은 헌법·노동법 위반이나 노동기본권 침해 같은 근본 쟁점에 대해서는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다만 두 지침은 안내서에 불과한데, 노동부가 지침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사업자 지도·감독·교육 기준으로 활용하면서 행정규칙 같은 구속력 있는 기준처럼 오해가 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두 지침 성격 논란 종지부 찍나=두 지침을 둘러싼 성격 논란은 올해 1월 노동부가 그 내용을 공개할 때부터 있었다. 노동부는 공정인사 지침을 발표할 당시 ‘직무능력과 성과 중심의 인력 운영을 위한 가이드북’이라는 부제를 붙여 안내서임을 강조하려는 듯한 뉘앙스를 담았다. 당시 노동부는 “인사 문제와 관련한 여러 판례를 정리해 모아 놓은 판례 모음·설명집”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구속력 있는 지침이라는 논란을 피해 가려는 방편으로 풀이됐다.

그럼에도 노동부는 “공정인사 지침의 경우는 기업에 권고하거나 문의가 들어왔을 때 안내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권위 지적대로 사실상 사업장 지도·감독·교육에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취업규칙 지침은 근로감독관이 취업규칙을 심사할 권한이 있다는 점에서 구속력이 강하다. 노동부 관계자는 “사업주는 취업규칙 작성·변경시 노동부에 신고해야 하고 근로감독관은 위법 사항이 없는지 심사한다”며 “취업규칙 지침이 심사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인권위는 두 지침을 안내서로 규정하고 “오해가 없도록 국민에게 (그 성격을) 명확히 알리라”고 노동부에 권고했다. 특히 “사업장 지도·감독에 활용되고 있어 오해가 생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부가 두 지침을 사업장 지도·감독에 활용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노동부는 이에 대해 “인권위에서 의견서를 아직 보내오지 않았다”며 “의견서가 오면 면밀히 검토해 어떻게 할지 입장을 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노동계 입장 수용 그러나 미약=인권위가 노동계 의견을 일부 받아들이긴 했지만 실효성은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두 지침이 노동현장에 널리 퍼진 상황에서 지침 성격을 둘러싼 논란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실장은 “두 지침은 노동자와 노동권에 끼치는 피해가 크기 때문에 올해 2월 시급히 정책권고를 내려 달라고 요청했는데, 뒤늦게 권고가 내려져 매우 유감스럽다”며 “인권위가 두 지침의 남용과 부작용을 막기 위한 실효성 있는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와 함께 인권위는 “두 지침이 일부 판례를 일반화해 오남용될 가능성이 있다”며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보호입법 취지를 약화시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 또한 노동계에 유리한 의견이기는 하지만 취업규칙 불이익변경과 사회통념상 합리성 개념을 둘러싼 논란은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이미 대규모 소송전으로 번진 상태다.

남정수 민주노총 대변인은 “공공기관 상당수에서 노조 동의 없이 이사회 의결로만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을 강행했다”며 “노동부 지침에 따른 이러한 의결은 모두 원천무효”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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