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지난 18일 고용노동부는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가이드북'을 배포했다. 보도자료에서는 “손에 잡히는 임금체계 개편” 혹은 “임금체계 개편의 구체적 방향 제시”라고 가이드북을 자랑했다.

160쪽이 넘는 긴 자료였지만 노동부의 뜻은 단 하나였다. “임금체계 개편의 방향은 연공성을 완화하면서 직무·능력·성과 등의 비중을 확대하는 것”이라는 윤색과는 달리, 진정한 목표는 임금체계 개편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노동자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임의로 변경할 수 있는지에 관한 ‘수단’의 나열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수단’ 대부분은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을 크게 벗어나는 위법한 내용이다. ‘위법’은 이른바 양대 지침,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확대 적용에서도 매번 지적됐다. 근기법 제94조1항단서에서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할 경우 노동자 과반수나 과반수 노조의 동의를 강제하고 있다. 그럼에도 가이드북(임금체계 개편 관련 법적쟁점 중 취업규칙)은 “동의가 없더라도 법률과 판례에 따라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으면 효력이 인정된다”라고 안내한다.

도대체 노동부가 말하는 법률과 판례는 무엇이란 말인가. 법에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이라는 예외요건이 없다. 사회통념상 합리성은 고작 일부 사건에 적용된 판례 이론일 뿐이다. 인용되더라도 법원에서는 “엄격하게” 적용돼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그럼에도 가이드북에서는 “엄격하게”라는 핵심은 쏙 빼고 마치 사회통념상 합리성이라는 요건이 일반화된 법리인 것처럼 안내하고 있다.

임금체계 개편을 두고 노사 간에 예상되는 교섭과 쟁의상태에 대한 법률 해석(임금체계 개편 관련 법적쟁점 중 단체교섭) 부분도 마찬가지다. 너무 자의적이라서 생소하기까지 하다. 근로조건의 핵심이 임금이라는 데 이론이 있을 수 없다. 단체협약 체결의 근본적인 목적 중 하나는 ‘좋은 임금’이지 않는가. 때문에 설사 단체협약에서 협약 대상으로 ‘임금’을 명시하지 않고 있더라도 헌법과 노조법에 근거해 마땅히 단체교섭의 대상이 돼야 한다. 임금이 김장비·추석선물·축의금은 아니지 않는가. 그럼에도 가이드북은 단체협약에서 정하는 방식에 따라 임금 결정이 교섭대상이 안 될 수도 있다고 한다. 4가지 유형 중 무려 3가지나 된다.

오늘까지도 정부와 기업은 "경제가 어렵다, 노동생산성을 올리려면 임금체계 개편이 필요하다"며 노동자들을 압박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이 명확히 실증된 예를 보지 못했다. 백번 양보해 나름의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법을 어길 수는 없지 않는가. 요컨대 우리나라 헌법과 법률체계를 바꾸지 않는 이상 사회통념상 합리성 이론이 노동조합 동의 요건을 대체할 수 없고 취업규칙이 단체협약에 앞설 수가 없다.

그런데도 가이드북은 불법과 위법을 조장하고 있다. 이런 정부와 가이드북을 보고 어떤 노동자가 고개를 끄덕이겠는가.

이번 가이드북 발표에도 노동시장 반응은 의외로 조용하다. 자포자기해서일까. 그래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앞서 나온 양대 지침과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확대와는 차원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양대 지침에서는 일반해고 및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성과연봉제 확대는 글자대로 ‘공공기관’에 한정된 내용이었다. 그때마다 정부는 해당 범위와 대상에 한정한 조치인 것처럼 엄살을 부렸다.

그러나 결과는 어떤가. 정부가 발표한 가이드북은 사실상 전체 노동자들을 상대로 임금체계를 개편하겠다는 선언이다. 지난해 9·15 노사정 합의 당시 “임금피크제를 위해 단 1회만이라도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요건에 대한 해석을 완화해 달라”는 엄살이 거짓이었음이 불과 1년 만에 확인됐다. “법을 따르지 않고 모든 임금체계를 사용자 임의로 변경해도 된다”고 ‘자신’ 있게 밝히고 있다. 이성과 염치는 어디로 간 것인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사실 그동안 양대 지침과 성과연봉제 확대에 직접 적용되지 않는(않기를 바라는) 이들은 정부 노동정책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나는 정년이 멀었다, 저성과자가 될 리 없다, 공공기관 소속도 아닌데 무슨 문제냐”라며 애써 무시하기까지 했다. 모든 노동자들이 나의 일로 받아들여야 한다. 다음에는 또 뭘 요구할지 모를 일 아닌가.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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