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이번주 월요일은 우리 민족이 일흔 한 번째 맞이하는 광복절이었다. 우리가 일제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날이다. 1910년 일제의 한반도 강점 직후 시작된 국권회복을 위한 한민족의 전방위적 투쟁이 마침내 결실을 맺은 하나의 전승기념일이 바로 광복절이다. 사람으로 치자면 한국 나이로 72세이니 의인화해서 생각해 보면, 광복절도 바야흐로 노년기를 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71년 전 오늘, 그렇게 기다리던 일제로부터의 압박과 설움의 시간을 보내고 ‘흙 다시 만져 보고’ ‘춤추는 바닷물의 넘실댐’을 기운 차게 지켜보며 새로운 미래를 꿈꾸던 조선인들 가운데 그 누가 광복 이후 70년이 넘도록 자신의 후손들이 남과 북으로 나뉘어 서로 총을 겨누고 미사일을 쏘고 핵무기를 만지작거리며 대결을 벌이는 일에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이후의 역사적 시간을 낭비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까.

2차 대전의 주범이자 패전국 독일만 해도 나라가 망하고 우리처럼 분단을 경험했지만 같은 민족공동체 간의 단절시간이 채 50년이 되기 전에 당당히 통일을 성취한 후 오늘날 유럽을 이끌며 새로운 번영의 기회를 누리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우리의 상황이 더욱더 안타깝기 그지없다.

20세기 후반기 한반도의 상황은 '포스트-콜로니얼(post-colonial)'의 맥락, 그러니까 식민지를 겪고 나서 독립을 한 나라들이 겪는 사회상의 보편성 범주에 속해 있었다. 말하자면 우리가 말하는 친일청산, 식민통치유산 제거의 과제는 사실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인도, 스리랑카나 프랑스에서 독립한 여러 아프리카 나라들이 겪은 문제와 일정하게 그 성격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러한 나라들이 겪는 가장 큰 문제는 혼자 일어설 ‘밑천’이 없다는 것이다. 스스로 통치와 주권행사의 주체로서의 경험을 몇 세대에 걸쳐 상실해 온 터라, 독립을 했어도 이후 국가와 사회를 꾸려 가는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원리를 체득하고 실현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적지 않은 나라들은 결국 식민시대 통치자원을 재활용하거나 또 다른 새로운 강국에 기대어 ‘신식민지적’ 상황으로 전락하곤 한다.

광복 후 이어진 미소의 분할점령이 끝내 한국전쟁까지 초래하며 분단으로 고착된 이후, 지금까지 사실상 남한은 미국이라고 하는, 그리고 북한은 소련(이후 러시아, 최근에는 중국)이라고 하는 새로운 맹주의 그늘에 숨어 포스트-콜로니얼의 모순을 품으며 사회를 꾸려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이 패전국에게, 자신이 헤게모니를 행사하는 자본주의 세계체제 블록에서, 동아시아의 작은 맹주로 성장해 가는 것을 용인하면서, 사실상 한국에서 일제청산이라고 하는 민족주의적 과제는 국사의 최우선 과제로 온전히 서지 못했다.

60년대 초 단행된 한일 국교 정상화는 일본이 한국전쟁으로부터 취한 부를 우리에게 이자를 쳐서 빌려주는 대신, 20세기 초반기 40년에 이르는 식민의 만행을 저지른 것에 대한 피해보상 요구 기회를 입막음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한국은 사실상 미국 못지않게, 과거 자신을 지배했던 일본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며 종속적 근대화(modernization)의 길을 걸어갔다. 쉽게 말해 일본에게 돈을 빌려 일본의 제도를 거의 베끼다시피 하며(copy) 사회경제체제를 만들어 갔다.

심지어 일본 순사를 앞세워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무자비하게 억압하던 통치수단과 방식까지 공안통치를 위한 명목에 그대로 활용하면서, 일반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체제 저항세력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손에 수갑을 채우며 권위주의 체제를 꾸려 가기까지 했다. 제국주의 일본의 권위주의적 철권통치 노하우가 개발독재기 한국에서 사회관리 기제로 고스란히 재활용된 셈이다. 이러한 식으로 안타깝게도 한국은 포스트-콜로니얼 사회의 모순을 여실히, 고스란히 경험했다.

오늘날 자타 공인 선진자본주의 한국 사회에서 국민의 대다수이자 유권자의 대다수는 노동시장에서 노동력을 판매하면서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꾸려 가는 노동자, 피고용인들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경험하면서 그들은 경제적 풍요와 민권신장을 일정하게 경험했으나, 아직까지 분단체제 속에서 보다 부강하고 자주적이며 평등한 나라의 국민으로 살아갈 기회를 제약받고 있다.

다행스럽게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성취와 민주화 이행까지 일정하게 이뤄지면서 대부분의 탈식민 사회들이 과거의 늪에서 제대로 헤어나지 못하는 양상보다는 나은 상황을 살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 사회에서 노동하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들이 흘리는 땀과 노고에 비해, 그들이 향유하는 경제·사회·대가의 부족과 불충분함, 그리고 그들이 누려야 할 제반 권리의 침해를 경험하고 있다. 비록 절대빈곤의 암울함에서 벗어났을지언정 아직도 스스로 세계사를 이끌어 가는 신망 있고 힘 있는 도덕국가로 자신을 자리매김하기엔 너무나 먼 현실이 이 나라 ‘노동의 일상’에 펼쳐지고 있다. 오죽하면 그렇게 21세기 개명천지에 부합하지 않는 우리네 노동현실을 비꼬아 ‘헬조선’이라는 표현이 회자되고 있을까.

일흔 한 번째 광복절을 맞이하면서 진정한 ‘노동의 광복’을 꿈꿔 본다. 식민 유산을 제대로 청산하고 분단체제를 극복하면서 보다 민주적이고 자유롭고 부강한 통일국가를 실현하는 것, 그래서 동북아시아판 포스트-콜로니얼의 모순적 비극을 극복해 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광복의 가치를 ‘노동의 광복’으로 이어지게 하는 필수조건일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mjnpark@kl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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