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전력가스민영화,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안현효 대구대 교수가 발제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정부는 지난 6월 에너지 공공기관 기능조정안을 발표했다. 핵심내용은 전력판매시장 민간 개방, 발전공기업의 주식 상장, 가스 직수입 확대, 에너지 관련 설계와 유지보수의 개방이다. 정부는 ‘사회적 혜택’을 강조했다. 그런데 현재 추진되는 에너지 산업 기능조정 내용은 대기업과 재벌에게는 이익을 주지만 국민들에게는 실익이 전혀 없다는 주장이 나왔다. 에너지 기능조정은 에너지부문의 완전한 시장개방으로 정부가 대기업과 재벌에게 주는 ‘종합선물세트’라는 것이다.

송유나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논란이 되는 전기 누진제보다 더 큰 문제는 전기요금체제 전반이 재벌과 대기업에 유리하게 다소비를 부추기는 방향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며 “연료 도입→전기·가스 생산→판매→소비까지 모든 것을 대기업·재벌 지배라는 완전 민영화 그림의 완성”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원식·박광온·이언주·홍익표·이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1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전력·가스 민영화,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날 토론회는 사회공공연구원과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민교협·민주주의법학연구회가 주관했다.

전력시장 개방하면 대기업 부담 국민에게 전가

정부의 전력시장 개방 방침에 따르면 1단계 소비자는 1만킬로와트 이상을 사용하는 소비자와 2만2천900볼트로 직접 전기를 받는 대기업·대공장이다. 2단계는 300킬로와트 이상 소비자로 기업들과 일반용 전기 사용자 중 일부다. 대다수 국민은 3단계 소비자에 속한다.

판매시장 개방 대상인 1단계와 2단계 소비자는 공급자 입장에서 보면 우량 고객이다. 공급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3단계 소비자는 불량 고객이다. 집집마다 계량기가 필요하고 전압을 낮춰 공급해야 하고 검침비용과 유지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들 대규모 소비자를 한국전력의 공급의무 대상에서 제외하고 수용자 스스로 전력소비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발전회사와 쌍무계약 체결이 가능하도록 함으로써 전력공급과 재무적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송 연구위원은 “정부 계획은 우량 고객들만의 시장을 따로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자 대기업의 내부거래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라며 “전력의 총 공급비용을 남겨진 3단계 국민이 모든 비용을 나눠 지불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우량 고객들은 직접 전기를 생산하고 생산에 필요한 연료도 직접 조달해 생산-판매-소비를 스스로 하게 된다. 기본적인 전력공급 비용 총액은 변함 없는 상태에서 우량 고객이 빠지면 당연히 국민들이 부담해야 할 요금은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발전부문은 이미 충분히 민영화 진척

97년 외환위기 이후 에너지 민영화가 추진됐지만 전기와 가스부문은 노동자들과 국민 반발에 부딪혀 중단됐다. 그러나 정부는 끊임없이 에너지 민영화 정책을 추진했다. 현재 전력의 발전부문 25%가량은 민영화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지난해 6개 발전공기업을 제외한 기타 발전회사들의 설비용량 비중은 24.6%나 된다. 기타 발전회사는 포스코·SK·GS 등 민간발전회사의 자가용 설비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민간발전회사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 현재 발전시장은 소유권 매각만 중단됐을 뿐 신규설비를 민간에 허용하는 방식의 민영화가 충분히 진척된 상황이다.

한전을 포함해 6개 발전공기업의 지난해 수익은 4조2천억원이 넘는다. 송 연구위원은 “발전공기업이 상장되면 천문학적 수익이 주주에게 배당될 것”이라며 “이미 발전부문이 충분할 정도로 민영화된 상황이기 때문에 발전·가스 시장 개방, 즉 민영화의 촉매제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간 업자들의 알짜 기업 빼먹기 우려

신현규 발전노조 위원장은 발전공기업 주식을 상장하면 이익 배당 요구가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발전공기업 지분 30%가 상장된 상태에서 당기순이익 4조원, 배당성향 40%라고 가정할 경우 매년 4천800억원이 주주 배당금으로 지급된다. 결국 배당 때문에 재무상황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 신 위원장은 “고배당을 통한 이익잉여금의 외부 유출로 투자여력이 감소하고 단기 수익을 내려는 주주들의 투자 회피 압력 때문에 발전공기업의 공적 역할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며 “전력산업을 재통합해 공기업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재도 공공운수노조 한국가스공사지부장은 “현재까지 민간 직수입제도는 알짜 빼먹기 현상이 발생해 요금 인하에 쓸 돈이 민간 직수입자 이익 독점으로 귀결됐다”며 “천연가스 민간개방 확대 정책으로 민간 직수입자의 알짜 빼먹기 현상이 재현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에너지부문 재공영화는 가능한가

이날 토론회에서는 에너지부문의 재공영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서영표 제주대 교수(사회학)는 “유럽의 많은 나라는 전력산업을 여전히 공공소유로 남겨 뒀다”며 “독일과 영국 등에서는 외주나 매각 방식으로 민영화했던 공적 서비스를 재공영화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정부가 현재 존재하는 송전그리드와 배전망을 사들여 사적기업의 독점을 없애고 지방의회가 지역의 에너지 공급 공기업을 창설하도록 하는 재공영화 방안을 제안했다. 그는 “재공영화와 관련해 언론과 정치권에서 비용이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며 “주식배당과 이자로 빠져나가는 이윤이 재투자되는 것을 고려하면 비용은 축소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오동석 아주대 교수(법학)는 “에너지 공기업에 대한 민영화 추진은 헌법 가치에 반한다”며 “시장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존엄보다는 사적 이윤을 추구하기 때문에 에너지부문의 사유화는 헌법적 명령에 위반해 국가의 책무를 방기할 위험성이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헌법 제126조는 국방상 또는 국민경제상 필요로 인해 법률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용기업을 국유 또는 공유로 이전하거나 경영을 통제 또는 관리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이에 대해 오 교수는 “반대로 해석하면 국민경제상 필요에 의해 사영기업을 국유화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국민의 삶에 직결된 영역에서 경영을 통제하는 공영화와 국유화 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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