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해성 공인노무사(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조직부장)

모든 사물에는 이름이 있다. 사물의 이름은 그 존재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에게 그 대상이 무엇인지를 쉽게 떠올리게 하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인간이 무언가에 이름을 붙일 때는 그냥 예쁘고 좋은 의미를 붙이는 경우도 있지만 그 대상의 정체성과 연관이 있는 단어를 사용한다.

노동조합의 이름도 마찬가지다. 기업별 노동조합의 경우 대부분 그 기업의 이름을 노동조합에 붙인다. 최근 투쟁하고 있는 단위를 보면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갑을오토텍지회 같은 식이다.

그런데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경우는 고용된 기업의 이름을 쓰면 이상한 상황이 발생한다. 노동조합은 가만히 있는데, 원청과 용역회사 간 계약이 변경될 때마다 노동조합의 이름을 바꿔야 한다. 용역계약이 2년마다 바뀌면 2년마다, 1년마다 바뀌면 1년에 한 번씩 명칭을 변경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럴 때 해법은 간단하다. 바로 원청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기아자동차 사내하청분회 같은 명칭은 법적인 고용계약 당사자인 회사와는 상관없이 원청의 이름을 사용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 간접고용이 만연한 만큼 원청의 명칭을 사용한 노동조합은 수없이 많다.

그런데 최근 그 이름을 다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아시아나항공이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조에 ‘아시아나’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가처분 신청과 민사소송을 한 것이다. 아시아나항공 기내 청소와 수하물을 다루는 용역회사 ㈜케이오 소속 노동자들은 지난해 가을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에 가입한 후 명칭을 ‘서경지부 아시아나항공분회’라고 정한 뒤 활동해 왔다. 아시아나항공분회는 케이오와의 교섭이 결렬돼 합법적인 선전전과 집회를 하게 됐다.

그런 가운데 올해 3월11일 아시아나항공측에서 자신들 회사 소속 노동자가 아님에도 아시아나라는 이름을 사용해 인격권이 실추됐다고 주장하고, 분회 명칭에 아시아나항공·아시아나·ASIANA 등의 문구를 포함시켜선 안 된다며 서울남부지법에 인격권 침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는 해당 조합원뿐만 아니라 간접고용 노동조합 노동자들의 탄원서를 조직해 원청 사용자의 명칭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다행히 법원은 5월11일 “아시아나항공·케이오·아시아나에어포트의 인적·물적 연관성에 비춰 보면 아시아나항공이 분회와 전혀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히고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법원은 근로조건 개선과 관련해 아시아나항공의 개입을 촉구하는 것이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하여 그동안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한 행위가 위법한 것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아직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남아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끝까지 소송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소송의 대상이 된 노동자들에게 심적인 압박을 주고 있다.

법원의 결정으로 아시아나항공 간접고용 노동조합이 원청 이름을 당분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남은 소송에서도 노동조합 이름을 지킬 수 있는 판결이 내려지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제도적 개선을 이뤄 나가는 계기가 되길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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