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석호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 민주노총 안의 시각

우리 조합원 평균임금이 높다는 걸 이제 모두 안다. 사회의 상위 20%에 들고, 중심부는 상위 10%에 든다. 그래서인지 의사협회 파업 때처럼 민중 속에서 적개심마저 싹트고 있다.

하지만 억울하다. 조합원의 높은 평균임금은 거저 얻은 게 아니다. 30년에 걸친 투쟁의 성과다.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하려 감옥에도 갔다. 최저임금을 화두로 띄우는 성과도 거뒀다. 그럼에도 세상을 바꾸지 못하는 것은 갈수록 현장이 안 따르고 사회가 외면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계속 노력할 것이다.

한데 임금을 동결하자고? 사회기금으로 내자고? 최저임금 1만원과 바꾸자고? 그럴 수 없고 조합원 설득도 안 된다. 주변부도 노조 만들어 투쟁해야 한다. 재벌 곳간을 열어야 한다.

☞ 민주노총 바깥 밑바닥의 시각

먹고사는 게 전쟁인데, 사회의 힘센 어떤 집단도 책임지지 않는다. 정치인이 가끔 그럴싸한 말은 한다. 딴엔 밤잠 설치며 뭔가도 한다. 빛 좋은 개살구다. 밑바닥의 구차한 삶은 모가지만 남기고 전부 늪에 잠겼다.

민주노총은 재벌 곳간을 열라 한다. 정부도 규탄한다. 주장은 좋은데, 신뢰가 안 간다. 정치인들을 보는 듯하다. 세상을 바꾼다면서 제 임금과 일자리만 사생결단한다. 밑바닥 삶을 개선한다고? 생색내기만 한다. 그들 다수는 주식·부동산·자식에 투자한다. 해외여행도 간다. 그러면서 힘들어 죽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밑바닥은 벌써 다 죽었어야 하는데, 누구 약 올리나?

아등바등 먹고살기도 힘든 판국에 노조 만들어 투쟁하라고? 해고되면 당장의 삼시 세끼는? 집세는? 학비는? 민주노총은 책임 못 질 거다. 그래서 자기들 문제를 내건 총파업도 금속처럼 힘센 노조만 하고 나머지는 못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우리더러 투쟁하라고? 민주노총 소속 조직의 임금은 계속 올라갈 것이다. 몇 년 뒤엔 임금격차가 열 배로 벌어질지 모른다. 그때도 똑같은 행동과 주장을 하고 있지 않을까. 무엇을 신뢰하고 따라야 하지? 한국노총처럼 차라리 도로나 막지 말던가.

☞ 다시 민주노총의 시각

민주노총은 풀기 어려운 난제에 부딪혔다. 민주노총으로 좁아진 시각은 산업으로 좁아졌고, 사업장으로 좁아졌고, 결국 조합원 개개인의 처지로 좁아져 버렸다. 집단의 시각은 한 번 좁아지면 걷잡을 수 없이 좁아진다. 규모가 클수록 관성이 두텁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조합원이 민주노총에서 멀어진다는 걱정은 사치다. 중심부 조합원은 단위노조에서도 멀어지고 있다.

억울하다고? 민주노총은 항상 밑바닥을 바라봤다고? 맞다, 바라봤다. 민주노총 안의 시각으로 바라봤다. 바로 거기에 함정이 있었다. 시각의 출발점, 즉 시각점이 민주노총 안에 있느냐 바깥에 있느냐, 그 차이는 하늘과 땅의 간극만큼 크다. 시각점을 안에 두면 민주노총 조합원의 그런대로 먹고살 만한 처지와 한계가 우선 고려된다. 시각점을 바깥에 두면 하루하루가 지옥인 밑바닥의 처지와 그들의 절박한 소망이 우선 고려된다.

☞ 다시 밑바닥의 시각

세상에 믿을 거라곤 오직 자신과 가족밖에 없는 밑바닥은 더 움츠러든다. 재벌도 밉고 정치인·언론도 믿지 못한다. 민주노총도 동일 부류로 취급한다. 같은 노동자계급? 이 체제를 통해 지킬 것이 많은 노동자와 목숨 부지에 연연하는 노동자가 어떻게 같은 계급이지? 노동자 명칭을 공유하니까? 그렇다면 국민이란 명칭을 공유하는 재벌과 노동자도 같은 부류인가?

대중은 자신의 처지로부터 세상을 본다. 알아먹지 못하는 이론으로 세상을 보는 게 아니다. 뭐? 민주노총이 제 살점 도려내겠다 한다고? 최저임금 1만원과 바꾸겠다고? 양극화도 해소하자고? 그건 내 문제인데? 내 자식도 알바인데? 음, 민주노총 뭐지? 함께 싸우지 못하더라도 박수는 쳐야 하는 것 아닐까? 집회라도 구경 가 볼까? 더 움켜쥔 재벌들은 어쩐다는데? 정부와 국회는 뭐라 하고? 꿈쩍 안 한 채 방관한다고? 이런 쳐 죽일 놈들 봤나.

☞ 노동운동의 시각

노동운동의 출발이자 궁극은 노동계급이다. 그게 있어야 노동운동이 성립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계급이 조각조각 해체되고 있다. 게다가 민주노총의 조직력과 투쟁력은 엉망이다. 사회적 영향력과 신뢰도 측면에서 진창이다. 노동자를 계급으로 형성하려면 비교적 균등한 임금이 전제돼야 한다. 그래도 임금인상과 최저임금 1만원 교환은 동의가 어렵다고? 밑바닥 노동자를 위해 쓰자는 건데도? 자본에게 양보하는 게 아닌데도? 그걸 방편으로 세상 뒤흔들자는 건데도?

그럼 머리 맞대고 방안을 찾자. 단 알리바이투쟁으로 의심되는 상투적 방안은 빼자. 우리가 노조에서 밥만 벌어 먹고사는 직장인이 아니라면, 세상 바꾸겠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은 운동가라면, 백척간두에 선 다급함으로 방안을 찾자.

우선 최저임금 1만원을 목표로 내년 6월까지 대형사고를 쳐 보자. 그런데 욕먹을 것 같고 혼란스러울 것 같으니까 그냥 하던 방식대로 하자고? 5년이건 10년이건 어차피 1만원이 될 거니까?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jshan896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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