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룡 금융위원장은 6월2일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9개 금융공공기관을 모델로 모든 금융권이 절박감을 가지고 성과연봉제 도입 협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4차 금융공공기관장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그는 “연공서열, 획일적 평가, 현실안주, 보신주의 같은 낡은 관행을 개혁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며 공공을 넘어 민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금융기관에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사람의 말, 특히 정부의 말은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고 했던가. 노동조합에서도 이 발언을 흘려들은 이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이때만 하더라도 설마설마했었다. 금융공공을 포함한 300여개 공공기관에서 노동조합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이 진행되는, 그야말로 노정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기에 금융위원장의 말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그럴 여력이 없었다고 하는 게 정확할 것 같다.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여지없이 들어맞는다. 먼저 금융위원장의 말을 좇아 사용자단체가 두 팔을 걷어붙였다. 모두가 무더위에 지쳐 갈 즈음인 7월21일 은행연합회는 민간은행에 성과연봉제를 확대 도입하겠다며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가이드라인에서는 적용대상과 차등 폭을 각각 4급 이하 직원 및 최대 40%까지 넓혔다.

4급은 대부분 창구 실무를 담당하는 조합원들이라고 하니 사실상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 선언에 다름 아니다. 가이드라인은 적용대상을 확대한 데다, 개인별 평가까지 포함하고 있다. 3급 이상 관리자급을 중심으로 성과연봉제를 확대하겠다는 기획재정부 발표보다 훨씬 악화된 것이다.

급기야 금융위원장은 자신의 말을 실천하고 말았다. 7월27일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금융사지배구조법)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해당 법률과 시행령 소관부처가 바로 금융위원회다.

금융사지배구조법이 생소할 수도 있겠다. 잘 알려져 있듯이 2008년 시작된 이른바 글로벌 금융위기 과정에서 자본의 심각한 도덕적 해이가 드러났다. 금융위기로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노동자조차 일자리를 잃는 마당에 정작 위기를 불러온 당사자들의 천문학적 임금은 여전했다. "OCCUPY(점령하라)"를 외치며 뉴욕 금융가를 점령한 청년들의 목소리를 다들 기억할 것이다.

이러한 자본과 노동의 상황을 반영해 금융회사의 바람직한 지배구조 강화, 이사회와 감사위원회의 역할 강화, 특히 임원과 투자자들의 입금 통제 필요성이 제기됐다. 오랜 준비 끝에 지난해 7월31일 국회는 위 내용을 담은 금융사지배구조법을 만들었다. 올해 5월29일 공포됐다.

법률 자체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시행령이다. 법률을 위한 시행령을 제정하면서 금융위는 자신의 숨은 속내를 그대로 반영했다. 금융위는 성과보수 도입대상을 시행령에 담지도 않았다. 금융위가 고시할 수 있도록 재위임해 버렸다. 그리고 시행령이 통과된 날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자산총액 5조원(저축은행 7천억원) 이상 금융회사 임직원(최하위 직급, 기간제 근로자 또는 단시간 근로자 제외 가능)”을 대상으로 “성과보수 지급을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위 표현에 따르면 전체 금융기관 노동자들의 임금체계가 성과급 체계로 전환된다는 말이다. 은행연합회 가이드라인이 제도화된 셈이다. 6월2일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한 말이 그대로 실현되고 말았다.

지면을 통해 금융위가 주도하고 은행연합회가 지원하는 금융기관 노동자들 앞에 닥친 성과연봉제 도입시도 경과를 살펴봤다. 요컨대 위 시행령의 위헌·위법성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법률 취지나 위임범위를 벗어난 것은 물론이고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관한 근로기준법상 노동조합 동의 절차마저 어겼다.

하지만 불법을 합법인 양 포장해 힘으로 밀어붙여 온 박근혜 정부 아닌가. 더욱 큰 염려는 힘으로 밀어붙이는 성과연봉제 확대가 금융부문에만 머무르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참으로 더운 여름이지만 노동자 모두가 정신을 모아야 하는 이유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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