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한국전력이 스마트전력계량기(AMI·Advanced Metering Infrastructure) 사업 추진에 박차를 가하면서 매달 집·상가 등을 방문해 전기 사용을 점검하는 검침원들이 고용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AMI가 구축되면 전기사용량이 사용자에게 실시간으로 제공되고 원격으로 자동 검침된다. 검침원이 호별 방문을 하지 않아도 실시간으로 전력 사용량을 확인할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5일 '에너지신산업 성과확산 및 규제개혁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2022년까지 1조5천억원을 들여 2천만호에 AMI를 보급하겠다고 밝혔다. 한전은 2017년까지 230만호에 AMI를 설치할 계획이다.

하지만 정부나 한전은 검침원들의 고용문제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한전과 검침업무 용역계약을 맺고 있는 6개 검침회사 노조(대상휴먼씨·한전산업개발·새서울산업·제이비씨·신일종합시스템)와 노동자모임(그린씨에스)이 최근 '전기검침연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공동대응에 나선 이유다. 6개사 검침인력은 5천여명이다.

전기검침연대 비대위 관계자는 3일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검침원들이 무조건 정부 정책을 반대하는 건 아니다"고 전제하면서 "지난해 1월 한전과 6개 검침회사가 합의한 대로 검침인력 고용안정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한전은 지난해 1월29일 6개 검침회사와 '검침인력 고용안정 상호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서'를 체결했다. 이들은 원격검침이 확대되더라도 검침인력을 인위적으로 감축하지 않고, 원격검침 업무를 대체할 수 있는 현장업무를 개발하기로 했다.

비대위는 이와 관련해 "고용안정 업무협약서를 외면하고 일방적으로 AMI를 전면 실시하는 것은 전기검침 노동자를 우롱하는 처사"라며 "230만호에 대한 원격검침이 실시되면 500여명의 정규직 인력감축을 시작으로 2022년까지 전체 검침인력의 90% 이상이 실직 위기에 놓인다"고 우려했다.

비대위는 고용대란을 막기 위해 AMI를 한꺼번에 보급하기보다는 터널·외곽도로·산속 등 업무환경이 위험한 곳부터 설치하고, 정년퇴직을 포함해 자연감소하는 검침원들이 검침했던 숫자만큼씩 차례로 AMI를 보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노총과 연합노련은 이날 성명을 내고 한전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들은 "한전은 검침노동자들의 생계수단을 잃지 않도록 적극적인 일자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새로운 검침 시스템에 대한 재교육과 전직지원시스템을 마련해 노동자들이 생계절벽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전 관계자는 "정년퇴직자들을 제외하고 기존인력 고용안정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검침회사와 대체업무를 발굴하고 검침원들을 대상으로 직무전환교육 실시를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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