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26일 고용노동부는 2016년판 「통계로 보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모습」을 발간했다. 고용노동부는 보도자료를 배포해 발간 소식과 수록 내용의 요지를 알렸고, 언론은 이를 인용해 보도했다. 노동부는 “지역별 인구·경제상황·산업구조 등 고용노동정책 추진의 기초자료로서 노동시장의 전반적인 흐름을 조망할 수 있도록” 작성·배포한 것이고, 이 자료집은 “우리나라의 고용노동 관련 통계를 종합 정리”하여 “각 구성별 통계지표를 분석·수록”했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2016년판 노동 관련 통계를 종합 정리한 각종 노동지표 자료집을 발간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노동현황이 통계지표로 드러나 있는 것이니, 자료집을 읽는 것으로 이 나라에서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기본권 상태를 파악하는 데 유용할 수 있겠다. 그러니 뉴스로 보도된 주요 노동지표를 살펴보자.

2. 2015년 한국의 실질 최저임금은 13.7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4.1달러)과 큰 차이는 없었으나, 전일제 노동자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수준은 35.7%로 25개 나라 가운데 19위에 그쳤다. 전일제 노동자의 임금총액을 기준으로 한 최저임금의 상대적 수준이 2009년(35.9%)과 비교해 오히려 후퇴한 것이고, 2010년(35.9%), 2011년(35.8%), 2012년(34.1%), 2013년(35.1%)과 비교해도 6년째 제자리라고 노동부 노동지표로 발표되고, 언론은 보도했다. 이처럼 최저임금의 상대적 수준이 제자리 수준으로 정체돼 있다는 것인데도 지난 16일 최저임금위원회는 내년, 즉 2017년 최저임금을 두고서 440원 인상해서 6천470원으로 결정했으니, 2017년판 자료집은 제자리 수준의 최저임금을 지표로 발표하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연간 평균 근로시간(2천57시간)도 비교 대상 26개국 중 멕시코·칠레에 이어 3위, 임시직 노동자 비율은 29개국 중 5위로 높다고 발표됐다. 근로시간은 근래 2, 3위 수준으로 발표되고 있으니 과거에 비해 다소 줄기는 준 모양인데, 이는 법정근로시간 등 노동제에 관한 보장 수준이 높아져서가 아니라 경기침체에 따른 물량 감소 등에 따라 연장·휴일 근로 등이 줄어들어서라고 보인다. 이 나라 노동자의 연간 평균 근로시간이라는 2천57시간도 법정근로시간 주 40시간에 연차휴가 등을 사용하고서 근무할 때 연간 1천800시간 정도라는 점에서 우리 노동자들에게 법정근로시간이 최고 근로시간으로 기능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노동지표는 보여준다.

노동시장에서 실제 은퇴하는 나이는 2014년 기준 남성 72.9세, 여성 70.6세로 34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았다. OECD 평균 은퇴연령은 남성 64.6세, 여성 63.2세이고, 남성 기준으로 프랑스(59.4)·벨기에(60.0)·슬로바키아(61.1) 등 일찍 은퇴하는 나라에 비해 한국 노동자들은 무려 10년 이상 더 일해야만 하는 것이다. 늙어서도 국민연금·퇴직연금 등 사회보험을 통한 생활보장이 되지 않으니 일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 노동자의 근속기간은 5.6년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짧은 것으로 발표됐다. 최근 정년연장법 시행을 앞두고 사업장마다 임금피크제로 임금 삭감 소동으로 야단법석이었는데, 근속기간에 관한 노동지표는 이 나라에서 정년제도가 당연퇴직되는 근로계약의 상한선을 정하는 것이지 정년까지 고용이 보장되는 제도가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정규직 고용이 과보호돼 노동시장 경직이 문제라며 추진해 온 박근혜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혁론이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남성과 여성 노동자의 임금격차도 세계 1위라고 발표됐다. 남성 중위임금을 100으로 봤을 때 여성 중위임금은 63.4로 22개 나라 중 1위를 차지했는데, OECD 평균(84.6)은 물론이고 2위 일본(73.4)과 비교해도 큰 차이를 보여 남녀 임금격차가 심각한 지경임을 지표로 보여주고 있다. 분배지표를 보면 2014년 기준 노동소득분배율(국민소득 중 노동소득 비율)이 62.8%로 관련 통계를 낸 OECD 25개 나라 가운데 18위로 발표됐다. 경제활동으로 창출한 이익 가운데 노동자보다 사용자 기업이 가져가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걸 말해 준다. 한국의 취업자 1인당 노동생산성은 2013년 US달러 PPP 환율 기준 6만2천달러로 34개국 중 22위고, 이 중 서비스업이 4만7천달러로 26개국 중 21위로 이 서비스업종의 낮은 생산성이 전체 노동생산성을 하락하도록 한 원인으로 발표됐다. 희망퇴직·명예퇴직·정리해고 등으로 일찍이 사업장에 쫓겨나고 청년은 취업하지 못해 실업자로 전전하다가 영세한 자영업을 하거나 그에 알바 등으로 일하게 되는 이 나라에서는 그런 자영업자들 천지인 서비스업에서 높은 생산성을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상과 같은 노동지표에 더해 우리의 노동조합 가입률은 10.1%로 30개 나라 가운데 27위다. OECD 평균(27.8%)의 3분의1 수준이고, 특히 아이슬란드(85.5%)·핀란드(69.0%)·스웨덴(67.7%)·덴마크(66.8%) 등 유럽 나라들과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발표됐다. 개인사업자 자영업으로 분류돼 통계 대상에서 제외된 이들을 배제한 것이니 이들까지 포함해서 보면 노조가입률이 낮은 순위로 1위를 차지했을 것이다.

3. 이처럼 임금·노동시간·고용·노동분배·노조 가입 등 각종 노동지표가 OECD 최하위 수준이다. 휴가로 절반이 빈 사무실에서 일을 마치고 퇴근하면서 버스에 앉아 스마트폰을 꺼내 노동뉴스를 찾다가 노동부 2016년판 「통계로 보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모습」 자료를 인용한 기사를 읽었다. 이 노동지표, 어떻게 읽어야 할까. 앞에서 나는 나름대로 노동지표를 개별적으로 읽었다. 그러나 노동지표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돼 있고, 그것을 인과관계의 전후를 따져 읽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나라에서 이런 노동지표는 이렇게 읽어 왔다. 노동생산성이 낮으니 임금 등 노동자권리 수준이 낮은 것이고 노동분배율도 낮은 거라고 읽어 왔다. 사용자 자본과 그 대변자들은 지금까지 노동지표를 이렇게 읽고서 노동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그래서 성과주의를 도입해야 한다며 성과연봉제·직무성과급제·임금피크제 등 임금체계 개편을 하고 성과부진자 퇴출 등 성과주의 인사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임금과 고용의 경직성이 문제라며 대기업 정규직의 권리를 삭감해야 한다고 말해 왔다. 바로 박근혜 정부가 추진해 온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취지와 과제였다. 여기에 요즘처럼 대기업노조가 파업이라도 할 때면 고임금 정규직의 귀족노조가 떼를 쓰고 있다고 선진외국과 비교하며 노동생산성을 말해 왔다. 그런가. 그럼 노동생산성이 높은 사업장 노동자는 높은 임금과 고용 보장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나라에서 노동생산성이 다른 어느 사업장보다 높을 수밖에 없는 대기업 사업장 노동자는 높은 수준의 권리를 보장받아야 마땅한 것이라는 것인데, 어째서 날마다 노동귀족이니 뭐니 하며 비난이란 말인가. 사실 따져 보면 노동생산성이 낮다는 것은 노동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노동생산성 하위 지표는 노동 후진성에 관한 지표라기보다는 자본 후진성에 관한 지표다. 생산에 관한 자본의 투자가 많을수록 노동당 생산의 양 내지 가치는 많아진다. 자동화된 대량생산체계가 도입된 현대 작업장에서는 몇십 년 숙련노동을 통해 취득할 수 있는 노동자 기술에 의존해 생산이 이뤄지지 않는다. 생산에 관한 낮은 투자로는 높은 노동생산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자본의 높은 수준의 투자로 높은 노동생산성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노동부의 노동생산성 지표에서 앞 순위를 차지하는 나라들, 즉 미국·프랑스·영국 등의 노동자들이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높은 기술을 가지고 있어 노동생산성이 높은 것이 아니라 생산시설 등에 관한 자본의 높은 투자가 있어 노동생산성이 높은 것이다. 그럼에도 이 나라에서는 툭하면 노동생산성 지표를 들이대며 노동자 임금이 높다고, 고용보호가 지나치다고 자본과 권력은 말해 왔다. 실제로는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그것은 노동의 탓이 아니라 자본의 탓인데도 말이다.

4. 노동생산성이 높다고 임금·고용 등 노동자권리가 당연히 높은 수준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다. 높은 노동생산성이 높은 노동분배율로 나타나지 않는다. 사용자 자본이 스스로 제 몫을 노동의 몫으로 양보하지 않는 한 노동생산성 향상이 노동분배율 향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지난 수백년, 자본의 역사를 통해 스스로 양보는 없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자본의 위기를 초래할 정도의 위협이 없는 한 양보는 기대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결국 사용자 자본에 대한 노동자의 집단적인 압박을 행사할 노동조합이야말로 노동분배를 높은 수준으로 확보하기 위한 노동의 무기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세상에서 노동조합은 보다 많은 노동의 몫을 위해 노동자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존재한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노동조합이 사용자를 상대로 조합원의 임금 등 근로조건을 향상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노동부의 자료집은 노조가입률이 낮은 대한민국이 열악한 노동지표들을 나타내고 있음을 보여줬다. 열악한 노동지표들은 노동자권리와 노동기본권에 관한 대한민국의 성적표가 낙제 수준에 가깝다는 걸 말해 준다. 또한 그것은 이 나라에서 노동조합이 노동자권리를 위해 제대로 활동하고 있지 못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열악한 노동지표들은 노동자권리를 위한 교섭과 투쟁으로 노동조합의 생산성을 높여야 할 때라고 말하고 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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