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78서울도시철도공사에 지난 2003년 입사한 기관사 김아무개(41)씨는 최근 강제 퇴출논란 중심에 서있다. 그가 지난 2010년 수동운전 비율이 낮다는 이유로 직무재교육 발령을 받은 것이 발단이었다. 그는 발령받은 지 한 달도 안 돼 해임됐다. 이듬해 복직한 그에게 돌아온 것은 관리자의 면박과 비인간적인 감시였다. 이를테면 관리자는 김아무개씨가 기관차 운전을 하는 동안 동승해 "똑바로 하라"며 윽박을 질렀다. 김씨는 특별교육 명목으로 교육실에 홀로 있거나 사무실 청소 작업을 했다. 기관사 본연의 업무와는 거리가 먼 작업들이다. 사내에선 정신교육이라는 불리는 것이다.

김씨는 올해 공황장애 증상으로 열차운전 업무를 하기 어렵다고 호소하며 휴가를 신청했다. 하지만 김씨는 지난 7월 결국 퇴사했다. 이와 관련해 5678서울도시철도노조 승무본부는 “김씨는 복직 이후 관리자들에게 집단 괴롭힘과 인격모독행위, 감시 등 부당한 일을 당했다”며 “사측의 불법노무관리와 억압적인 조직문화가 원인이 돼 강제퇴출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직급제도 폐지해 억압적 조직문화 바꾸자"

2014년 2월 서울시가 발표한 ‘도시철도공사 승무분야 특정감사 결과’에 따르면 공사측의 불법적 노무관리는 사실로 드러났다. 이에 따르면 공사측이 2001년부터 2009년까지 직원들의 성향을 A~C 등급으로 분류해 관리해 왔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는 공사에 기관경고와 관리자 4명을 고발조치했다. 노조 관계자는 “공사에는 아직까지 군대문화가 남아 있다”며 “억압적인 조직문화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03년부터 현재까지 공사 기관사 9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다. 97%에 달하는 지하구간과 근무환경, 정신질환이 발생해도 말하기 어려운 억압적 조직문화가 배경으로 지적되고 있다. 2인 승무로 운행되는 1~4호선 서울메트로와 달리 5~8호선은 1인 승무로 운행돼 1인 승무에 대한 압박감도 매우 크다.

노조는 조직문화 개선을 위한 직급제도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단일 호봉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승무분야는 1~3급 관리자를 제외한 4~9급이 직급에 관계 없이 모두 같은 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이다. 승진과 불필요한 경쟁은 기관사의 안전운행과 정신건강을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태훈 노조 승무본부장은 “관리자들이 직원들을 관리하기 위한 가장 편한 수단으로 승진을 이용한다”며 “기관사들이 안전운전에 전념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직급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96일 농성으로 쟁취한 특위

기관사의 죽음을 막기 위해 2012년에도 ‘기관사 처우개선 노사특별위원회’가 운영됐다. 같은해 ‘서울시 지하철 최적근무위원회’도 구성돼 관련 대책을 내놨지만 예산을 이유로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죽음을 택하는 기관사는 또 늘었다. 올해 4월 또 한 명의 기관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자 노조는 서울시에 대책마련을 요구하며 지난달 22일까지 96일간 2호선 시청역에서 농성을 벌였다. 그 결과 서울시 교통본부 산하에 기관사 대책 이행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서울시와 합의했다.

특위에는 △공황장애 등 정신질환 유소견자들에 대한 대책 △노동조건·처우개선 등 기존 대책 이행 △기관사 정신건강 관련 역학조사 및 근본대책 마련을 검토하는 3개 소위가 꾸려진다. 2인 승무제 시범 도입과 직급제도 폐지 등이 논의된다. 권오훈 노조 수석부위원장은 “96일간의 노조의 농성 투쟁을 통해 쟁취한 만큼 특위에 기대가 크다”며 “지나친 경쟁적 시스템을 없애고 비용이 크게 들지 않는 직급제도라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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