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 아산에 위치한 갑을오토텍은 지난 2014년 경찰·특전사 출신 신입사원을 채용해 금속노조 충남지부 갑을오토텍지회 무력화를 시도해 비난을 산 바 있다. 2년전 시작된 노사갈등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해 지회가 공장 안에 내걸었던 투쟁 플래카드들은 여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제정남 기자
▲ 갑을오토텍 가족대책위원회가 도시락을 싸들고 31일 공장을 찾았다. 20일 넘게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지회 조합원들과 간만에 웃음꽃을 피웠다. 제정남 기자
▲ 박종국 지회 부지회장이 가족들 앞에서 공장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가족대책위 가족들은 "직장폐쇄가 되면 연대하러 오실 분들은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제정남 기자

"아빠!"

막내딸 수빈(12)양이 도시락 한아름 담긴 가방을 발 아래 던지고는 박제한(44)씨 품에 달려들었다. 투쟁조끼 걸치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던 아빠의 끈적끈적한 팔이 싫지 않은 모양이다. 아빠의 포옹을 한참이나 말없이 받아 준다. 금속노조 충남지부 갑을오토텍지회 고용안전부장인 박씨는 20일이 넘도록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지회 조합원 380여명 지난달 8일부터 공장 철야농성

지회는 갑을오토텍의 대체생산 중단과 대체인력 투입에 반대하며 지난달 8일부터 공장에서 철야농성을 하고 있다. 지회 조합원 380여명의 가족들은 그날 이후 아빠·남편·자녀의 얼굴을 집에서 보지 못하고 있다.

31일 오전 충남 아산 갑을오토텍 공장 안은 모처럼 활기를 띠었다. 조합원 가족들이 도시락을 싸서 공장을 찾았기 때문이다. 조합원들은 평소 자기가 일했던 곳을 중심으로 농성을 벌이고 있다. 히터조립부·포장라인·인터쿨러 완성라인 등 자동차부품 생산이 이뤄지는 현장 곳곳에 좌판이 펼쳐졌다. 펼쳐 놓은 박스가 돗자리가 되고, 자동차 생산부품을 담던 플라스틱 박스가 밥상이 됐다.

"한식 뷔페가 왔네."

조합원들의 합박웃음이 대형 선풍기 바람을 타고 공장 안을 맴돌았다. 김미순(47) 갑을오토텍 가족대책위원장은 가족끼리 밥상을 두고 마주 앉은 시간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그는 "전장으로 가족을 떠나보내는 심정으로 마련한 행사"라고 안타까워했다.

"1년간 무파업 약속하라" vs "노조파괴자 채용철회 약속 지켜라"

갑을오토텍은 지난 26일 직장폐쇄를 단행하고 다음날인 27일 아산경찰서에 용역경비 배치신고를 했다. 같은날 신고를 철회했다가 29일 경비배치를 재신청했다. 1일 오후 150여명의 용역경비를 공장에 배치한다는 계획이다.

갑을오토텍은 2014년 경찰·특전사 출신 신입직원을 채용해 노조파괴를 밀어붙였다. 지난해 지회와 이들의 물리적 충돌로 지회 조합원 수십 명이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다.

지난해와 같은 폭력사태 재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데도 노사갈등을 해소할 접점은 보이지 않는다. 아산시 노사민정협의회는 28일 회의를 열고 갑을오토텍 노사에 평화적 사태해결을 촉구했다.

지회에 따르면 사측은 이날 회의에서 "향후 1년간 파업을 하지 않겠다는 확약을 하면 직장폐쇄를 철회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지회는 "경비 외주화 철회와 경찰·특전사 출신 직원의 채용을 취소하겠다는 노사합의부터 이행하라"고 반발했다.

노사갈등이 증폭되는 사이 가족들의 속은 타들어 갔다. 지회 조합원 중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고령인 경우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가족들이 가족대책위로 모였다. 210여명이 활동 중이다. 가족대책위는 법원·경기도청·아산경찰서를 비롯해 행정관청을 모두 찾아다녔다. 가족들의 노력에도 용역경비 배치 가능성은 높아지기만 했다. 그때 "남편·아빠 얼굴 보며 제대로 된 밥이라도 한 번 먹자"는 누군가의 제안으로 이날 도시락 행사가 마련됐다.

용역경비 배치 앞두고 긴장고조

점심식사 후 가족대책위 관계자들이 지회 회의실에 모였다. 엄마의 손을 잡고 온 아이, 혹은 엄마를 위로하는 듬직한 자녀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재헌 지회장과 박종국 부지회장이 가족들 앞에 섰다. 도시락 행사에 대한 감사인사와 농성의 정당함을 설명하는 사이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런 다음 가족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용역깡패가 투입되면 연대대오는 얼마나 오기로 돼 있나요?"

"남편이 다칠까 봐 걱정돼서 물어보는 말씀이시죠. 적어도 400~500명이 올 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난해처럼 조합원들이 피투성이가 되는 일이 절대 없도록 지회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박 부지회장이 약속했다.

지회는 이날 오후 공장 내에서 '노조파괴 분쇄 투쟁결의대회'를 개최했다. 경찰은 경력 수백 명을 동원해 지회 조합원·가족이 아닌 사람들의 공장 출입을 정문에서 막았다.

 

▲ 제정남 기자
갑을오토텍 노조파괴 사태 2년은 지회 조합원들과 가족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직장폐쇄 사태가 불거진 뒤 가장 먼저 지회 조합원들을 격려하고 나선 이들은 가족이었다.

<매일노동뉴스>가 김미순(47·사진) 갑을오토텍 가족대책위원장을 31일 오후 지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 가족대책위는 어떻게 꾸려졌나.

"갑을오토텍은 지난해에도 경찰·특전사 출신 신입직원들을 채용해 노조를 파괴하려 했다. 경찰이 깔리고 용역경비가 배치됐다는 소문을 듣고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평소 교류하던 몇몇 가족이 공장을 찾았다. 남편이 맞는 걸 지켜볼 수 없어 7~8명의 여자들이 무작정 용역경비 앞에 섰다. 그런 소문을 듣고 또 다른 엄마들이 회사 앞으로 달려와 우리들 손을 잡고 나란히 서 줬다. 가족대책위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 직장폐쇄 이후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다.

"지난해 사건은 우리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 아팠다. 억울함에 남편 뒤에서 울었다. 우리끼리 만나서 또 울었다. 당시 남편들을 폭행했던 용역경비들이 아직 사원아파트에서 같이 살고 있다. 내색하지 않으려 하는데, 지나치다 마주칠 때면 가슴이 쿵쿵 뛴다. 그렇게 1년을 살았다. 이번에 또 노사 충돌 얘기가 나온다. 지난해에는 폭력 앞에서 속수무책 당하기만 했다. 이번에는 남편과 가족들이 폭력에 노출되기 전에 막아야 한다고 마음을 모았다."

- 지난 28일 지회가 갑을상사그룹 본사 앞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남편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박종국 부지회장이 남편이다.(웃음) 내 남편은 30년간 이곳에서 일했다. 수차례 경영자가 바뀌는 동안에도 남편을 비롯한 노동자들은 묵묵히 현장을 지켰다. 갑을오토텍을 만들어 온 건 노동자들이다. 그럼에도 회사는 묵묵히 일해 온 노동자와 내 남편·동료들을 벌레처럼 취급하면서 몰아내려 한다. 남편들이 열심히 일한 결과로 세워진 회사 아닌가. 우리를 왜 이렇게 대하는지 모르겠다."

- 조합원이 380여명인데, 가족대책위에서 활동하는 분이 210명이나 된다.

"결혼하지 않았거나 고령의 조합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가족이 함께하고 있다. 지난해 경험으로 투쟁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 나라는 아무것도 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게 됐다. 지금 직장폐쇄 사태에서도 고용노동부·경찰 등 관계된 정부기관 어디에서도 노동자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우리를 대변해 주는 곳이 있으면 왜 가족들이 나섰겠나. 불안해하는 가족들이 많은데, 이번 싸움에서 우리가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자신한다."

- 지회 조합원들이나 남편 혹은 남편의 동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내 남편과 내 가족을 지키는 일이다. 도저히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어 가족대책위로 모여 있다. 최선을 다해 보려 한다. 지난해처럼 남편들이 폭력에 휘둘려 상처받기 전에 제발 잘 해결될 수 있기를 희망하고 기도한다. 반드시 이길 수 있고, 또 이겨야만 하는 싸움이다.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함께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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