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날씨가 무척 덥습니다. 이 더위에 논밭이나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는 농민이나, 겨우 선풍기 몇 대 힘겹게 돌아가고 있는 공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을 노동자들을 생각하면, 에어컨 켜져 있는 사무실은 천국입니다. 갑자기 감방에 있는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과 배태선 전 조직실장 등이 생각납니다. 얼마나 힘들까요? 고 신영복 선생님은 오랜 징역살이를 하면서 그의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서 여름 징역살이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 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여름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도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한상균 위원장 등 옥에 있는 노동자들은 징역살이의 여러 물리적 조건이 주는 어려움보다는 더 원천적인 고통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박근혜 정권의 노동운동과 민중에 대한 탄압입니다. 사실 민주노총의 주요 간부인 위원장과 조직실장 등은 조직의 결정에 참여하고 그 결정을 집행할 책무가 있습니다. 총파업이나 민중총궐기 등은 바로 그런 일들입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헌법에 의해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된, 집회·결사의 자유 범주 안에 있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일어난 사소한 위법행위를 침소봉대해, 그것이 마치 본질인 양 범죄시하면서 엄청난 법적 제재를 가하는 것은, 독재체제의 민중에 대한 탄압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정치적 탄압이 지구촌 곳곳의 미개국에서 아직도 자행되고 있음을 보는데, 세계 경제 10위권인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일어나고 있어 안타까울 뿐입니다.

나는 우리나라가 군사독재의 틀을 완전히 깨지 못했던 노태우 정권 시절인 1990년에 민자당 일당독재 분쇄와 민중기본권 쟁취를 위한 국민연합의 집행위원장을 맡아, 1년여 동안 수없이 많은 반정부 집회와 시위를 주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해 생겼던 고 강경대 살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범국민대책회의 집행위원장도 맡았습니다. 그 일을 수행하는 동안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하는 엄청난 시위가 전국에서 일어나고, 경찰과 시위대 사이의 충돌로 많은 피해가 발생한 적이 있습니다.

결국 나는 1991년 여름, 단식농성을 하며 저항하던 명동성당에서 경찰에 끌려가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는데, 적용된 법률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폭력행위처벌법) 위반이었습니다. 공무집행 방해나 도로교통법 위반 등은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집회와 시위를 하다 보면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지요. 폭력행위처벌법 위반도 그 당시는 야간집회와 시위가 허용되지 않은 상황에서, 야간에 집단적으로 화염병이나 짱돌 등을 던져 경찰이 다친 경우에 적용했습니다. 그렇게 다쳐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경찰만 200여명에 달했는데, 이 경찰들이 모두 증인으로 출석하는 바람에 법원 복도가 경찰로 가득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아무튼 나는 집행위원장으로 상임대표였던 한상렬 목사와 모든 책임을 졌습니다. 다른 그 누구도 구속기소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1심에서 받은 형량이 징역 2년6월이었습니다. 어떻습니까? 1년 이상을 화염병과 짱돌 등을 날리며 전국에서 시위를 하고, 다친 경찰만도 200여명에 가까운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한상균 위원장은 서울에서 몇 번의 집회와 시위로, 지금은 야간시위도 법적으로 보장돼 있고 다친 경찰이 한 명도 없는데, 무려 5년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실무책임자인 조직실장도 3년을 받았습니다. 지금의 노동운동 탄압이 군사독재 시대보다 훨씬 가혹하고 악랄하다는 반증입니다.

여름징역은 그때나 지금이나 힘듭니다. 그러나 스스로 선택한 길이기에 당당합니다. 또 이런 시절엔 누군가는 있어야 할 자리입니다. 지금 민주노총 사무실에 있는, 그렇게 해서 생긴 빈 책상은 다른 동지들에게 훨씬 큰 힘을 줍니다. 그리고 전체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등대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도 거친 파도를 헤쳐 나가는 우리 노동자들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고 있습니다.

전태일재단 이사장 (president11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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