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희 공인노무사(금속노조 법률원)

지난 22일 금속노조 조합원 3만명이 서울에 모였다. 34도가 넘는 뙤약볕과 녹아내릴 듯한 아스팔트 열기를 고스란히 받으며 일부는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앞에서, 일부는 여의도에서 비 오듯 구슬땀을 흘리며 파업 결의를 다졌다.

파업을 앞두고 정부는 금속노조가 추진하는 현대·기아차그룹사 교섭에 대한 조정신청에서 조정대상이 아님을 통보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합리적 노사관계 구축"을 강조하면서 노조 파업을 "파업시기와 방법을 정하고 맞춰서 하는 불법파업"이라고 매도하고 "불법행위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법과 원칙이라는 말이 수년째 횡행하고 있다. 노동부는 법과 원칙을 적용해 파업에 엄정 대응하겠다고 강조한다. 대체 법은 무엇이고, 원칙은 무엇인가.

헌법이 근로자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제한 없이 보장하고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법과 원칙이다. 근로자들의 자주적 단결체인 노동조합이 파업 시기와 방법을 스스로 정한 것은 당연한 권리행사다. 정부는 귀족노조론을 비롯한 온갖 비방으로부터 노조 권리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 헌법의 노동권 보장 정신이자 지켜야 할 원칙이다.

노동조합이 교섭을 요구하면 사용자는 성실히 응해야 한다. 사용자의 성실교섭의무가 법과 원칙이다. 노조가 교섭을 요구하면 사용자는 우선 단체교섭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교섭을 집단으로 할 것인지, 교섭 대상을 무엇으로 한정할 것인지 등의 항변과 이견은 교섭개시 이후 문제다. 교섭장에 들어서지도 않은 채 교섭방식을 문제 삼아 교섭 자체에 응하지 않는 것은 교섭에 대한 거절, 즉 교섭 상대방과의 회합 자체를 거부하는 문제다. 이런 성실교섭의무 위반 문제는 교섭방식에 대한 사용자의 이견이 정당하고 합리적인 것인지 등 다른 사정을 고려할 것도 없이 그 자체로 단체교섭권 침해다. 따라서 노동위원회는 사용자의 단체교섭권 침해를 노동조합이 쟁의행위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해 줘야 마땅하다.

근로조건 결정에 대한 노사 간 의견 불일치는 교섭이 개시됨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교섭개시가 불가능하다면 조정중지를 통해 노사가 스스로의 힘을 통해 상대방을 견인할 수 있도록 노사 자율에 맡겨야 한다. 노사자치 원칙이 노동 3권을 보장한 헌법 정신이고, 현재도 통용되고 있는 무엇보다 중요한 원칙이다.

올해 금속노조는 중앙교섭 참여를 수년째 거부하고 있는 현대·기아차에 그룹사교섭을 요구했다. 현대·기아차는 실질적으로 많은 계열회사들의 지배기업이고, 이들 계열회사 사업장의 근로조건도 대주주 이름으로 사실상 결정하고 있다. 예컨대 현대차와 현대로템은 형식상 다른 법인격인데도 현대차는 현대로템의 지분 43%를 소유하고 있다. 현대로템의 중요한 사항을 결정할 수 있는 실질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고, 또 행사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해 금속노조는 현대·기아차그룹사 근로조건을 공동교섭으로 결정하자고 요구하는 것이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과 회사법·상법·세법에서도 기업집단·사업자단체·연결재무제표·업무집행지시자·연결납세제도 등 한국 대기업, 특히 재벌들의 지배적인 영향력 행사라는 실질을 포착해 제도화하고 있다. 재벌기업들의 지배구조 실질을 반영한 노동조합의 공동교섭요구가 내용상으로도 합리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국의 원·하청 구조를 봐도 이런 기업지배의 실질이 반영될 필요가 충분하다. 노동법은 원청이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원청의 부당노동행위가 성립될 수 있다고 이미 인정했다. 단체교섭 영역도 재벌사와 계열회사 혹은 원·하청이라는 지배구조를 반영해 근로조건 결정 과정에서 교섭방식의 다양함을 열어야 한다.

중앙교섭·그룹사교섭을 포함한 다양한 교섭구조의 제도적 보장은 대기업의 조직된 노동자 근로조건이 낙수효과처럼 중소 영세사업장, 비정규직과 하청사업장 근로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가는 것이기도 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근로조건이 동반 상승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 경제의 소비력이 커져 이것이 다시 기업 이윤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들어 가기 위한 구체적 내용으로 유연한 단체교섭 방식의 운용이 법과 원칙에서 위배되는가. 오히려 법과 원칙을 통해 만들어 가려는 이 시대 정의관념에 부합하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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