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노무현 정권 말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냐"고들 떠들었다. 결국 현실정치 향배에서 민주주의는 그 ‘밥’을 찾는 이들에게 밀렸다. 그 후로 8년여 보수정부의 시대가 이어지고 있다. 문득 그때 민주주의 대신 밥을 외쳤던 이들은 현재 배가 부른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즈음해서 한번 다시 묻고 싶다. 정말 민주주의는 밥을 먹여 주지 않는가.

나는 민주주의야말로 밥을 먹여 주는 핵심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야말로 바로 한 사회 일자리의 양과 질을 구성하는 데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밥이란 곧 일, 즉 노동을 의미하는 거 아닌가.

1960년대와 70년대 개발독재 시절에는 주로 영남에 산업기지가 형성됐고 영남 출신자들만이 요직을 차지했다. 기름진 평야지대·곡창지대인 호남은 산업사회의 서자로 전락했다. 경제적 소외와 정치적 소외의 결과 호남은 광주학살과 같은 현대사의 참사까지 경험하게 됐다. 호남의 소외나 광주학살과 같은 만행은 만일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했으면 모두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최근 ‘광주형 일자리 창출모델’이 공론장과 정책계에서 심상치 않게 회자되고 있다. 원·하청 간의 심각한 임금격차, 두 자릿수에 안착한 듯 보이는 청년실업률, 서비스부문 확대, 주변부 취약고용, 그리고 침강해 가는 제조업과 움츠러든 국내 투자. 이러한 사회적 악재의 한가운데에서 별도법인을 만들어 적정임금을 부여하고 지역고용 거버넌스를 활성화시켜 노동시장 질서를 바로잡고 노사관계를 재구조화함으로써 궁극에 양질의 투자, 양질의 일자리 창출의 활로를 열어 보자는 것이 바로 ‘광주형 일자리 창출모델’의 핵심 아이디어다.

최근 구조조정 국면이 전개되는 가운데 현 정부 경제정책의 최고위 관계자가 몇 차례나 광주형 일자리 창출모델의 의미를 강조하고 나섰다는 이야기가 일부 신문지상을 장식하더니, 7월에 접어들어 KBS <시사기획 창>과 <심야토론>에 이어 광주MBC <갑론을박> 등 중앙과 지방의 주요 시사TV 프로그램까지 ‘광주형 일자리’에 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그러한 와중에 광주에 자동차 100만대 생산기지를 설립하는 방안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가 반년여 동안 검토에 재검토를 거치다 결국 약 3천억원의 정부 예산을 지원하는 쪽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그러한 결정이 가능했던 것에는 자타 공인 ‘광주형 일자리 창출모델’이 제안서에 담겼기 때문이다. 이에 광주시가 이번주에 ‘더 나은 일자리 위원회’를 구성해 광주형 일자리 추진의 핵심부대 역할을 이어 가도록 하는 등 사업 주체측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렇게 산업화의 서자, 일자리의 불모지인 호남·광주지역에 지금 새로운 바람이 부는 듯하다.

광주형 일자리에서 주목할 것은 일자리 문제를 관계 문제에서 파악하려는 것이다. 거기에서는 내 일자리, 내 밥그릇을 넘어 남의 일자리, 남의 밥그릇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려 한다. 민주주의가 반드시 이타적일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더불어 같이 살기’ 위한 수단이라면, 광주형 일자리에는 그러한 민주주의적 관심이 내재해 있다.

그렇기에 만일 광주형 일자리의 구체적인 청사진이 확정되고 그것을 투자자와 노동자 그리고 지자체와 시민들이 함께 공유하면서 자동차 생산기지 실현이 본격적으로 이뤄진다면,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의 승리요, 우리 사회 업그레이딩의 효시라고 볼 수 있다. 광주형 일자리는 다른 무엇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밥을 먹여 준다"는 테제를 우리에게 검증해 줄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mjnpark@kl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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