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18일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현대·기아차가 임금인상을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청 대기업 노사가 임금인상을 자제하고 남은 재원으로 협력사를 지원하는 상생정책을 펼쳐 중소기업을 청년이 가고 싶은 직장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 장관은 청년 일자리를 위한 핵심 과제로 대·중소기업 격차 해소를 제시했고 현대·기아차는 격차를 확대하는 원·하청 관계의 정점에 서 있는 대기업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대·중소기업 격차의 근본 문제는 원·하청 불공정 거래라는 측면에서 정부가 기업책임을 먼저 묻기보다는 임금문제를 꺼내 노동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적지 않다. 또 노동부가 청년고용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정책 실패를 남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현대·기차아 ‘격차 확대’ 정점 기업 지목

이기권 장관은 이날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브리핑을 열고 “2016년 하반기 고용노동정책은 청년고용 확대에 가장 큰 중점을 두고 추진할 계획”이라며 △대·중소기업 격차 해소 △정규직 직접고용 문화 정착 △일자리 디딤돌 역할 강화·고용서비스 혁신을 핵심 과제로 내세웠다.

이 장관은 브리핑 모두발언 상당부분을 금속노조 현대·기아차지부를 비판하는데 할애했다. 그는 “현대·기아차 연봉은 9천700만원 정도인데 올곧이 (정규직 노조) 조합원 노력의 대가인지, 2·3차 협력업체의 대가도 포함된 것인지 냉철히 판단해야 한다”며 “자동차업종 1·2·3차 협력업체의 임금수준은 원청의 64%·34%·29%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협력업체 근로조건을 향상하고 원청이 자제했더라면 협력업체에 청년들이 훨씬 많이 취업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올해도 7.7%의 임금인상을 요구한 것은 청년 취업 희망을 빼앗는 이기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현대차노조와 조합원들이 깊이 인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지난해 임금인상분 10%인 66억원을 협력업체 노동자 처우개선에 사용한 SK하이닉스 노사의 합의와 KT&G가 노조 임금동결과 기업 추가출연으로 200억원을 조성해 협력업체 비정규직 1천600여명을 지원한 것은 상생협력 사례로 치켜세웠다.

이 장관의 이러한 발언은 박근혜 정부나 새누리당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크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지난달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모두 격차 해소를 시대적 과제로 내세웠다.

그러나 해법이나 강조점이 달랐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상층 노동자(고임금·상위 10%)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비정규직에게 대폭 양보해 중향평준화를 이루자”는 점을 강조한 반면 김종인 대표는 “거대경제세력의 특권적·탈법적 행태를 규제하고 공정한 게임 규칙을 만드는 경제 민주화”에 방점을 뒀다. 경제민주화 핵심 과제로는 대기업 불공정 거래 개선을 꼽았다. 여당은 노동자 책임과 양보를 촉구한 반면 야당은 기업의 책임과 공정한 경쟁을 강조한 것이다.

한국노총 “청년고용 정책 실패, 장관 사퇴해야”

이기권 장관은 이와 함께 자동차·조선·철강·정유·전자·공공기관을 주요 고임금 업종으로 지목하면서 “올해 하반기 원청과 1~3차 협력업체 고용형태·근로조건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노동시장 격차의 심각성과 해소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하겠다”고 밝혔다.

또 정규직 직접고용 문화 정착을 위해 불법파견·차별시정 감독에 나서는 한편 특수형태근로종사자·사내하도급 기간제 노동자를 직접 고용할 때도 정규직 전환 지원금을 주기로 했다. 이 장관은 “이달부터 전국 1천230여개 사업장에 대한 불법파견 근로감독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노총은 이날 성명을 내고 “이기권 장관은 청년 일자리 창출 실패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노총은 “이 장관은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13만개 청년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주장했으나 재벌의 배만 불렸을 뿐 일자리 창출은 유언비어 수준의 왜곡·날조임이 드러났다”며 “그런데도 일언반구 사과도 없이 마른 수건 쥐어짜듯 정규직과 노조의 일방적 희생만을 강요하는 정책을 또다시 청년 일자리 대책이라고 내놓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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