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 노동자들이 격앙됐다. 오는 20일부터 집단행동에 들어간다고 예고했다.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대형 조선소 노동조합이 속한 조선업종노조연대가 주축이다. 정부와 채권단이 구조조정을 압박하고, 조선소들이 자구계획안을 내놓은 데 따른 것이다. 현대중공업은 자회사 전적을 통해 정규직 1천명을, 삼성중공업은 희망퇴직을 통해 정규직 5천명을 단계적으로 감원한다는 방침이다. 대우조선해양도 특수선사업을 정리한다고 밝혔다. 조선소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직격타를 맞은 가운데 직영 정규직 노동자에게도 구조조정 파장이 미치고 있는 셈이다.

현대중공업노조가 지난 90년 파업과 함께 골리앗크레인 농성을 벌인 이후 조선업에서 격렬한 노사분쟁은 거의 없었다. 대형 조선소는 노사협력 모델이라는 신화도 만들어졌다. 대형 조선소노조는 산별노조로의 전환을 하지 않았고, 상급단체를 탈퇴하기도 했다. 조선업 호황은 이를 뒷받침했다. 조선산업은 90년 중반 이후 시쳇말로 잘 나갔다. 대형 조선소들은 외환위기(98년)와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의 파고 속에서도 승승장구했고, 이런 경쟁구도에서 노조들도 각개 약진을 했다. 대형 조선소 노사는 정규직 고용을 유지하되 외주화·사내하청을 묵인하는 방식으로 타협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과잉중복 투자의 거품이 꺼지면서 중소 조선소들은 도산과 폐업행진을 이어갔지만 대형 조선소는 위기를 지연시킬 수 있었다. 고유가 바람을 타고 석유·가스 채굴 해양플랜트 사업이 호황을 이뤘기 때문이다. 결국 거품은 꺼졌다. 안정된 노사관계를 구축해 온 대형 조선소에서도 균열이 일어났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조선업종노조연대다. 공장 담벼락을 넘지 않았던 조선소 노동자들은 연대파업을 공언할 정도로 변했다. 조선업 노사관계는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된 90년대 이전으로 돌아가느냐, 새로운 변화의 계기를 맞느냐라는 기로에 선 것이다.

혹자는 단체행동에 나선 조선소 정규직을 빗대어 “배부른 항변을 한다”고 질책한다. 구조조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은 자기 밥그룻만 지키려 한다는 식이다. 이것이야 말로 편협한 시각이다. 대형 조선소 정규직이더라도 안전지대에 있는 것은 아니다. 조선소에서 근무하는 이들의 미래는 불확실해 졌고, 발등엔 감원 불똥이 떨어졌다. 정규직이든 사내하청이든 예외는 없다.

되돌아보면 구조조정에 대한 반발은 정규직에서 촉발되고, 사회적 파장도 컸다. 쌍용자동차 사례만 봐도 그렇다. 쌍용차 정규직 노조는 정리해고에 맞서 77일 동안 옥쇄파업을 벌였다. 정리해고 휴우증은 심각했고, 사회적 충격도 오래갔다. 그런데도 정부와 채권단은 변하지 않았다. 정부와 채권단은 조선업종노조연대의 대화 요구에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되레 노조가 조선소들이 제출한 자구계획안에 동의하지 않으면 자금지원을 끊겠다는 태세다. 여전히 밀어붙이기식 구조조정이다. 외환위기 이후 겪었던 악순환의 되풀이다. 이러니 노조가 파업으로 맞불을 놓겠다는 것 아닌가.

정부가 먼저 변해야 한다. 정부는 인력감원을 최소화하면서 조선산업을 살리려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정부부터 솔선수범해 구조조정의 방향과 목표 그리고 추진방식에 관해 노사와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 채권단의 손에 한국 조선산업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지 않는가. 이웃나라 일본도 조선업에 위기가 닥치자, 정부가 리더십을 발휘했다. 업종차원의 노사협의기구는 충실한 협의를 진행했고, 정부는 노사의 의견을 반영하려 했다. 유럽의 경우 산업별 노사교섭뿐만 아니라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통해 구조조정의 충격을 줄이려 했다. 노사정이 사회적 대화를 통해 '조율된 구조조정'을 추진했다는 얘기다.

누구든 세계 1등 산업이었던 한국 조선업을 잿더미로 만들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한평생을 바친 조선소 노동자들도 일터가 망가지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위기를 초래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한국 조선업을 세계 1등으로 밀어올린 장본인들이다. 영화 ‘곡성’에서 나오는 대사를 빌어 정부와 채권단에 묻고 싶다. “조선업이 위기라면 사회적 대화 말고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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