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태우 기자

“제발 일터로 돌아가게 해 주세요.”

14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태광산업 본사 앞에 선 권석천씨가 목청껏 외쳤다. '진짜사장이 책임져라'는 문구가 적힌 조끼를 입고 있는 그는 해고노동자다. 올해 2월1일 해고됐으니 이날로 165일째 실업 상태다. 사실 그는 티브로드 모회사인 태광산업도 아니고, 티브로드도 아닌 티브로드 협력업체에서 일하다 말 그대로 잘렸다. 권씨의 '갑'인 협력업체는 티브로드에게는 '을'이었다. 권씨가 '진짜사장'을 찾은 이유다. 그는 희망연대노조 케이블방송비정규직티브로드지부(지부장 이영진) 한빛북부지회 부지회장이기도 하다.

티브로드 한빛북부센터와 전주기술센터에서 권씨처럼 해고된 조합원 51명(전주센터 23명·한빛센터 28명)과 이틀째 전면파업을 벌이고 있는 지부 조합원 120여명이 이날 본사 앞에 나왔다. 진짜사장 재벌책임 공동행동 등 노동·시민단체가 이날 오전 같은 자리에서 해고노동자들을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해고자들의 진짜 사장인 티브로드가 나서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혼 네 달 만에 해고돼 아이 아빠된 노동자

해고 기간이 길어지면서 안타까운 사연은 늘어 간다. 티브로드 설치·수리기사 박두진씨는 지난달 21일 아빠가 됐다. 그는 지난해 11월 결혼해 한창 신혼 재미에 빠져 있던 올해 3월1일 일자리를 잃었다. 티브로드 전주기술센터와 신규계약을 맺은 협력업체가 고용승계를 거부하면서다. 신혼의 기쁨은 정말 잠시였다. 대부분 시간을 '복직투쟁'에 들이고 있다. 박씨는 “10년 넘게 설치수리 기사로 일하면서 해고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아내와 갓 태어난 아이 생각만 하면 마음이 무겁고 착잡하다”고 토로했다.

한빛북부센터에서 해고된 권 부지회장은 어머니와 동생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함께 사는 어머니께 큰돈은 아니지만 매달 생활비를 줬는데 해고되면서 그조차 못하고 있다. 그가 가진 돈은 실업급여 123만원이 전부다. 다음달부터는 실업급여도 끊긴다.

권 부지회장은 “돈을 최대한 아껴 쓰고 있지만 마흔 넘어 부모님께 용돈도 못드리는 불효자가 된 것 같다”며 “노조활동은 헌법이 보장한 권리인데 노조 했다는 이유만으로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냐”고 울분을 토했다.

“장기해고 사태 티브로드 나서야 해결”

지부와 노동·시민단체는 티브로드와 태광산업이 나서 장기화하는 해고사태를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지부는 51명의 해고자 복직과 협력업체 교체시 고용승계 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하며 협력업체들과 교섭을 벌였다. 경기남부지역 기남기술센터를 교섭대표로 티브로드 20여개 센터가 교섭에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수개월이 넘도록 교섭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이영진 지부장은 “임금인상도 교섭 과제지만 당장 고용안정 방안도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이라며 “협력업체 변경시 고용승계 방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51명뿐만 아니라 더 많은 해고사태는 언제든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문제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윤진영 노조 공동운영위원장은 “165일이 넘는 장기해고 사태는 티브로드가 나서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고 원청인 티브로드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며 “협력업체와 티브로드가 책임을 미루는 사이 해고자들은 생활고를 겪고 있다”고 강조했다. 윤 공동위원장은 “티브로드가 해고사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티브로드와 태광그룹의 비리를 파헤쳐 공개하고 가입자들을 대상으로 불매운동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한편 공동행동과 지부는 해고자 복직을 논의하기 위해 최근 태광산업 대표이사에게 면담을 요청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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