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샤프에비에이션케이의 지난해 4월 '시간외근무 수당 신청서'. 한 노동자는 그달 126.5시간 초과근로를 했고, 또 다른 노동자는 지금까지 사용하지 못하고 쌓아둔 연차휴가 개수가 102개나 된다. 공공운수노조

“직원들끼리 쓰는 말로 ‘긴 밤’‘짧은 밤’이라고 부르는데요. 긴 밤 근무조에 걸리면 저녁 6시에 출근해서 다음날 정오까지 18시간을 일해요. 짧은 밤 근무조 때는 원래 저녁 6시에 출근해 다음날 새벽 3시에 퇴근해야 하는데요. 정시에 퇴근한 적은 한 번도 없고요. 오전 8시나 10시까지 연장근로를 해요.”

복수노조 갈등과 노조탄압 논란이 제기된 ㈜샤프에비에이션케이 소속 노동자 김민석(가명)씨 얘기다.<본지 7월13일자 2면 ‘항공기 정비업체 샤프, 회사노조 설립 개입정황 드러나’ 기사 참조>

김씨는 자동차부품 생산업체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다가 샤프에비에이션케이 정규직으로 이직했다. 그는 “공장에 다닐 때 매일 2시간씩 연장근로를 했는데, 근무시간이 고정적이고 초과근로수당이 제대로 지급돼 큰 불만이 없었다”며 “그런데 이 회사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노동시간이 길고, 수당은 주먹구구 식으로 지급된다”고 말했다.

◇하루 평균 16~18시간 근무=13일 공공운수노조 샤프항공지부(지부장 김진영)에 따르면 샤프에비에이션케이 노동자들은 비행기 운항 스케줄에 따라 업무를 수행한다. 노조가 만들어진 여파로 이달부터 근무스케줄이 다소 조정된 상태인데, 지난달까지 이 회사 노동자들은 소정근로 외에 월평균 100시간에 달하는 초과근로를 수행했다. 심한 경우 한 달에 140시간 초과근로를 수행한 노동자도 있다. 말 할 필요도 없이 명백한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현행 근기법은 주 40시간, 노사 합의가 있는 경우 주 52시간까지 근무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밤 시간대 근무가 잦고, 비행기 운행 상황에 따라 근무시간이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업무 특성 때문에 노동자들은 퇴근을 포기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하루 16~18시간을 ‘1박2일’에 걸쳐 일하고, 또다시 정시에 출근하려면 집에 다녀올 여유가 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출퇴근 시간이 보장되지 않는 시스템이다.

이 때문에 한 번 출근하면 이틀을 회사에서 자고 사흘째 되는 날 퇴근하는 기형적인 업무 패턴이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고 직원 휴게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좁고 불결한 컨테이너 휴게실에서 쪽잠을 자고 일어나 다시 업무에 투입된다. 김민석씨는 “휴게실이 좁아 수면을 취하지 못하는 직원은 휴게실 밖에 놓인 간이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거나 스마트폰을 보며 시간을 때운다”고 설명했다.

◇연차휴가가 적금인가?=2014년 기준 한국 노동자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천124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두 번째로 길다. 그런데 샤프에비에이션케이 노동자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무려 3천600시간에 달한다. ‘역대급’, ‘세계 최고’ 등 어떤 수식어를 갖다 붙여도 모자랄 수준이다.

초장시간 노동에 투입되는 이 회사 노동자들에게 연차휴가는 사치에 가깝다. 더구나 이 회사는 황당한 방식으로 연차휴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미사용 연차를 차곡차곡 쌓아 뒀다가 퇴직할 때 일시불로 수당을 지급하는 시스템이다. 1년 단위로 미사용 휴가 수당을 정산하는 일반 기업들의 관행과 거리가 멀다. 유성규 공인노무사는 "명백한 근기법 위반"이라며 "고용노동부에 진정하면 바로 시정지시가 내려올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시스템으로 인해 이 회사 노동자들은 근속연수에 따라 수십 개의 미사용 휴가를 쌓아 놓고 있다.<사진 참조>

김진영 지부장은 “공항 활주로에서 주로 육체노동을 수행하는 샤프에비에이션케이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의 악순환으로 고통받아 왔고, 이 때문에 노조를 설립했다”며 “회사는 어용노조 뒤에 숨지 말고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회사측 관계자는 “직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회사도 잘 알고 있다”며 “인력확충 등 개선책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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