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동희 공인노무사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상판결 : 서울고등법원 2016누36309 요양불승인처분취소

1. 문제의 소재


과로로 인한 신체의 면역력 저하로 특수한 상병이 발병하면 산재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인가. 당해 사건은 장시간 노동과 스트레스로 인해 IT노동자에게 발병한 ‘폐렴·결핵성 폐농양’을 업무상질병으로 본 판결이다. 두 가지 상병은 결핵균에 의해 발병된 것으로서, 이 사건은 결핵균에 의한 폐렴과 결핵성 폐농양을 업무상질병으로 볼 수 있을 것인지 여부, 그리고 원고에게 과로와 스트레스가 있는지가 쟁점이다.

2. 법원 판시의 요지

서울행정법원(1심 2016.1.20 선고 2013구단53700 판결, 항소심 서울고등법원 2016.6.2 선고 2016누36309 판결)은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결핵균이 폐렴을 유발하고 폐렴의 합병증으로 폐농양이 발생한 것으로 결핵균을 포함한 비말핵을 흡입한 사람들의 30% 정도가 결핵균에 감염되고 그들 중 10% 정도만 결핵이 발병하는 점에서 면역기능저하가 발병에 있어 주요한 원인으로 보이는데, 원고는 소외 회사에서 일하는 2년4개월 동안 늦게까지 야근하는 일이 잦았고 프로젝트 막바지 무렵에는 휴일에도 늦게까지 근무했으며 특히 2008년 7월께부터 원고가 이상증세를 느끼기 직전인 2008년 8월까지 평일에는 매일 오전 8시부터 자정까지 근무하는 등 과도한 시간외근무로 인해 극도의 과로에 시달리고 상사의 질책 등으로 상당한 스트레스도 겪은 것으로 보이는바, 위와 같은 과로와 스트레스가 원고의 면역기능을 저하시키는 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이고, 달리 원고에게 그 업무 외에 이 사건 상병을 유발할 만한 다른 요인은 미미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이상, 이 사건 상병은 원고가 업무로 인한 과로와 스트레스 등으로 면역기능이 저하된 상태에서 결핵균이 활성화돼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결했다.

3. 판례의 의의

가. 업무상 질병의 법률 기준에 대한 해석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업무상재해를 “업무상 사유에 따른 근로자의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을 말한다”며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없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고 규정하고 있다. 산재보험법 시행령 제34조1항은 ‘세 가지 인정 조건 모두에 해당하면 법 제37조1항 제2호가목에 따른 업무상질병으로 본다’고 규정한다. 그리고 산재보험법 시행령 제34조3항에 따라 “별표 3 업무상질병에 대한 구체적인 인정기준”이 12개로 구분, 명시돼 있다. 결국 산재보험법 해석기준은 시행령의 세 가지 요건과 별표상 명시된 규정에 해당할 경우 당연히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된다는 취지다. 그 외 상병 또는 그 기준에 미달하는 경우에는 각각의 구체적인 조건을 고찰해 법률상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다. 막연히 상병이 명시되지 않았다는 이유 또는 인정기준에 미달하는 경우 상당인과관계를 부정하라는 것이 아니다.

나. 공단이 실무적으로 면역성 질환을 산재에서 배제하는 것은 법령을 잘못 해석한 때문이다. 원고의 상병 원인인 결핵은 별표 3에 포함돼 있다. 즉 보건의료 및 집단수용시설 종사자에게 발병한 감염성 질병으로 규정돼 있다. 이 사건 원고 주장처럼 “면역성 질병”에 대한 정의는 없다. 결국 쟁점은 산재보험법의 해석기준, 즉 제한적 열거기준으로 볼 것인가(공단), 아니면 예시적 기준으로 볼 것인가(법원)에 대한 문제다.

공단은 원고에게 보낸 불승인통지서에서 “시행령 제34조3항 세균·바이러스 등의 병원체로 인한 질병”을 적용해서 “업무환경이나 업무내용상 세균감염에 노출될 개연성이 없으므로 전염성 감염병인 결핵은 업무와 무관한 것으로 보이고, 과로가 면역력을 저하시켜 감염가능성을 증가시켰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충분한 업무관련성을 인정하기 어려워 불인정한다”고 했다. 즉 감염성 질병을 염두에 두고 판단한 것이지, 면역성 질병으로 판단한 것은 아니다. 이는 공단이 산재보험법령의 기준을 기본적으로 “제한적 열거주의” 규정으로 해석한 데서 발생한다.

대법원은 업무상질병 사건에 있어 산재보험법령 기준은 예시적 기준임을 명백히 한 바 있다(대법원 2014.6.12 선고 2012두24214 판결 참조). 결국 공단은 면역성 질병의 경우에도 과로 스트레스가 있는지 여부, 개인에 따라 당해 상병이 발병 또는 악화될 수 있는지 여부를 심리해 판단해야 한다.

다. 업무상질병 사안 중 결핵성 질병에 대한 선례가 되는 판결이다. 당해 사건은 결핵균으로 인한 '폐렴·결핵성 폐농양'의 업무상질병 여부를 따지는 사건이다. 결국 공단이 정한 기준 때문에 면역성 질병이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되기가 극히 어렵다.

피고는 이 사건 상병이 업무상질병이 될 수 없다는 논리의 근거로 대법원 판례, 즉 “막연히 과로나 스트레스가 일반적으로 질병의 발생·악화에 한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해서 현대의학상 그 발병 및 악화의 원인 등이 반드시 업무에 관련된 것뿐 아니라 사적인 생활에 속하는 요인이 관여하고 있어 그 업무에 내재하는 위험이 현실화된 것으로 볼 수 없는 경우까지 곧바로 그 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하기는 어렵다(대법원 2002.2.5 선고 2001두7725 판결 참조)”는 것을 반복해서 제시했다.

그러나 대표적 면역성 질병인 ‘헤르페스 바이러스 뇌염’은 이미 수차례 법원에서 인정된 바 있다(대법원 2007.4.12 선고 2006두4912 판결, 대법원 2006.3.19 선고 2005두13831 판결 참조). 이 사건 상병이 결핵이라는 특수한 세균성 매체를 통해 감염되기는 했으나 개인의 면역력 저하에 따라 악화 발현될 수 있는 가능성까지 부정될 수는 없다. 당해 사건은 의학적 감정 회신을 근거로 이를 분명히 인정했다.

라. 과로·스트레스 인정 기준에 있어 적극적인 해석과 판단을 했다. 원고는 2년4개월간 8천669시간의 근로를 제공했으며, 이러한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이 사건 상병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2011년 9월28일 최초 요양 신청시 피고 공단은 원고의 과로 여부에 대해 실질적인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회사는 월간근무기록표상 일 12시간 이내로 제한된 근로시간만을 주장했다. 그리고 소송과정에서도 IT회사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출입기록 데이터와 로그온·오프 기록이 없다고 주장했다. 공단은 철저히 회사가 주장하는 근로시간 내역을 수용한 것이다.

법원은 공단과 달리 원고가 주장했던 실질적 근로시간을 거의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는 원고가 작성한 교통카드 등을 근거로 작성한 근로시간 내역 이외 증인신문조서·녹취록·이의제기서 등 각 증거를 통해 구체적으로 심리 판단했다. 근로시간에 있어 회사가 작성한 것을 위주로 판단하는 공단의 오류를 바로잡은 것이다.

마. 과로 여부는 근로자별로 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 고시 및 공단의 판정지침은 “과로 기준”을 ‘발병 전 12주 이내 주 60시간(4주 64시간) 이상’으로 정하고 있다. 고시 및 판정지침은 일종의 예시적 기준일 뿐이지만, 공단은 기계적으로 이를 적용해서 기준 이하의 시간인 경우 만성과로가 아니라고 판단한다. 최근 법원에서는 수차례 당해 기준이 예시규정에 불과해 이 기준에 충족하지 못해도 업무상재해 인정을 배제하는 취지로 볼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서울고등법원 2015.7.10 선고 2014누64454 판결, 대법원 2015.11.12 선고 2015두49269 판결).

공단은 고시 및 지침에 미달하는 경우라도 이를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건강한 노동자와 주 60시간이라는 기준을 넘지 못하는’ 과로는 일률적으로 배제되기 때문이다. 당해 사건에 있어 법원은 원고의 만성 과로 조건 및 시간을 구체적으로 살펴 판단했고, 발병 1개월 전 극도의 과로 상황을 구체적으로 인정했다. 노동부가 고시한 기준은 하나의 예시적 기준이다. 당해 노동자의 구체적인 조건과 상황에 맞게 과로 여부를 판단해야지, 지금처럼 일률적으로 판단하는 문제는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

바. 소결

원고가 임금진정, 고소, 임금소송에 이어 산재 소송까지 하게 된 계기는 간명하다. 자신이 근무했던 것을 회사가 사실로 인정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돌아온 말은 ‘거짓말쟁이’라는 말이었다. 이번 사건은 연간 3천시간 이상 일하는 IT노동자와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다. 폐 한쪽을 잘라내면서까지 평범했던 IT노동자가 8년의 법정투쟁을 한 이유는 진실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이 노동자는 “결핵성 질환의 산재 인정”과 더불어 IT노동자의 열악한 장시간 노동 문제를 세상에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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