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자은 기자
 

외환위기 직후 도입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이 18년째 시행되고 있다. 한·일 양국 노동법학자들이 파견노동포럼을 열어 파견노동을 원칙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간접고용 확산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된 파견법은 폐지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부가 '노동개혁'이라는 미명 하에 파견법을 개정하려는 가운데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와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 민변 노동위원회·민주노총 법률원 등 9개 노동·인권·법률단체가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 한국불교역사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파견법 폐기·간접고용 철폐 2016 파견노동포럼’을 개최했다.

“파견노동 합법화로 불법·편법고용 확산”

한국에서는 지난 98년 파견법이 제정됐다. 근로자파견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기업이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고 타인(법인)에게 고용된 노동자를 빌려 쓰는 것을 의미한다. 파견노동자를 사용한 기업은 노동관계법과 사회보장법상 사용자로서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다. 근로자파견은 파견노동 사용사업주에게 면죄부를 준 셈이다. 물론 법이 제정될 당시 파견법은 허용업무·허용기간 등 파견범위를 일부 제한했다. 불법파견이 적발된 기업의 경우 파견노동자를 직접 고용해야 하는 조항도 파견법에 명시됐다. 하지만 불법파견 시비는 끊이지 않았고, 되레 노동시장의 혼란을 불러일으켰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조경배 순천향대 교수(법학과)는 “파견노동 합법화는 불법·편법고용을 확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을 뿐만 아니라 직접고용 원칙을 바탕으로 한 전통적인 노동법체계의 근간을 흔들어 놨다”고 주장했다.

파견법은 제정된 이후로 허용업종이 26개에서 32개 업종으로 확대됐다. 2007년에는 파견법 개정을 통해 2년 초과 사용의 불법파견의 경우 사용사업주가 파견노동자를 고용한 것으로 본다는 기존 ‘고용의제조항’이 ‘고용의무조항’으로 변경됐다. 과거에는 노동자 지위확인 소송을 통해 사용사업주가 고용한 것으로 간주된 파견노동자는 사용사업주에게 임금 소급지급을 청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개정된 파견법에서는 파견노동자가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사용사업주에게 과태료만 부과됐다. 때문에 사용사업주가 사법상 어떤 의무를 지는가에 대해서는 불분명하게 됐다. 조 교수는 현행 파견법의 문제점으로 △직접고용 원칙, 사용사유 제한 결여 △직접고용 할 의무 모호 △장기화·상용화 방지 결여 △차별시정제도의 한계 등을 꼽았다.

또 조 교수는 "파견과 도급의 구별기준의 타당성 여부는 파견노동의 무분별한 확산을 막는 데 중요한 잣대”라며 “최근 파견과 도급 구별에서 대법원 판례가 퇴보했다”고 말했다.

그는 파견·도급 구별기준의 대법원 판례 변화와 관련해 2010년 현대자동차와 2013년 평화산업, 2015년 KTX 사례를 들었다.<표 참조>

대법원은 파견과 도급의 구별에 관한 일반론을 처음으로 제시한 평화산업 판결에서 ‘사업경영상의 독립성’을 평가기준으로 삼았다. 하지만 대법은 KTX 판결에서 해당 평가기준을 삭제했다. 그간 사업경영상 독립성을 갖추지 않은 도급의 경우 위장도급 또는 불법파견으로 규정했으나 대법이 이를 뒤집은 셈이다.

조 교수는 “사내하청의 사업주로서의 실체성 유무의 판단과 직접 연결될 수 있는 사업경영상의 독립성 요소의 삭제는 재벌 대기업에 만연한 위장도급을 합법화해주기 위한 교묘한 기획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최근 정부와 새누리당이 추진하는 파견법 개정안에 대해 조 교수는 “파견과 도급의 판단기준을 축소해 불법적인 사내하청을 합법화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제도 개선과 정책적 대안에 대해 △직접고용 원칙 정립 △공공직업소개 활성화와 민간 고용질서 문란행위 단속 △근로기준법에 직접고용 원칙 법률 명기 △직접 근로관계를 파견 또는 도급으로 위장할 경우 사용사업주 형사처벌 조항 신설 △파견과 도급 구별기준에 관한 지침 개선 등을 제시했다.

“파견법 제정 이후 30년간 일본 노동권 후퇴”

일본은 지난해 9월, 5개 업종을 제외한 모든 업무에서 파견 제한을 없앤 개정 근로자파견법을 시행했다. 와키다 시게루 류코쿠대 교수(법학부)는 ‘일본 파견법 30년의 폐해와 노동권 파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와키다 교수는 “일본에선 정규고용이 원칙이고 노동자파견은 예외였지만 개정 파견법에 의해 사실상 파견노동이 지배적 고용형태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우려했다.

1947년 일본에서 제정된 직업안정법은 ‘노동자 공급사업을 행하거나 공급된 노동자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두고 노동자파견을 엄격하게 금지했다. 그러나 70년대 후반 저상장이 지속되면서 업무도급이 확대됐다. 이들 중 대다수는 직업안정법 위반 혐의가 강한 간접고용이었다. 하지만 일본 후생노동성은 적극적인 단속을 하지 않고 위법한 상태를 방치했다. 일본 정부는 일정 요건을 두고 파견노동을 합법화하는 편이 노동자보호에 적당하다는 이유를 들어 1985년 노동자파견법 제정을 추진했다. 반대여론을 감안해 파견노동을 특정업무에 한정하기로 하고 대상업무를 선별하는 포지티브 방식을 채택했다. 근로자파견법이 제정된 1986년 이후 지난 30년간 파견업무는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규제는 완화됐다. 도입당시 13개였던 허용업종은 96년 26개 업종으로 확대됐다. 99년 일부 업무를 제외하고 파견 금지가 해제됐다. 기존 포지티브 방식에서 네거티브 방식으로 변경된 것이다. 동시에 파견기간을 1년으로 제한하는 제도도 도입됐다. 그러나 일본은 2003년 파견기간 1년 제한을 3년으로 연장했다. 지난해 파견법이 개정돼 기간제한마저 사라져 사용사업주는 기간과 사유 제한없이 파견노동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와키다 교수는 “노동자파견법은 실체가 없는 파견사업주에 맞춰 노동기준법 규정을 무력화하고 노동자가 보호받을 권리를 빼앗았다”며 “파견법 도입 이후 30년간 일본의 노동권은 크게 후퇴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간접고용은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임시적·단기간 한정 이용의 조건을 충족하지 않을시 사용업체의 직접고용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면서 "이 요건을 충족할 수 없다면 특별법을 제정해서라도 1985년 이전으로 돌아가 파견노동 자체를 불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간접고용 확산 주범 ‘파견법’ 폐기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은 "노동계가 그간 파견법을 근거로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투쟁을 하다 보니 파견법 자체에 대해서는 문제제기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집행위원은 “명분이 무엇이든 파견은 중간착취 제도이자 노동자의 안정성을 파괴하는 제도”라며 “파견법 자체를 없앰으로써 간접고용 확산의 근거를 없애고 파견과 도급 구분기준을 분명하게 해 사내하청을 없애는 투쟁으로 나아가야 현실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다.

파견법 폐기의 운동방향으로 △원청사용자 책임 인정 제도적 요구 △노조가 없는 파견노동자 조직 △파견법 폐기 투쟁을 사회적 투쟁으로 확대 등을 제시했다.

박희은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전략사업 국장은 “파견 확대가 나쁜 일자리를 양산한다고 선전해 왔지만 파견법 폐지를 쟁점화 하지는 못했다”며 “파견노동과 파견업체에 대한 실태조사를 통해 현실을 드러내고 파견법 폐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모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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