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성덕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대상판결 : 서울행정법원 2016.6.2 선고 2015구합70874 판결

Ⅰ. 사실관계


일진전기(원고)는 2008년 7월1일 설립, 상시근로자 약 945명을 고용해 전기기기 및 부품, 변압기, 케이블 및 케이블 접속재를 제조하는 회사로 안산(반월)·수원·홍성에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6명의 참가인들은 안산(반월)공장 통신사업부에서 근무하던 직원들이다. 2000년 이후 국내 유선통신망 기반 구축이 완료되고, 무선통신기술이 발전하면서 유선케이블 산업이 침체됐다. 일진전기는 2014년 10월7일부터 10월16일까지 네 차례에 걸쳐 노사협의회 개최하고 일진전기 반월공장노동조합에 비상경영안 수용을 제안했다. 노조는 같은해 10월20일 사측의 비상경영안 수용을 거부했다. 이에 일진전기는 노조가 거부한 날 희망퇴직 신청을 접수하기 시작했다. 같은달 31일까지 신청을 받았다. 11월에는 희망퇴직 신청을 하지 않은 인원 중 참가인들을 제외한 7명 전환배치하고, 12월29일 사업부 폐지에 따른 경영상 해고를 단행했다. 경기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각각 지난해 3월과 6월 부당해고라고 판정했다. 일진전기는 그해 8월 중앙노동위 재심판정을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냈고, 올해 6월 서울행정법원이 원고패소 판결했다. 일진전기는 지난달 22일 항소했다.

Ⅱ. 쟁점과 대상 판결 요지

1. 이 사건 해고가 통상해고임을 주장할 수 있는지 여부(쟁점 1)

원고는 경기지노위 초심, 중앙노동위 재심을 거치면서 줄곧 이 사건 해고가 근로기준법 제24조의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로서 정당하다고 주장했을 뿐, 단 한 차례도 이 사건 해고가 통상해고라는 주장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원고는 서울행정법원에 소를 제기하면서 이 사건 해고가 ‘독자적 사업부문의 완전한 폐지에 따른 통상해고’라는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중앙노동위에서 판단대상이 된 바 없는 통상해고로서 적법한지 여부가 행정법원 심판대상이 될 수 있는지부터 문제가 됐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부당해고 또는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재심판정 취소소송의 소송물은 재심판정 자체의 위법성 일반이고, 재심판정의 적부는 그것이 이뤄진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지만, 법원은 당해 사건에 대한 노동위 심사와 무관하게 사실관계를 전면적으로 새로이 심리할 수 있으므로 당사자는 재심판정 후에 생긴 사유가 아닌 이상 노동위에서 주장하지 않은 사유도 행정소송에서 주장할 수 있다(대법원 1990.8.10 선고 89누8217 판결 참조). 이 사건의 경우에도 설령 원고가 재심판정 절차에서 통상해고라는 주장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 사건 해고가 통상해고로서 적법한 요건을 갖췄는지 여부는 해고라는 사실관계에 대한 규범적 판단에 해당할 뿐 재심판정 후에 발생한 새로운 사유라고는 볼 수 없으므로, 원고로서는 이 소송에서 이 사건 해고가 통상해고에 해당한다는 주장을 할 수 있고, 법원으로서도 이 사건 해고가 통상해고로서의 요건을 갖추고 있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판시해 이 사건 해고가 통상해고로서 적법한지 여부는 이 사건 소송의 소송물이 될 수 없다는 참가인들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2. 이 사건 해고가 통상해고로서 요건을 갖추고 있는지 여부(쟁점 2)

“원고 산하 각 사업부는 독립돼 있고, 원고는 독자적 사업부문인 통신사업부의 사업을 폐지하면서 참가인들을 해고한 것이므로 이 사건 해고는 통상해고로서 유효하다”는 것이 원고의 주위적 주장이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원고의 통신사업부가 존속하는 다른 사업부와 독립한 별개 사업체로 보기 어려워 원고가 통신사업부를 폐지한 것은 사업축소에 해당할 뿐 사업체 전부를 폐업한 것과 같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원고의 주장을 배척하면서 참가인들이 주장한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그 근거로 삼았다. 먼저 원고 각 사업부는 본사가 경영을 총괄해 경영주체가 동일하고, 그중 전선사업부와 재료사업부·통신사업부는 모두 원고 산하 전선사업본부 산하에 편제돼 있다. 특히 통신사업부와 재료사업부는 동일한 공장 내에 소재해 인적·물적 설비가 독립돼 있다고 보기 어렵다. 둘째 원고 각 사업부는 재무·회계가 분리돼 있지 않으며, 각 사업부 근로계약서에는 모두 원고의 대표이사가 사용자로 기재돼 있고, 통신사업부를 폐지하는 과정에서 노사협의회나 이 사건 해고 통고도 통신사업부 차원이 아닌 전선사업본부장 명의로 이뤄졌다. 셋째 참가인 중 일부가 2013년 전선사업부에서 지원업무를 수행했으며, 이 사건 해고에 앞서 전환배치된 김○○는 특별한 교육훈련 없이 전선사업부로 전환배치돼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즉 원고 주장과 달리 각 사업부 간 인적교류는 수시로 있었다. 넷째 원고 각 사업부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모두 전기 관련 제품으로 그 생산업무 사이에 호환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고, 특히 전선사업부에서 생산하는 전력선과 통신사업부에서 생산하는 통신케이블은 제조공정도 유사해 업무종사의 호환성이 상당히 높다.

3. 이 사건 해고가 유효한 정리해고인지 여부(쟁점 3)

원고는 “이 사건 해고 당시 통신사업은 시장 규모가 급감하는 등 구조적 위기에 봉착해 있었고, 특히 통신사업부는 최근 4년간 104억원 이상의 누적적자를 기록하는 등 정리해고를 할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있었으며, 원고는 해고를 회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했고,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정리해고 대상자를 선정했으며, 근로자 대표와 성실히 협의했다’는 이유로 이 사건 해고는 정리해고로서도 유효하다고 주장했다(원고의 예비적 주장).

이에 대해 재판부는 통신사업부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 원고 회사 전체의 경영상황까지 악화될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고 보아, 원고에게 통신사업부를 축소 내지 폐지할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있었음은 인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다음과 같이 정리해고의 나머지 요건은 모두 충족하지 않는 것으로 봤다.

첫 번째 직원들의 기본급을 꾸준히 인상했으며, 정리해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직원채용 공고를 했고, 노동조합이 교대제 변경이나 임금 자진반납 방안을 제시했음에도 자신들이 마련한 비상경영안 관철만을 고집하는 등 해고회피 노력을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 두 번째 원고의 전환배치자 선정기준에는 근로자 개인의 주관적 사정이 전혀 반영돼 있지 않으며, 평가항목 간 반영비율도 자의적이다.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정리해고 대상자를 선정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세 번째 원고는 노동조합이 비상경영안 수용을 거절하자 곧바로 정리해고를 결정하는 등 노동조합과 성실히 협의했다고 보기 어렵다.

Ⅲ. 평석

근기법 제23조 징계해고와 제24조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는 그 개념과 요건이 명확하다. 징계해고는 징계사유·징계절차와 징계양정이 모두 정당해야 하고,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는 근기법 제24조에서 정한 4가지 요건, 즉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해고회피 노력, 합리적이고 공정한 해고 기준과 대상자 선정, 과반수노동조합이나 근로자 과반수를 대표하는 자와의 성실한 협의를 모두 거쳐야 그 정당성이 인정된다.

반면 원고가 주위적으로 주장한 통상해고에 대해서는 법률은 물론 판례·학설에 의해서도 그 개념·유형·요건이 명확히 정리돼 있지 않다. 그러나 전체 사업의 폐지가 아닌 사업 일부의 폐지라 하더라도 독자적 사업부문의 폐지에 해당한다면, 해당 사업장의 잔존 인력을 해고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본 하급심 판례가 나오면서(대표적으로 서울행정법원 2014.6.19 선고 2013구합9816 판결, 인천지방법원 2014.7.25 선고 2013가합33825 판결), 사업상 사유로 인한 통상해고와 (기존)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의 구별 및 정당한 이유 판단이 문제됐다.

원고는 폐지된 통신사업부가 독자적 사업부문이며, 그 폐지로 인해 잔존인력을 해고하는 것은 사업상 사유로 인한 통상해고로서 정당하다는 주장을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통신사업부를 존속하는 다른 사업부와 독립한 별개의 사업체로 보지 않았으며, 따라서 통신사업부 폐지는 사업축소에 해당할 뿐 사업체 전부를 폐업한 것과 같지 않다고 보고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사업체 전부의 폐업과 사업축소를 달리 보면서 그 기준으로 △폐지된 사업부와 다른 사업부의 인적 물적 독립성 여부 △각 사업부의 재무·회계 분리 여부 △근로자 채용에 있어서 독자성 여부 △각 사업부 간 인력의 호환이 이뤄지는지 여부를 제시했다.

원고가 노동위 심판 과정 내내 전혀 주장하지 않았던 통상해고 주장을 행정소송 시작과 함께 들고나온 이유는 명확하다.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의 경우 근로기준법 제24조에서 정한 엄격한 요건과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사업상 사유로 인한 통상해고의 경우에는 정리해고에 요구되는 요건과 절차규정을 지키지 않는다 해도 부당한 해고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해고 제한규정이 실질적으로 완화되는 것이다.

원고는 매출액이 1조원에 달하고, 국내 전선시장에서 3위권을 지키고 있는 굴지의 중견기업답지 않게 이 사건 정리해고를 하는 데 있어 묵과하기 힘든 실수를 많이 저질렀다. 게다가 노동자들은 연대정신을 발휘해 무려 30%에 달하는 임금삭감을 먼저 제안하거나, 통신사업부뿐만 아니라 타 부서의 노동자들까지 교대제 변경에 찬성하는 등 상생할 수 있는 방안들을 능동적으로 제시했음에도 사측은 처음 내세운 비상경영안만 끝까지 고집했다. 요컨대 이 사건 해고가 정리해고로 그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사실은 원고 스스로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원고는 이 사건 해고를 상대적으로 요건이 엄격하지 않은 통상해고로 둔갑시키려는 시도를 했다.

중앙노동위 재심판정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의 소송물은 재심판정의 적법 여부이며, 중앙노동위가 판단 대상으로 삼지 않은 부분은 재심판정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에서도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당사자가 전혀 주장하지 않은 통상해고로서 정당한지 여부를 판단하지 않았다고 해서 중앙노동위 재심판정이 위법하다고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사건 해고는 해고를 한 원고, 해고를 당한 참가인들, 초심지노위와 중앙노동위 모두 정리해고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객관적인 성질을 보더라도 사업 전체 폐지가 아닌 사업 일부의 축소에 따른 해고로서 정리해고에 해당한다. 대상판결이 원고가 중앙노동위에서 통상해고를 주장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법원은 통상해고로서 요건을 갖추고 있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본 점은 그래서 아쉽다. 뚜렷한 선례가 없는 상황에서, 법원의 판단대상 및 심리범위를 축소하는 결정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상 판결은 이 사건 해고를 통상해고로 보더라도 정당하지 않다고 판단하면서 사업상 사유에 의한 통상해고와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 기준을 분명히 제시했다. 그 결과 사용자들의 무분별한 통상해고 주장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대상 판결은 그 의의가 적다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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