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영 인더스트리올 아태지역 전력네트워크 의장

정부가 기능조정을 빌미로 에너지 공기업을 민영화(사유화·사영화)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었다. 한전의 전력판매(전기공급)와 화력발전 정비 분야, 가스공사의 가스도입과 도매 분야를 민간에 개방하고, 발전 공기업 등 8개 에너지 공기업을 상장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민간개방과 주식 상장 등 얼핏 민영화와 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공기업에 의해 수행되던 공공서비스를 대기업과 재벌 중심 사적자본에 넘기겠다는 것을 보면 소유 여부와 상관없이 민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한전의 판매부문 분할 및 경쟁은 이미 2004년 노사정위원회 공동연구단에 의해 요금인상과 공급불안의 요인이 크다는 결론에 따라 당시 사회적 합의로 중단했던 정책이다. 이름만 판매개방으로 바꿔 다시 추진하겠다는 것은 사회적 합의 위반이다. 동시에 전기요금 인상으로 인한 국민 부담을 가중시키고 전력공급 안정성을 저해하는 심각한 사안이다. 더군다나 2008년 MB정권 당시에도 촛불사태로 불거진 소위 ‘민영화 괴담’을 거론하며 전기·가스·수도·의료 등 필수 공공서비스 민영화를 정부 스스로 강하게 부인해 왔지 않은가.

정부는 한전의 독점으로 경쟁체제 부재 및 전기 판매와 결합한 다양한 서비스 창출이 제한되고 있다는 점을 민영화 이유로 들고 있다. 공기업인 한전의 독점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어떠한 폐해가 발생하고 그로 인해 국민이 누려야 할 공공서비스 혜택이 어떻게 제한되고 있는지, 예컨대 전기요금이 매우 비싸다거나 정전이 잦고 국민 불편을 초래한다던가 하는 구체적인 사례를 적시하지도 않고 ‘경쟁체제 부재’와 ‘다양한 서비스 창출 제한’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들며 민영화가 추진돼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공공서비스 제공은 국민의 보편적 삶을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책무이기 때문에 이를 자본에 의한 돈벌이의 대상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한전의 독점이 오히려 전기요금 안정과 국가경제 발전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정부의 민영화 이유는 오히려 궁색해 보이기조차 한다.

특히 다양한 서비스의 예시로 일본의 판매개방 이후 통신상품이나 케이블방송과 결합한 전기상품이 제공되는 사례를 들고 있는데, 일본의 높은 전기요금 수준이나 민간독점의 부도덕성, 후쿠시마 사태 이후 급등한 전기요금으로 인한 시민 불만 같은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면만을 보고 호도하는 측면이 강하다. 게다가 공공서비스와 사용재의 결합은 서비스와 재화의 교차보조를 유발시키는 한편 필요하지도 않은 재화와 상품의 과소비 현상을 초래해 사회 전체적으로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심지어 공공서비스의 보편적 서비스 기능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동해 결과적으로 공공성을 약화시키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한다.

정부가 ‘다양한 신규서비스 창출’ 사례로 들고 있는 일본만 해도 그렇다. 올해 4월1일부로 전면개방을 해서 2개월여를 넘긴 현시점에서 보면 기존 9개 지역독점 메이저 사업자 외에 판매(소매) 사업자로 315개가 경제산업성에 등록돼 있고, 송배전 사업자 또한 16개 사업자가 등록돼 전기판매 및 송배전 경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소비자의 사업자 변경은 대도시 지역인 관동(도쿄)과 관서(오사카) 지역에서 1.5%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된다. 높은 전기요금 수준과 그동안 독점 사기업에 의한 전력공급체제에 불만이 많았다는 일본 정부의 정책추진 이유가 무색해진다. 현실적으로 NTT도코모와 소프트뱅크 등 통신회사를 비롯해 마루베니·도요타 등 대기업의 진출이 활발해지고 있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기존 전력회사를 바꿀 만한 매력적인 신규 서비스가 현재로서는 창출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 또한 발전분할 이후 민간발전사가 폭리를 취하면서 막대한 국민적 부담을 안겨 줬다. 경쟁의 효율은 말뿐이고 오히려 폭리를 보장해 주는 것이 민영화의 본질이다. 혼합소유제 같은 괴변으로 국민을 현혹해 민영화 정당성을 호도해서는 더더구나 안 될 일이다.

거듭 밝히지만 전기는 모든 국민이 국가로부터 차별 없이 제공받아야 하는 기본서비스다.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존엄과 행복추구라는 전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실현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중단돼서는 안 되며, 여하한 이유로도 사적자본의 이윤 대상이 돼서도 안 된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민영화가 아니라 분할된 발전공기업을 하나로 묶고, 전력·가스·석유 등 에너지 자원의 공공적 소유와 통합적 관리를 통해 모든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 기능조정의 핵심이 돼야 한다.

인더스트리올 아태지역 전력네트워크 의장 (peoplewin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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