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야근에 따른 면역력 저하로 폐렴과 결핵에 걸려 폐 일부를 잘라 내는 수술을 받은 소프트웨어 개발 노동자가 업무상질병을 인정받았다. 1심과 2심 재판부 모두 해당 노동자의 산재를 인정했다.

3일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에 따르면 최근 서울고등법원 제7행정부(재판장 윤성원)는 농협정보시스템에서 프로그램 개발과 유지·보수 업무를 하다 폐렴과 결핵성 폐농양 진단을 받은 양도수(41)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원심 판결을 그대로 인용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상고를 포기했다.

◇후진적 야근문화가 부른 병=양씨는 2006년 7월 농협정보시스템에 입사한 뒤 농협중앙회 NH쇼핑몰 개발 프로젝트와 농협목우촌 종합정보시스템 개발 프로젝트에 잇따라 투입됐다. 두 프로젝트가 마무리된 뒤에는 NH쇼핑몰 운영업무와 개발업무를 동시에 맡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양씨는 농협정보시스템에 근무하는 동안 평일에는 밤 11시에서 12시까지, 토요일에는 저녁 6시에서 밤 10시까지 일했다. 기한 내에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해 일요일에 출근하는 경우도 많았다. 상급자들은 밤 늦은 시간에 양씨에게 업무를 추가로 부여하거나 “프로젝트 진척이 왜 이렇게 느리냐” 혹은 “전날 지시한 사항을 아직도 끝내지 못했느냐”며 그를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벽까지 근무한 다음날에도 그는 오전 9시 정시출근을 해야 했다. 그렇게 2년4개월 동안 8천669시간을 일했다.

입사 2년여 만인 2008년 9월 양씨의 몸에 이상증세가 나타났다. 피로감과 함께 기침증상을 보였다. 감기려니 여기고 감기약을 복용했지만 증상이 낫지 않았다. 대학병원에서 혈액검사를 받은 결과 말기암 환자와 비슷한 상태라는 결과가 나왔다. 폐렴과 결핵성 폐농양 진단을 받았다. 폐렴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 항생제를 복용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는 결국 폐의 일부를 잘라 냈다.

◇과로가 전염병 악화시켰다면 산재=양씨가 산재를 인정받기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회사측은 “초과근로는 월 10시간으로 제한하는 것이 회사의 공식적인 정책”이라는 이유를 들어 양씨가 야근에 시달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초과근로시간을 월 10시간 정도만 입력하도록 설계된 사내 전산시스템 때문에 양씨는 자신이 살인적인 야근에 시달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어려웠다. 업무시간을 입증하는 데에만 수년이 걸렸다. 2012년이 돼서야 그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요양신청을 제기할 수 있었다.

공단은 그러나 “원고의 업무환경이나 업무내용상 세균감염에 노출될 개연성이 전혀 없고 같은 직종에서 근무하는 동료 근로자에게 이 사건 상병이 집단적으로 발병한 사실도 없다”며 “업무와 무관한 개인 사회생활 중 감염된 상병에 해당해 업무관련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감염병은 산재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양씨가 2013년 재차 산재를 신청했지만 공단은 같은 이유로 불승인 결정을 내렸다.

반면 법원 판단은 달랐다. 1·2심 재판부는 “원고는 회사에서 일하는 2년4개월 동안 늦게까지 야근하는 일이 잦았고, 프로젝트 막바지 무렵에는 휴일에도 늦게까지 근무했으며, 극심한 과로와 상사의 질책 등으로 상당한 스트레스를 겪은 것으로 보인다”며 “원고가 업무로 인한 과로와 스트레스 등으로 면역기능이 저하된 상태에서 결핵균이 활성화돼 상병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며 양씨의 손을 들어줬다. 만성적 과로에 시달리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에 대한 업무상질병을 인정한 보기 드문 판결이다.

양씨는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 결과 병이 생겼는데, 이 사실을 입증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나와 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으려면 장시간 노동 업종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관리·감독 강화와 함께 산재보상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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