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태우 기자

1일 오후 서울지하철 2호선 성수역 역무실 플랫폼 스크린도어(PSD) 경보제어 모니터에 빨간점이 깜빡거렸다. 지하철 플랫폼을 비추는 CCTV 모니터를 보니 10-1번 스크린도어가 열려 있다. 통상 스크린도어가 닫히면 모니터 하단은 초록색 점들로 가득찬다. 열려 있을 때는 빨간색, 닫혀 있을 때는 초록색으로 표시되는 방식이다. 초록색 점들 사이에 빨간색 점이 한두 개 깜빡거리는 것은 스크린도어에 장애가 발생했다는 의미다.

스크린도어 오작동이 발생하자 역무원들이 뛰어 내려갔다. 2명의 역무원이 스크린도어 앞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승객들을 통제했다. 안전띠를 착용한 유영상 서울메트로 차장은 열차가 진입하면 수동으로 스크린도어를 열어 승객들이 타고 내릴 수 있도록 지원했다. 뚝섬행 내선순환 열차가 빠른 속도로 성수역에 진입했고 “끼이이익” 마찰음을 내면서 정차했다. 10-1번 스크린도어를 제외하곤 모든 스크린도어가 정상적으로 개폐됐고 승객들은 무심히 열차에 탑승했다.

지하철 비정규직 사망재해 해결과 안전사회를 위한 시민대책위원회 진상조사단(단장 권영국)이 이날 현장조사를 위해 스크린도어 사망사고가 발생했던 성수역·구의역·강남역 사고현장을 차례로 방문했다. 진상조사 중에도 어김없이 스크린도어는 오작동했다.

조사위원들은 성수·구의·강남역을 둘러보며 서울메트로 관계자들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진상조사단은 지난 5월28일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 노동자 사망사고 뒤 구성됐다. 진상조사를 벌여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매일노동뉴스>가 이날 현장조사를 동행취재했다.

▲ 구태우 기자

김군은 왜 열차가 들어오는 것을 몰랐을까

이날 현장조사에서 나온 설명을 종합해 보면 하청업체 은성PSD 정비직원 김군은 사고당일 역무실을 방문해 PSD마스터키 보관함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동으로 개폐하는 열쇠를 받았다. 이날 오후 5시50분께 오작동 신고가 된 5-3번 승강장 스크린도어 정비를 마친 뒤 9-4번 스크린도어를 열고 정비를 시작했다. 7분 뒤 열차가 구의역으로 진입했고 김씨는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여 사고를 당했다.

김씨는 스크린도어 오작동을 바로잡기 위해 에어리어센서의 이물질을 닦는 작업을 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메트로에 따르면 스크린도어가 오작동하는 원인의 80~90% 이상은 에어리어센서에 붙은 이물질 때문이다. 막대처럼 생긴 센서바에 먼지가 붙으면 센서가 감지하지 못해 오작동하는 것이다. 때문에 센서 오작동은 이물질을 닦아 내면 대개 고칠 수 있다고 한다. 정비직원이 스크린도어 문을 열고 들어가 이물질을 닦아 내는 데 1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구의역에는 12개 에어리어센서가 있다. 서울시는 에어리어센서를 구의역 사고 원인 중 하나로 보고 295억원을 들여 레이저센서로 교체하기로 했다.

작업 과정은 주먹구구식이었다. 스크린도어가 오작동하면 역무원들은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승객을 통제한다. 정비직원이 도착하면 역무원들은 다른 업무를 본다. 정비직원들은 열차가 언제 들어오는지를 플랫폼에 설치된 '열차도착정보' 화면을 통해 확인한다.

유 차장은 "센서 정비에 30초도 안 걸리다고는 하지만 스크린도어를 열고 선로쪽으로 들어가면서 열차도착정보 화면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며 “열차도착정보라는 게 승객에게 열차도착 시간을 대략 안내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해 오작동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스크린도어 정비작업 사실을 열차 승무원이 알지 못하거나, 정비직원이 열차가 들어오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안전사고가 나는데, 현재 시스템으로는 그렇게 될 개연성이 매우 높다. 스크린도어 전문가로 진상조사단에 기술 자문을 하는 정재용씨는 “원칙적으로 스크린도어 작업 중 열차가 들어오게 해서는 안 된다”며 “열차를 진입시켜야 하는 상황이라도 속도를 늦춰야 하는데 승무원이 정비사실을 모르니 평소처럼 들어오다 사고가 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매뉴얼은 강화됐는데, 정비원도 역무원도 부족

서울메트로는 스크린도어 사망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매뉴얼을 보완했다. 2015년 강남역 사고 이후 정비직원이 임의로 스크린도어 마스터키를 반출할 수 없게 했다. 2인1조 작업도 의무화됐다. 정비직원 중 한 명은 열차가 선로로 들어오는지 감시하고 역무원은 정비직원이 안전수칙을 지키는지 CCTV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

구의역 사고는 나홀로 작업 중에 발생했다. 2015년에 발생한 강남역에서도 마찬가지다. 강남역 사고의 경우 2인1조 작업을 하지 않아 사고가 났다며 개인과실로 몰아가기도 했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매뉴얼이 제대로 잘 지켜졌으면 사고가 나지 않았을 텐데 누군가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고 그 결과 사고가 발생했다”며 “경찰조사 중인 사건인 만큼 자세히 얘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날 진상조사단은 정비직원이 출동했을 때 서울메트로측에 통보됐는지를 따져 물었다. 정비직원이 작업 중인 상황에 열차가 평소처럼 역에 진입하게 된 경위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정재용씨는 “열차 승무원이 미리 정비작업 중인 것을 알았다면 속도를 줄여 역에 들어오거나 주의를 더 기울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씨는 “열차가 빠른 속도로 들어와 작업자는 선로 밑으로 피신하겠다는 생각조할 할 틈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메트로 역무원이 급격하게 감소하면서 생긴 문제도 제기됐다. 나상필 서울지하철노조 1호선지회장의 설명에 따르면 2000년 기준 서울메트로 역무원 인력은 3천160명이었지만 현재는 1천900명 수준으로 줄었다. 역 안에서 발생하는 상황을 관리하고 통제해야 하는 역무원이 감소했다는 얘기는 곧 사고에 그만큼 취약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강남역 역무원인 A씨는 “강남역은 하루 평균 25만~30만명이 승하차를 하고 있어 역무원이 처리해야 할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은 “센서와 비상문도 역마다 다를 정도로 정비작업이 표준화돼 있지 않은 상황은 하청업체 노동자에게 더 위험하게 작용했을 것”이라며 “지금 같은 상황에는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권영국 진상조사단장은 “사고현장을 둘러보니 (하청업체 노동자의) 안전문제는 뒷전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정비직원을 비롯해 역무원이 어떻게 작업하는지가 중요한 만큼 모든 경우의 수를 감안해 조사하겠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