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여파로 빚어진 금융시장 요동이 잦아들고 있다. 미국과 유럽 증시가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국제 유가도 하락세에서 벗어났다. 미국과 EU 회원국 중앙은행들이 막대한 돈을 푼 효과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 파운드화 가치는 10% 이상 폭락했고, 미국과 유럽 증시는 날개 없이 추락했다. 결국 브렉시트 이후 일주일여 만에 증시가 폭락세에서 오름세로 돌아선 셈이다. 하지만 브렉시트는 중장기적으로 그늘을 드리울 전망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EU 탈퇴 도미노가 예고되고 있는 탓이다. 브렉시트는 세계 정치·경제 불확실성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이다. 이제 국제 증시와 환율 널뛰기, 그리고 글로벌 경제 침체 장기화는 익숙해지고 내면화될 듯 싶다.

52% 대 48%. 겉으로 보기에는 브렉시트에 관한 찬반양론은 엇비슷하다. 영국 국민 일부가 재투표를 요구하고 있다곤 하지만 브렉시트는 번복될 수 없을 것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27일(현지시각) 의회에 출석해 “국민투표는 존중돼야 한다”고 밝혔다. EU 잔류파였던 캐머런 총리는 브렉시트 이후 사퇴의사를 피력했다. 찬성파들이 브렉시트 이후 국정운영을 주도해야 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총리를 배출한 보수당은 브렉시트 찬성쪽에 기울었다. 보수당 내 브렉시트파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으니 재투표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혹자는 영국 국민들이 윈스턴 처칠을 버리고, 마거릿 대처를 선택했다고 평했다. 처칠은 1946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평화를 위해 유럽합중국을 건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면 대처는 “EU는 파국을 맞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결국 대처의 예언이 적중하는 걸까. 역설적이지만 대처만큼 EU 혜택을 입은 지도자도 드물다. 대처는 80년대 집권하면서 신보수주의 또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주창했다. 그는 작은정부, 공기업 민영화, 복지혜택 축소, 제조업 축소와 서비스산업 활성화, 노동운동 무력화에 앞장선 인물이다. 그는 작은정부와 자국 중심주의라는 소신으로 EU에 반대했다. 영국 제조업은 축소되고, 이에 반발하는 노동운동은 철저히 탄압받았다. 영국은 짧은 기간 동안 제조업 대국에서 금융을 중심으로 한 서비스업 국가로 변신했다. 반면 이 기간 동안 영국 일자리는 반토막 났다. 런던은 금융시티로 거듭났고, 비 런던지역은 쇠락했다. EU의 전신인 유럽공동체(EC)는 대처의 정책을 지원했고, 부정적이었던 영국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EC는 1994년 EU로 정식 출범했다. 영국을 끌어안은 EU는 대처가 추진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유럽 각국으로 전파하는 전도사로서 역할을 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극단적인 양극화와 불평등, 일자리의 불안정, 이민자 문제와 인종갈등을 낳았다.

국가와 인종 그리고 세대 간 갈등 앞에 EU는 무기력 했다. 이러는 사이, 부유한 북유럽과 가난한 남유럽 국가 간 갈등도 격화됐다. 북유럽은 재정분담 비용에 불만을 표시하는 한편 남유럽은 긴축재정 기조에 강하게 반발했다. 재정위기에 처했던 그리스의 EU 탈퇴 국민투표는 브렉시트의 선례다. 이 와중에 정치적 성공을 거둔 세력은 극단적 인종주의를 앞세운 극우파였다. 결국 브렉시트는 세계화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폭발한 것이지만 EU의 정치적 무능력에서 비롯됐다.

브렉시트 이후 세계 각국이 대처방안을 짜느라 분주하다. 미국과 EU는 탈퇴 도미노 현상을 막는 데 여념이 없다. 그래야만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추가경정예산 10조원을 포함한 20조원 이상의 재정보강 방안을 꺼내 들었다. 브렉시트 이전에도 올해 경제성장률을 2.8%로 낮춰 전망할 정도로 우리 경제는 저성장 늪에 빠졌다. 브렉시트는 정부가 추경 카드를 제시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했다. 여기엔 전제조건이 붙었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국회에서 노동 4법과 경제활성화법안을 빠른 시일 내에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브렉시트로 세계경제가 밑동째 흔들리고 있는데 정부 정책은 새로운 것이 별로 없다. 정부는 정책기조를 바꾸지 않으면서 돈만 풀겠다는 심사다. 그러면서 노동 4법과 경제활성화법만 통과되면 경제가 살아날 것처럼 환상을 조장한다. 세계경제가 요동치고 있는 가운데 국회가 쟁점법안만 통과시키면 대한민국호는 나홀로 순항할 수 있는 걸까.

이것이야 말로 정부가 만든 ‘신기루’다. 정부가 돈을 풀면 기업엔 혜택이 돌아가지만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는다. 저성장 국면에서 이른바 ‘낙수효과’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돈은 대기업이라는 저수지에 고일 뿐 대다수 국민에게 흘러가지 않는다. 추경예산안이 되레 정부의 재정부담만 키울까 우려스럽다.

브렉시트가 주는 교훈은 세계화의 그늘을 하루속히 걷어 내지 않으면 갈등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이 외치는 것처럼 민생을 최우선에 두고 국가정책을 짜야 한다는 얘기다. 민생을 안정시키려면 노동자와 서민을 직접 지원하는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 노동자·서민의 소득을 증대시키는 방안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은 이에 정확히 부합한다. 최저임금은 저임금 노동자의 생계를 지원할 뿐만 아니라 격차를 해소하는 유력한 방안이다. 2017년 최저임금은 대폭 인상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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