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만 먹고 가!” “휴가 가서 뭐 하려고?” “내일 아침에 보자!” “김 대리, 승진해야지!”

앞으로는 직장에서 이런 말이 금지될지도 모른다. 고용노동부가 제시한 ‘일·가정 양립을 저해하는 말’이다. 저녁만 먹고 가라며 회식을 강요해서는 안 되고, 부하 직원에게 휴가를 결재해 주면서 못마땅하다는 듯 한 표현을 해서는 안 되고, 퇴근시간에 부하 직원에게 과도한 업무를 떠넘겨서는 안 된다는 뜻을 담았다는 설명이다. 정부와 재계가 함께 발표한 ‘일·가정 양립’ 캠페인 내용 중 일부다.

고용노동부·여성가족부·기획재정부·보건복지부와 한국경총·전경련·대한상의·무역협회·중소기업중앙회는 30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센터에서 ‘제2차 일·가정 양립 민관협의회’를 열고 기업문화 4대 캠페인 돌입 계획을 밝혔다. 4대 캠페인은 △휴가 사유 묻지 않기 △근무시간 외 전화·카톡·문자 금지 △CEO 동참 문화개선 △일·가정 양립 권장어·금지어 선정이벤트 등이다. 고영선 노동부 차관은 “전일제 위주 조직문화와 장시간 근로관행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민관이 힘을 합쳐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며 “근로자들이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일·가정 양립 관련 제도를 사용할 수 있는 문화를 확산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발표된 내용은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 온 정책에 모순된다. 일·가정 양립의 핵심은 노동시간 단축인데, 정부는 그동안 이에 역행하는 법과 제도를 추진해 왔다. 정부·여당이 19대 국회에 이어 20대 국회에서도 동일한 내용으로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법안은 법정 노동시간을 현행 최대 52시간에서 60시간으로 늘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공공부문 노사갈등을 초래한 성과연봉제 도입 방안이나, 이른바 저성과자를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한 노동부의 ‘공정인사(일반해고) 지침’도 노동시간단축과는 거리가 멀다. 조직 내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더 오래 더 많이’ 기를 쓰고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과주의가 뿌리박힌 조직에서 '칼퇴근'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정부 발표에 대해 노동계는 "정부가 무엇이 중요한지 전혀 파악을 하지 못했거나, 본질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장시간 노동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원인부터 살폈어야 한다는 얘기다. 김준영 한국노총 대변인은 "상급자로부터 부당한 업무지시를 받더라도 불이익이 두려워 참고 일해야 하는 것이 노동자들의 현실"이라며 "정부는 노동자들이 불이익 걱정 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만들거나, 노동조합이 노동자의 대변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사관계 안정화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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