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의 과제가 제시됐다. 경제민주화와 격차 해소다. 여야 3당 대표는 교섭단체 첫 대표연설에서 이를 강조했다. 공정한 분배구조를 확립하자는 취지였다. 재벌기업 중심 독과점과 불공정이 심화한 한국 경제를 뜯어고치자는 것이다. 그래야만 불평등과 저성장 늪에 빠진 한국 경제의 활로가 열린다는 인식이다.

경제민주화는 19대 국회의 화두였다. 박근혜 대통령도 약속했다. 하지만 결실을 맺지 못했다. 실패한 원인은 '리더십' 때문이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경제민주화를 공약한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가 없었던 탓”이라고 분석했다. 김종인 대표의 진단은 허튼소리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민주화를 실천하지 못했다. 여야 대표 모두 재벌기업의 폐해를 거론하고 격차 해소를 주장한 것만 봐도 그러하다.

물론 여야 3당 대표가 제시한 해법은 제각각이다. 양극화 원인을 바라보는 인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기득권을 고수하는 정규직 노동자로 인해 격차가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고임금 정규직 노동자가 양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원내대표는 이를 ‘중향평준화’라고 정의했다.

김종인 대표는 재벌대기업의 전횡을 바로잡기 위해 경제민주화를 추진하자고 밝혔다. 그는 불평등 해소방안으로 최저임금과 기초연금 인상을 제시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대표는 20대 국회 차원에서 격차 해소 로드맵을 만들자고 강조했다.

여야 3당 대표의 연설에는 공통점과 변별점이 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재벌기업의 편법상속과 불법경영을 지적했지만 견제방안에 대해선 침묵했다. 또한 최저임금 인상 같은 바닥을 끌어올리는 격차 해소방안은 외면했다. 그저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양보만 역설했다. 이러니 중향평준화는 공허한 소리로 들린다. 하향평준화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전 대표의 종전 주장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반면 김종인 대표는 스위스가 국민투표에 부쳤던 '기본소득'까지 거론했다. 격차 해소를 위한 차별화된 인식을 갖고 있음을 내비친 셈이다. 안철수 대표는 차별 해소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야당의 해법은 알맹이가 빠진 것처럼 허전하게 느껴진다.

이를테면 19대 국회는 경제민주화와 노동존중을 함께 내걸었다.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노동존중이라는 공감대에서다. 당시 야당인 민주통합당은 당 강령에 노동존중을 명시하고 공약에도 반영했다. 새누리당도 이런 흐름에 발맞춰 정리해고 요건 강화 등 노동공약을 보완했다.

여야 모두 경제민주화뿐만 아니라 노동공약에서도 경쟁했다. 그런데 20대 국회 여야 3당 대표들은 노동을 가르고 공격(여당)하는 한편 외면(야당)하는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노동조합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르지 않다. 격차 해소를 위한 노동조합의 역할을 거론하지 않는 것만 봐도 그러하다. 여야 3당 대표 모두 격차 해소를 위해 사회적 대화를 주창하고 있지만 진정성은 없어 보인다. 그들에게 경제민주화와 격차 해소 주체는 국회와 정부일 뿐이다. 노·사는 그저 하위파트너처럼 여겨진다.

경제민주화의 알맹이는 노동존중과 노사 대등성 형성이다. 격차 해소는 결국 노동존중으로 귀결돼야 한다. 20대 국회가 제기한 격차 해소도 이러한 전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적어도 사회통합적 관점에서 노사관계를 포함한 정책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지 않는 여야 정책경쟁은 달갑지 않다. 경제민주화를 공약한 박근혜 대통령의 실패를 되풀이할 것 같아 우려스럽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