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자제품 수리기사들과 케이블방송·통신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고용안정 투쟁은 노조를 만든 지 수년이 지났는데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들은 "원청이 고용과 임금 등 처우개선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사진은 2014년 12월 희망연대노조 조합원들의 총파업 결의대회 모습. 매일노동뉴스 자료사진

"삼성서비스 다니면서 너무 힘들었어요. 배고파 못살았고, 다들 너무 힘들어서 옆에서 보는 것도 힘들었어요. 그래서 전 전태일님처럼 그러진 못해도, 전 선택했어요. 부디 도움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더 이상 누구의 희생도 아픔도 보질 못하겠으며 조합원들의 힘든 모습도 보지 못하겠기에 절 바칩니다. 저 하나로 인해 지회의 승리를 기원합니다. 저의 시신을 찾게 되면 우리 지회가 승리할 때까지 안치해 주십시오. 저희가 승리하는 그날 화장해 이곳에 뿌려 주세요."

두 사람이 따로 썼는데 글의 내용은 같다. 한마디로 이겨 달라는 것.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소속이었던 고 최종범 조합원(사망당시 32세)과 염호석 전 지회 양산분회장(사망당시 34세)이 남긴 유서다. 최 전 조합원은 2013년 10월31일, 염 전 분회장은 2014년 5월17일 각각 숨진 채 발견됐다.

다음달 14일이면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금속노조 깃발을 올린 지 만 3년이 된다. 그날 400여명의 노동자들은 "일요일에 일하면 고액의 수당을 주겠다"는 원청 제안을 뿌리치고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 강당에 운집했다. 노조를 만든 대가는 혹독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2명의 조합원이 세상을 등진 후인 2014년 6월28일에야 삼성전자서비스측과 임금·단체협약을 타결했다.

통신·케이블방송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대표 조직은 희망연대노조다. 노조는 지역일반노조 형태로 2009년 12월2일 만들어졌다. 지역사회운동을 지향하는 노조는 이듬해 1월 케이블방송씨앤앰지부(정규직지부)를 결성하고 2013년 케이블방송비정규직씨앤앰지부·티브로드지부로 조직을 확대했다. 2014년에는 엘지유플러스와 SK브로드밴드 하청노동자들이 노조 아래로 뭉쳤다. 노조 조직화 과정에서 씨앤앰 정규직들이 비정규직과 손을 맞잡으면서 노동운동의 모범사례를 만들어 냈다.

힘들게 노조 만든 간접고용 노동자들, 다시 원점으로

통신·케이블방송 하청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든 직후 기나긴 싸움에 들어갔다. 2013년 3월30일 결성한 티브로드비정규직지부는 같은해 35일 파업을 벌이는 등 1년간 투쟁에 나선 끝에 2014년 4월 하청업체들과 임단협을 체결했다. 엘지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와 SK브로드밴드비정규직지부도 각각 161일·158일 파업을 거치고 나서야 임단협을 타결했다. 두 지부 조합원 장연의·강세웅씨는 80일간 서울 중구 한국은행 맞은편 서울중앙우체국 광고판에서 고공농성을 했다.

씨앤앰 비정규 노동자들은 2014년 사측이 협력업체 교체 과정에서 109명을 해고한 것에 반발해 205일간 파업을 전개했다. 파업기간 중에 177일 노숙농성을 했다. 강성덕·임정균 조합원은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앞 전광판 위에서 50일간 농성을 벌였다.

삼성전자서비스와 통신·케이블방송 하청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든 이유는 같다. 안민지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교선위원은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바지사장 중간착취로 임금이 줄어드는 데다, 건당 수수료 임금체계 탓에 생활이 불안정하다"며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고 싶어 노조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근 두 노조의 관심은 처우개선이 아니라 고용안정과 노조 지키기에 쏠려 있다. 노조를 만들기 전보다 되레 힘든 상황에 처한 것이다.

희망연대노조 티브로드지부는 올해 임금협상에서 하청업체인 센터 재계약 과정에서 발생한 해고사태 해결을 첫 요구로 내걸었다. 티브로드 한빛북부기술센터와 전주기술센터는 올해 초 새 사장이 들어오면서 각각 조합원 5명과 19명에 대한 고용승계를 거부했다.

“높아지는 고용불안, 하청업체 교섭으론 해결 못해”

협력업체 사장들이 직접고용을 줄이고 도급 등 개인사업자로 인력을 대체하는 경향도 늘고 있다. 엘지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가 지난해 5월 협력업체들과 임단협을 체결할 당시 엘지유플러스 홈서비스센터 가운데 노조가 설립돼 있는 17개 센터 전체 직원 637명 중 도급인력은 233명(37%)이었다. 그런데 올해 4월 조사에서는 달랐다. 총원은 변함이 없는데, 도급인력이 312명(50%)으로 급증한 것이다.

지부 관계자는 "협력업체 직원을 도급으로 전환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조합원들에게 회유와 협박을 하고 있다"며 "괜찮은 직장을 만들기 위해 노조를 만들고 싸웠는데, 이젠 일자리 지키기 투쟁을 해야 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희망연대노조 방송·통신 6개 지부 중 올해 교섭을 정상적으로 진행하거나 타결한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티브로드비정규직지부와 SK브로드밴드비정규직지부는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가결했고, 티브로드지부(정규직)는 교섭이 결렬됐다. 씨앤앰·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는 교섭에 진척이 없어 파업을 준비 중이다. 엘지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는 교섭을 이어 가고 있지만 타결 가능성이 낮다. 대부분 고용보장 방안과 임금인상 여부에서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회는 지난달 30일 두 시간 경고파업을 했다. 2014년 6월 이후 2년 만의 파업이었다. 올해 임단협에서 협력업체들은 계약직 직원을 노조 가입범위에서 제외하고, 회사를 비방하는 홍보활동을 하지 말 것, 쟁의행위 돌입 7일 전 사전통고와 사업장 점거농성 금지를 요구했다. 모두 노조활동을 위축시키는 내용이다.

엘지유플러스 홈서비스센터의 하청업체 도급인력 확대 움직임은 삼성전자서비스에서도 나타난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관계자는 "과거 성수기 시즌에 이뤄졌던 도급계약이 최근에는 협력업체 직원을 대체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3개월 단기계약직과 제휴사업자로 불리는 개인사업자를 채용하는 센터가 급속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지회는 27일부터 조합원이 있는 전국 47개 서비스센터에서 조합원을 지명하는 방식으로 순회파업에 들어간다.

정부도, 법도 간접고용 노동자 편 아니다

힘겹게 노조를 만든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고용안정조차 걱정해야 하는 이유는 법·제도의 허술함에서 기인한다. 안민지 교선위원은 삼성전자서비스지회와 협력업체 사장들의 올해 임단협 교섭에서 웃지 못할 사례를 수차례 목격했다. 그는 "사측 요구안을 사측 교섭위원들이 알지 못해 각자 다른 말을 하거나, 교섭 중 서너 시간씩 정회를 하고 한국경총 관계자의 조언을 듣고 난 뒤 입장을 수정하는 경우가 있었다"며 "사측 교섭위원들에게 임금·노동조건을 결정할 권한이 없다 보니 교섭에 진척이 없다"고 지적했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이 쉽지 않다는 것도 노조 투쟁을 장기화하는 원인이 된다. 지난해 엘지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가 파업을 할 때 원청과 하청업체는 대체인력을 대규모로 투입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파업에도 대체인력이 동원됐다.

원청과 협력업체의 대체인력 투입은 세 가지 형태로 이뤄진다. 원청이 자기 직원들을 투입하거나, 다른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에게 일을 맡기거나, 아니면 원청이 전국적으로 대체인력을 배치하는 식이다.

고용노동부는 원청의 이 같은 파업무력화에 합법성을 부여해 주고 있다. 노동부는 1998년 간접고용시 대체인력 투입을 제한하는 기존 행정해석을 뒤집고 "하청업체 파업기간 중 원청이 다른 하청업체를 통해 고용한 소속 노동자로 대체인력을 투입하는 것은 적법하다"는 취지의 행정해석을 내렸다.

노동부는 원청이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지배·결정할 수 있는 경우 사용자에 해당한다는 최근 대법원 판결에도 이 같은 행정해석을 유지하고 있다. 김승호 티브로드비정규직지부 사무국장은 "우리가 하청업체들과 교섭을 한다는 이유로 원청이 대체인력을 투입해 단체행동권을 무너뜨리고 있다"며 "노동부가 법원 판례를 적극적으로 해석해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동 3권을 보호할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인간답게 살아 보려고 노조 만들었는데…”

노조의 가장 큰 고민은 고용불안이다. 원청이 하청업체와 재계약하지 않는 방식으로 조합원이 많은 센터를 폐업시키거나, 고용승계를 빌미로 노조 탈퇴를 압박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2014년 씨앤앰 비정규직 109명 해고와 올해 초 발생한 티브로드 2개 센터 해고 사례가 이를 방증한다.

제유곤 엘지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 수석부지부장은 "인간답게 살아 보겠다고 노조를 만들었더니 외주 도급화로 직원을 줄이고, 센터 재계약을 이유로 고용불안을 야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신분에 불안을 느끼는 조합원들이 노조를 탈퇴하거나, 혹은 아예 직장을 떠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3년 전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출범할 당시 총회에 이름을 올린 조합원은 400여명이다. 임단협을 체결했던 2014년 1천600명으로 증가했다가 최근 들어 800여명으로 줄었다. 조합원 250여명으로 출발한 티브로드비정규직지부는 임단협을 체결할 당시인 2014년 400명까지 늘었다. 하지만 요즘은 160여명이 지부를 지키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관계자는 "각 센터들이 임단협을 잘 지키지 않고 조합원들에게 일감을 적게 주는 등 각종 불이익을 주면서 퇴사자와 탈퇴자들이 늘었다"고 귀띔했다. 김승호 사무국장은 "파업 때 대체인력이 투입돼 생계에 위협을 받고 협력업체 교체시 대량해고가 발생한 이후 조합원들이 감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와 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비정규직지부·엘지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티브로드비정규직지부·씨앤앰비정규직지부는 올해 3월 공동투쟁본부를 꾸렸다.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겪는 고용불안을 해소하고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원청을 상대로 함께 싸우기 위해서다. 이들은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동 3권 제약을 개선하는 입법을 국회에 촉구할 계획이다.

원청을 간접고용 노동자의 사용자로 볼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개정하고, 위탁업체 변경시 고용승계 의무화와 원청의 대체인력 투입 금지를 법에 명문화할 방침이다. 재벌에게 사회적 책임을 묻는 재벌개혁 운동에도 함께한다.

박재범 희망연대노조 사무국장은 "재벌 원청이 고용책임을 방관하면서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노동권을 침해당하고 있다"며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주범인 재벌을 개혁하는 운동에 앞장서고, 간접고용 노조의 노동 3권을 확보하는 입법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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