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합정동에서 곱창집을 운영하는 최아무개(48) 사장이 지난 21일 오후 영업준비를 하고 있다.정기훈 기자

내년 최저임금 결정시한(28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노동계는 시급 1만원(월급 209만원)을, 재계는 6천30원(동결)을 각각 주장하고 있다. 이런 상태라면 정부 의견을 대폭 반영한 공익위원안을 놓고 표결을 벌이는 기존 관행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

올해 최저임금 협상의 또 다른 특징은 눈에 띄는 쟁점이 없다는 점이다. 재계가 업종에 따른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주장하고 있지만, 갑자기 툭 튀어나온 주장이 아니다. 때만 되면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재계 단골 메뉴는 또 있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자영업자가 망한다”는 주장이다. 재계는 1년 내내 한계기업 퇴출과 구조조정의 당위성을 역설하다가도, 최저임금 철만 되면 태도를 바꾼다. 그래서 <매일노동뉴스>가 재계가 걱정해 마지않는 자영업자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원하는 결론에 이르지 못하리라는 사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요즘처럼 불황인 때 권리금에, 보증금에 임대료까지 따박따박 내면서 점포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에게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것이 그들의 화를 돋우는 행위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 더구나 <매일노동뉴스> 아닌가.

“최저임금 1만원”을 외치는 노동계 목소리에 힘을 실어도 모자랄 판에 웬 자영업자 타령이냐고 생각하는 독자가 많을 줄 안다. 하지만 자영업자 600만명 시대에 이들의 처지를 외면한 채 최저임금 문제를 다루는 것은 본질을 비켜난 접근이라고 판단했다. 상당수 자영업자가 노동시장에서 퇴출된 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자영업 시장에 뛰어드는 현실도 감안했다. 자영업자의 오늘은 노동자의 내일이다.

그래서 두 분의 사장님을 만났다. 서울 지하철 2호선 합정역 근처에서 곱창집을 운영하는 최아무개(48) 사장과 ‘인천의 명동’으로 불리는 구월동 로데오거리에서 프랜차이즈 치킨집을 운영하는 임아무개(44) 사장이다. 사실은 이들에게 “최저임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대답을 끌어내려고 다양한 스킬(?)을 동원했다. 같은 질문을 말만 바꿔서 여러 번 돌려 묻는 교란작전을 펴기도 하고 “최저임금 6천30원으로는 이 가게에서 삼겹살 1인분도 못 사 먹는다”며 협박 아닌 협박도 했다. 그러나 끝내 속 시원한 대답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자영업자가 죄다 망한다는 재계 주장이 정녕 사실이었단 말인가.

소꼼마을 최 사장의 홍대 앞 입성기

“가게 상호는 기사에 내보내도 되지만 제 이름은 밝히지 말아 주세요.”

지난 21일 오후 영업 준비에 나선 합정동 ‘소꼼마을’ 최 사장이 내건 인터뷰 조건이다. 이게 취재원 보호인지 홍보인지 헷갈리기는 하지만 “물론이죠”라고 약속하고 첫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어쩌다 장사를 하게 되셨어요?”

그가 털어놓은 삶의 이력은 예상에서 다소 빗나갔다. 부산의 한 대학에서 체육을 전공한 최 사장은 졸업 후 시의회 의장 비서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한때는 정치인이 되겠다는 꿈도 꿨다. 그러던 중 전공을 살려 시가 운영하는 체육회 직원으로 들어갔고, 그 인연으로 지역 스포츠신문 기자로도 일했다.

그런데 조직생활은 그의 적성에 맞지 않았다. 자영업으로 진로를 바꾼 이유다. 사촌형으로부터 만화책 대여점을 인수해 운영했다. 작은 가게였지만 3년 정도 지나니 돈이 모였다. 돈을 더 벌고 싶었다. 이번엔 스포츠의류점을 열었다. 역시나 장사는 잘됐다. 사업 욕심이 났다. 그래, 기회의 땅 중국으로 가자.

“중국에서 사업을 시작한 지 3년 만에 전 재산 10억원을 몽땅 날렸어요. 빈털터리로 한국에 돌아왔는데 쪽팔려서 부산에는 못 내려가겠고….”

수원의 한 여인숙에서 한 줌의 수면제와 소주를 삼켰다. 아뿔싸. 그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체질이었다. 수면제를 게워 내며 “죽느니 살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무일푼의 그는 먹여 주고 재워 준다는 말에 무슨무슨 가든이라고 이름 붙인 식당에 취직했다. 거기서 식당일을 배웠다. 자신의 가게를 연 건 5년 전 일이다. 자본금 2천만원으로 서울 화곡동에 작은 곱창집을 차렸다. 가게 자리가 후미져 손님들이 찾아오지 않았다. 죽어라고 일했지만 한 달에 100만원도 남지 않았다.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었다. 그의 사정을 딱하게 여긴 지인이 이자도 받지 않고 돈을 빌려줬다. 목이 좋은 곳을 찾아 가게를 옮기기로 했다. 지금까지 세 번 가게를 옮겼다. 합정동으로 온 지는 1년 반이 됐다. 핫 플레이스 홍대 앞 상권으로의 진입이었다.

▲ 핫 플레이스 홍대 앞 거리. 1년 내내 상가건물 재건축이나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정기훈 기자

홀·주방 오가며 일주일 6일, 하루 12시간 근무
순수익은 부부 합산 월 400만원


요즘 홍대 앞 거리는 한마디로 공사판이다. 기존 상가건물을 철거하고 다시 짓거나, 리모델링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넓지도 않은 도로에 공사용 지게차량이 오가고 크레인이 선다. 아직 완공도 되지 않은 건물의 철골구조에는 ‘임대 문의’ 광고가 넘쳐 난다. 원래 그 자리에서 장사를 하던 상인들은 소리 없이 자취를 감췄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홍대 앞·상수동·경리단길·서촌처럼 소위 ‘뜨는 동네’에서 장사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 봤을 말이다. 이미 피해를 본 사람도 부지기수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슬럼가의) 고급주택화’ 정도로 해석된다. 상류계급이나 신사계급을 지칭하는 ‘젠트리’에서 파생된 말이다. 1964년 영국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가 런던에서 벌어진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했다. 당시 런던 슬럼가에 중산층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집값·임대료·재산세는 물론이고 기타 서비스요금이 줄줄이 올랐다. 원래 그 자리에서 살아온 빈민들은 점점 도시 외곽으로 밀려났다.

마치 대기업 프랜차이즈 체인이나 번듯한 레스토랑에 밀려나는 홍대 앞 상인들의 모습과 닮았다. 연남동 쪽으로 밀려갔다가 거기서도 버티지 못하고 제3의 터전을 찾아 떠나는 이들의 미래는 암울하다. 더 이상 은행대출이 안 돼 사채까지 끌어 쓰다 빚 독촉에 시달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어느 자영업자의 비운의 삶은 이제 신문 사회면 한 구석에조차 오르지 못하는 그저 그런 사연이 됐다.

곱창집 최 사장도 언젠가 자신이 쫓겨나는 상황에 처하지 않을까 늘 불안하다. 가게가 망하면 그는 중국에서의 사업 실패 후 맛봤던 깊은 절망을 또다시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게 면적이 주방을 포함해 16평(52.89제곱미터)인데요. 여기 들어오려고 권리금 1억원을 냈어요. 건물주와는 보증금 3천500만원에 매달 임대료 200만원씩 지불하기로 계약을 맺었고요. 보증금은 이사갈 때 돌려받으면 되니까 별 문제가 아닌데, 권리금이 제일 걱정이죠. 법적으로 보호되는 자산이 아니다 보니…. 혹시라도 떼일까 봐 항상 마음 한구석이 조마조마해요. 권리금 다음으로는 임대료 부담이 크고요. 아직 갚아야 할 빚도 많고….”

차 떼고 포 떼고, 가게를 운영하는 최 사장과 그의 아내에게 돌아가는 순수익은 월 400만원 정도다. 1인당 200만원인 셈이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12시간씩 주방과 홀을 오가며 서서 일한 대가다. 따로 직원을 뽑지는 않았다. 아니 뽑을 수가 없었다. 직원을 뽑으면 최 사장 부부가 가져가는 몫에서 그만큼이 줄어든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자영업자는 555만1천명이다. 이 중 최 사장 같은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가 402만명이나 된다. 사실상 한계기업에 가까운 영세 자영업자가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최저임금이 오르든 내리든 크게 상관이 없다. 직원을 고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최저임금이 오르더라도 매출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반면 최저임금 상승이 경기부양 효과로 이어질 경우에는 오히려 득이 될 수 있다. 누구나 그렇지 않은가. 주머니가 두둑할 때 밖에 나가서 고기 한 번 더 사 먹는 법이다.

▲ 홍대 앞 한 점포 앞에 ‘일수’ 광고전단이 놓여 있다. 정기훈 기자

군대 장교에서 프랜차이즈 치킨집 점주로

최저임금이 오르면 자영업자들이 죄다 망한다는 재계의 주장은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4월 기준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153만1천명이다. 편의점이나 치킨집·커피숍·브랜드 빵집 같은 프랜차이즈 매장을 운영하는 점주가 여기에 해당한다.

지난 22일 저녁 인천 구월동 로데오거리. 부평역과 함께 인천의 2대 상권을 이루는 이곳은 ‘인천의 명동’으로 불리는 번화가다. 아직 해가 저물기도 전인데 젊은이들이 꽤나 눈에 띈다. 대개는 밥을 먹거나, 가볍게 한잔하려는 무리다. 메인 거리를 따라 걷다 보니 ○○○치킨 간판이 보인다. 생각했던 것보다 매장이 크다. ‘이런 자리에서 이런 가게를?’ 이곳 사장은 엄청 부자인가 보다.

“잠시만 앉아서 기다리실래요? 지금 결산 중이라.”

프랜차이즈 치킨집을 운영하는 임 사장은 군대에서 장교를 지냈다. 학생군사교육단(ROTC) 출신으로 대학 졸업과 동시에 장교로 임관해 12년간 직업군인으로 살았다. 하지만 육군사관학교 출신에 비해 진급 한계가 뚜렷해 전역을 택했다. 그 뒤 2년 정도 금융회사에 취직해 자산관리업무를 했다. 직장 경험은 그게 전부다.

임 사장은 지금으로부터 8년 전 현재 가게에서 처음 장사를 시작했다. 당시는 치킨이 아닌 닭갈비 프랜차이즈업체와 가맹계약을 맺고 영업을 했다. 처음 가게를 열 때 권리금만 2억원 넘게 들었다. 그래도 다행히 장사가 곧잘 됐다. 그러자 프랜차이즈 본사의 괴롭힘이 시작됐다.

“장사를 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실수하는 부분이 있어요. 판매용 음식이 아니라 직원들이 먹는 음식 중에 유통기간 지난 것이 남아 있거나, 혹은 행정적으로 갖춰야 할 서류를 빼먹는 경우죠. 본사 관계자가 사사건건 찾아와 지적질을 하더니, 결국 가맹계약 해지를 통보했어요. 물론 제가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장사를 처음 하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본사는 계약해지를 밀어붙이더라고요.”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이게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단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임 사장이 가게 문을 닫자마자 근처 상가에 같은 브랜드 매장이 문을 열었다. 본사 임직원 친척이 그 가게 사장이라고 했다. 닭갈비 영업권을 빼앗긴 뒤 이번에는 깐풍기 프랜차이즈업체와 계약을 맺었다. 한데 장사가 너무 안 됐다. 메뉴 선택을 잘못한 탓이다. 깐풍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무지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럴 즈음 ○○○치킨 본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자신들과 가맹계약을 맺으면 인테리어 비용을 지원해 주고, 별도 가맹비를 받지 않겠다는 조건이었다. 그는 ‘얼씨구나’ 했다. 2014년 여름의 일이다.

최저임금 올라 경기 살아난다면
“최저임금 인상 찬성, 진짜 그렇게만 된다면…”


임 사장의 치킨집에는 8명의 아르바이트생과 직원이 함께 일한다. 그는 갓 들어온 알바생에게는 시급 6천300원을, 오래 근무한 알바생에게는 시급 6천700원을 쳐준다. 풀타임 직원의 경우 시급 8천원을 기준으로 기본급과 법정수당을 지급한다. 워낙 번화가라 최저임금에 맞춰 지급하면 직원 구하기가 어렵다. 직원 없이 주방과 홀 업무를 사장 혼자 다할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물었다.

“최저임금 오르면 정말 가게가 망하나요?”

대답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임 사장은 가게의 대차대조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월 매출이 6천만원 정도인데 △임대료 1천만원 △직원 인건비 1천500만원 △본사 물품 및 식자재 구매비 2천만원 △주류 구입비 700만원 △관리비·가스비·전기세·수도세 200만원 등이 고정적으로 빠져나간다. 비용을 아끼려면 꼼수를 써야 한다. 비싼 본사 물품 대신 시장이나 마트에서 재료를 사다 쓰는 것이다. 점주들은 이런 행위를 ‘사입’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튀김용 닭 한 마리를 사입하면 3천300원인데, 본사에서는 5천500원에 판다. 오일이나 튀김가루도 마찬가지다. 본사는 이런 식으로 수수료를 떼어 간다. 만약 사입 행위가 본사에 적발되면 어마어마한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하여 임 사장이 실제로 손에 쥐는 수익은 월 400만원 정도다. 여기서 대출 이자가 추가로 빠져나간다.

“이 정도 가게 운영한다고 하면 월 1천만원은 거뜬히 버는 줄 아셨죠? 아이고…. 자영업이요, 이게 다 남 좋은 일 시켜 주는 겁니다. 아까 최저임금에 대해 물으셨잖아요? 그게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그렇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에요. 최저임금 인상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늘 하는 얘기 있잖아요. 최저임금이 오르면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높아져서 내수활성화로 이어진다는 거. 그렇게만 된다면 저 역시 최저임금 인상에 찬성합니다. 매출이 늘어 손익분기점을 돌파하면 저에게 돌아오는 수익이 지금보다 훨씬 많아지니까요. 그중 일부를 직원들 임금에 보태 주는 게 뭐가 어렵겠어요. 진짜로 그렇게만 된다면 말이죠.”

임 사장은 현재 건물주와 권리금을 놓고 분쟁 중이다. 주방을 포함해 50평(165.29제곱미터)에 달하는 그의 가게 정도면 로데오거리 기준으로 4억원에서 4억5천만원 사이에 권리금이 형성된다. 어느 날 건물주가 그를 불렀다. 그러더니 “내가 직접 가게를 운영할 생각이니 매장을 비워 달라”고 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권리금은 어떻게 할 거냐고 따져 물었더니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는 차가운 대답이 돌아왔다. 건물주는 이미 변호사까지 선임한 상태였다. 임차상인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제정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상가임대차법)에 구멍이 숭숭 뚫려 벌어지는 일이다.

“민주노총 같은 데서 최저임금 1만원으로 올리자고 주장하잖아요. 솔직히 그런 말 들으면 심장이 철렁합니다. 직원들 월급을 못해도 100만원씩은 올려 줘야 한다는 얘긴데…. 그런데 최저임금 때문에 망할 거란 생각은 별로 안 해요. 많은 적든 꾸준히 오르는 거니까 맞춰 가야죠. 지금까지도 그랬으니까. 그보다는 최저임금이 1만원이 될 때까지 제가 장사를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권리금 뜯기고 임대료에 짓눌려 그전에 나가떨어지지 않을까요?”

구은회 기자

 자영업 시장에 뛰어드는 사람들 “선택지가 없다”
‘고용·노후불안’ 노동시장 벗어나면 '자영업 or 파견업'

정년퇴직이나 희망퇴직·정리해고 등으로 노동시장에서 퇴출된 노동자들은 당장에 먹고살 일이 걱정이다. 퇴직금에 위로금에, 있는 돈 없는 돈 다 보태 창업에 뛰어든다. 동네마다 편의점·치킨집·커피숍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이유다. 그런 점에서 자영업은 노동자의 ‘오래된 미래’다.

A은행에서 20년 넘게 근무하다 올해 2월 퇴직한 송진호(42·가명)씨. 실적압박에 시달리던 그는 “더 늦으면 새 출발이 어렵다”는 생각에 사표를 썼다. 은행권이 그렇듯 버텨 봤자 정년보장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송씨는 퇴직금으로 받은 2억원으로 현재 프랜차이즈 콩나물국밥집 개업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불안감을 떨치긴 어렵다. 개업을 앞둔 요즘 그는 집 근처 절을 자주 찾는다.

B은행에서 11년간 근무한 최수진(39·가명)씨도 이달 은행을 그만뒀다. 매년 우수직원상을 받을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압박이 컸다. 50세를 전후해 희망퇴직 명목으로 쫓겨나느니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새로 자리를 잡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은행원인 남편은 은행에 남고, 자신이 창업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최씨는 프랜차이즈 감자탕집 개업을 준비 중이다. 장사 경험이 없기 때문에 프랜차이즈업체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퇴직금만으로는 모자라 사업자 대출까지 받아 가게에 올인했다. 그는 “은행에 붙어 있을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버텨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그게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며 “큰돈을 들여 시작하는 사업인 만큼 여기서는 오래 살아남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의 새 출발은 평균적인 자영업자 처지로 보면 가시밭길을 걸을 게 분명하다. 행운이 따르지 않는 한 그렇다. 지난해 국세청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4~2013년 자영업 창업은 949만건, 폐업은 793만건이다. 이 기간 자영업 생존율은 16.4%에 불과하다.

한편 송씨와 최씨는 “처음부터 고용노동부 등이 운영하는 중장년 재취업 프로그램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재취업을 하더라도 고용불안과 노후불안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퇴직자들이 재취업보다는 자영업을 택하는 이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영업자 비율’ 자료를 보면 2013년 기준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은 27.4%다. OECD 평균(15.4%)보다 12%포인트나 높다.

장흥배 노동당 정책실장은 “노동자들이 노동시장 밖으로 나가려는 유인을 없애야 자영업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며 “재계는 최저임금 인상이 자영업 몰락을 부추긴다는 궤변을 늘어놓을 게 아니라 저임금 해소와 고용보장에 힘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정부 정책은 정확하게 반대방향을 향하고 있다. 정부·여당이 ‘노동개혁법’으로 명명한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개정안은 55세 이상 고령자를 저임금·비정규직의 대명사인 파견 일자리에 투입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구은회 기자
윤자은 기자

 

 ‘구멍 숭숭’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시행 1년 된 권리금 보장법에도 자영업자 신음은 계속

세를 얻어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은 “권리금 때문에 못 살겠다”고 입을 모은다. 최저임금 문제를 취재하기 위해 만난 자영업자들 역시 “최저임금은 됐고,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상가임대차법)이 얼마나 심각한지 기사 좀 써 달라”고 했다. 상가 임차인(자영업자)의 권리금 보장방안을 담은 상가임대차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자영업자들의 신음은 계속되고 있다.

개정법은 임대인(건물주)이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만약 임대인이 방해행위를 하면 임차인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임대인이 방해행위를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이를 막을 안전장치가 없다는 점이 문제다.

예를 들어 임대인이 월세를 과도하게 올리는 경우다. 개정법은 임대계약 만료 3개월 전부터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권리금 회수기회를 보장하도록 했다. 거꾸로 말하면 3개월 안에 임차인을 구하지 못하면 권리금 회수기회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이때 임대인이 높은 월세를 요구하면 3개월 안에 다음 임차인을 찾기가 어려워진다.

어째서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현행법상 환산보증금(보증금과 월세 환산액을 합한 금액)이 4억원을 넘을 경우 임대료 연 상승률은 제한을 받지 않는다. 임영희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맘상모) 사무국장은 “이른바 ‘부자 상인’까지 보호해 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 이 조항의 논리인데, 자세히 보면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내는 월세를 임차인 재산으로 둔갑시킨 꼴”이라고 비판했다.

건물을 철거·재건축하면 계약갱신 보호기간인 5년이 지나지 않아도 임차인을 내보낼 수 있도록 한 조항도 논란거리다. 합정동에서 곱창집을 운영하는 최아무개(48) 사장은 “건물주가 재건축을 이유로 기존 임차인에게 가게를 비우라고 요구한 뒤 인테리어를 바꾸는 수준으로 공사를 마치고, 새로 들어오는 임차인에게 월세를 높여 받아 인테리어 비용까지 뽑아 먹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구은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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