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에는 한여름에도 중무장을 한 채 아파트만 한 공장 안에서 집채만 한 철을 주무르는 사람들이 있다. 용접기 연기와 페인트에서 나는 유독물질 냄새, 파워공의 그라인더가 철을 갈면서 만들어 내는 철가루가 어두컴컴한 블록 안에서 뒤섞여 아비규환을 이룬다.

하나의 배를 만들기 위해 저마다의 일을 하는 노동자들은 같은 회사 소속이 아니다. 각기 다른 하청업체에서 나와 각자 맡은 일을 처리할 뿐이다. A업체 사람이 페인트칠을 하면, B업체 사람은 철을 갈고, 물량팀은 발판을 깐다. 이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 세계 1위 조선소 현대중공업에서 배를 만드는 노동자라는 것이다.

인터넷언론 프레시안 사회부에서 일하는 허환주 기자가 쓴 <현대조선 잔혹사>(후마니타스·1만5천원·사진)는 조선소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경기 불황을 이유로 해고 1순위가 되고, 위험한 업무에 내몰려 목숨을 잃기 십상인 조선소 내 ‘막장 인생’의 애환을 들려준다. 저자는 지난 6년간 국내 주요 조선소를 오가며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조선산업의 구조적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유리먼지 박힌 일회용 마스크를 벗으며

이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된다. 그중 1·2장은 저자의 조선소 위장취업 체험담을 담고 있다. 저자가 조선소 사내하청업체에 신분을 속인 채 취업하게 되는 과정과 실제 노동현장에 투입된 뒤 겪은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생생하게 그려 냈다.

저자는 노동조합 활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한 노동자의 도움을 받아 조선소에 취업한다. 선박 엔진룸 내부 파이프 단열재에 함석판을 덧씌우는 업무에 배정됐다. 유리섬유로 된 파이프 단열재가 깨지면서 나오는 유리먼지가 작업복 안까지 들어오고, 일회용 마스크를 쓴 입과 코 주변까지 유리먼지가 촘촘히 박혔다. 고급마스크는 비싸다는 이유로 지급되지 않았다. 자기 몸은 자기가 지켜야 한다는 것이 조선소 제1의 생존원리다.

“마스크 꼭 쓰고 일혀요. 안 그러면 몸 다 망가진다 아닌교. 지금 어두워서 안 보이는 것이지 먼지랑 철가루가 엄청시리 날아다니고 있으예. 여기서는 지 몸 지가 챙겨야 혀요. 안 그러면 오래 못 버티지.”

저자가 취재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기 전날 밤,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사수와 술 한잔 기울이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호기롭게 소고기를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어린 사수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행님요. 저기…. 혹시 제 집사람 불러도 되는 기라예? 아내가 셋째를 임신하지 않았는교. 민망하긴 한데, 아내 불러서 고기 좀 먹여도 되는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전역한 뒤 조선소 하청노동자였던 아버지의 손을 따라 대를 이어 조선소 밥을 먹게 된 서아무개씨. 그를 조선소로 이끈 아버지는 잔업을 마치고 퇴근하던 중 통근버스 안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보상금은 고사하고 산재신청도 하지 못했다. 그런 뒤 서씨는 공사장 막노동판과 제조업 공장을 전전하다 결국 조선소로 되돌아왔다. 100만원 남짓한 벌이로는 아내와 아이들을 먹여 살릴 수 없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가슴속에서 뜨거운 게 올라왔다. 불콰해질 정도로 마셨지만 취재를 위해 이곳에 왔다는 말은 끝내 꺼낼 수 없었다. 대신 나는 고기 몇 근과 케이크 한 상자를 그에게 안겼다. 손사래 치며 안 받겠다는 것을 억지로 아내 손에 쥐여 줬다.”

현대중공업 산재사망에 대한 치밀한 기록

이 책의 가장 큰 힘은 2014년 현대중공업그룹사 조선소에서 13명의 하청노동자들이 산재사망에 이른 과정을 세밀하게 재현해 내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중공업에서 또 산재사망 발생” 따위의 제목을 달아 건조하게 기사를 써 왔던 수많은 기자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저자는 “말이 좋아 위장취업이지 그곳에서 지낸 기간은 고작 2주, 그걸 가지고 글을 쓴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다”며 “그럼에도 이야기해 보고 싶었던 것은 어쭙잖은 내 예상과는 너무나 달랐던 그들의 실제 모습, 살아 있는 모습을 전하고 싶어서다”라고 책을 펴낸 이유를 밝히고 있다.

한편 이 책에는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가 수년에 걸쳐 찍은 국내 주요 조선소 현장과 노동자들의 사진이 함께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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