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마르크스는 역사 연구를 통해 경제를 중심으로 시민사회가 영위된다고 정확하게 파악했다. 여태껏 먹고사는 문제가 인간 사회의 중심문제가 아닌 적이 없었다.

마르크스는 시민사회를 토대로 해서 국가(법과 폭력 독점장치 등)와 이데올로기 기구 등 상부구조가 성립한다는 것을 밝혔다.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연구를 통해 자본주의에서는 자본 축적이 최고의 목적인데, 역설적이게도 자본이 축적될수록 한편에서는 소수에 의한 부의 독점이 심화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과잉인구(실업자)가 축적되고 빈곤층이 늘어나면서 인간성 타락도 증가해 사회를 해체시킨다는 것을 드러냈다. 이런 불합리한 반사회적 경향에 맞서 노동대중은 수탈자를 수탈하기 위한 거대한 사회변혁 투쟁에 떨쳐나서게 된다는 것이다.

세계 자본주의 현실은 마르크스의 이런 분석이 정확하게 들어맞는다는 것을 입증해 주고 있다. 자본주의가 세계화된 지금 세계 도처에서 노동자와 민중들이 못살겠다고 아우성치고 있다. 때로는 입 밖으로, 대개는 가슴속으로! 선진 자본주의 나라 노동자들은 그들대로, 후진 자본주의 나라 노동자들은 또 그들대로!

그 결과 자본주는 경제위기를 넘어 자본주의 경제를 에워싸고 지탱하는 시민사회가 붕괴할지 모르는 위험 지점에 이르고 있다. 경제위기를 넘어 사회위기가 진행 중인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한국 자본주의는 선진 자본주의의 모순과 후진 자본주의의 모순이 중첩돼 있는 모순투성이 자본주의인 까닭에 노동대중의 삶의 황폐화와 사회해체가 극도로 심화하고 있다. 불만과 분노를 넘어 '원한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시민사회의 뒷받침이 없으면 자본주의 경제는 지속될 수 없다. 시민사회에서 노동자들이 힘들여 자녀를 낳아 무보수 노동으로 자녀를 양육하지 않으면 노동력 재생산은 이뤄질 수 없다. 노동력 재생산이 이뤄지지 않으면 자본은 축적은커녕 단순재생산조차 이룰 수 없다. 그런데 자본은 노동자가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데 들어가는 서비스비용은 지불해 주지 않고 고작 물자비용만을 노동자에게 임금으로 지급한다. 자본은 시민사회에서 이뤄지는 노동자의 인간적 생활에 무상으로 기생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자본이 그런 출산과 양육에 필요한 물자비용조차 임금으로 제대로 지불하지 않으려 하면서 노동자들은 자녀 낳기를 포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노후에 대한 보장이 없거나 부족한 탓에 자녀를 낳아 키울 의욕은 더욱 감소한다. 결국 출산율이 저하하고,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고, 끝내는 인구가 절대적으로 줄어든다. 그러면 생산과 소비가 악순환을 그리면서 동반 감소한다. 자본주의적 축적에 조종이 울린다.

일본 자본주의는 이미 사회해체 위기에 직면한 지 오래다. 오죽하면 인구가 1억명 이하로 내려가지 않도록 방지하는 것을 국가 목표로 삼게 됐겠는가. 저출산과 인구감소가 심각한 것은 일본만이 아니다.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 전반에서 이런 현상은 공통적으로 발생한다. 지난 4월30일자 <이코노미스트>지는 미국이나 호주같이 이민자가 많은 나라들조차도 출산율이 지속적으로 떨어져 아기 울음소리가 그치고 있다고, 베이비-붐(boom)에서 베이비-버스트(bust)로 추세가 바뀌었다고 비명을 질렀다. <조선일보>도 5월30일자 1면 톱으로 이 문제를 다뤘다. 제목은 “인구 자연감소(사망자 > 신생아) 도미노 시작됐다”였다.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해체 위기의 양적인 측면이다. 이런 인구감소는 하나의 역사적 생산양식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유럽 봉건제는 심화한 봉건반동의 초과착취와 그로 인한 농민대중의 쇠약화 및 페스트 창궐로 인구가 급감하면서 붕괴로 치달았다. 결정타는 농민반란이었지만.

한편 질적인 측면에서도 사회적 위기는 심각하다. <중앙일보>는 5월30일자에 결혼관 변화를 1면 톱으로 보도했다. 일본과 한국을 동시에 조사했는데, 한국은 61.1%, 일본은 53.1%가 결혼에 부정적이었다. 여성은 더 부정적이어서 한국 여성의 72.1%, 일본 여성의 61.7%가 결혼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 혹은 "하지 않는 게 좋다"고 응답했다. 결혼 없이 가정을 꾸리기는 어려우므로 이처럼 결혼을 포기 또는 회피하는 추세가 계속되면 가장 기초적인 사회생활 단위인 가정이 지속되지 못할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일본을 뒤따라서 우리나라도 이미 1인 가구 비중이 매우 높고, 또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가장 기초적인 수준에서 사회가 해체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이른바 3포로 불리는 연애·결혼·출산 포기와 취업·내 집 포기(5포)에 이어 7포에서는 희망 포기와 인간관계 포기가 들어간다는데, 이렇게 인간관계 자체를 포기한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인간성이 상실되고 사회 전반이 해체된다는 뜻이다.

위기의 실태는 이런 것들만이 아니다. 노동빈민들의 경제적 빈곤에 사회적 고립이 중첩되면서 자살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말하자면 ‘생명포기’다. 앞에서 인용한 <이코노미스트>지에는 미국을 비롯한 부자 나라에서 최근 자살률이 급상승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자살률은 이들 나라의 두 배에 가깝다. 경제가 아무리 중요하지만 경제가 사회의 목적일 수는 없다. 그것은 가치관의 전도다. 경제는 어디까지나 사회가 재생산되게 하는 데 수단의 지위를 가질 따름이다. 이제 우리 모두가 경제주의자에서 벗어나 사회를 가치의 중심에 놓는 사회주의자가 돼야 할 때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