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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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보다 사람이 만든 열기가 뜨거웠다. 주말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 문화마당을 빨간색 모자와 머리띠, 손피켓이 점령(?)했다. 붉은색 바탕 위엔 “단결” “투쟁” “해고연봉제 저지”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노동자들은 땡볕보다 질기고 뜨겁게 구호와 함성을 질렀다.

양대 노총 공공부문노조 공동대책위원회가 지난 18일 ‘10만 공공·금융노동자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열었다. 섭씨 30도를 웃도는 날씨에 바람 한 점 없었다. 노동자들은 어깨를 겯고 땀을 섞으며 9월 총파업을 결의했다.

여의도공원 '점령'한 공공·금융노동자들

“지금 오시는 조합원께서는 잔디밭 위로 올라가 주시기 바랍니다.”

휴대용 마이크를 잡은 노조간부가 목이 터져라 외쳤다. 무대가 설치된 메인 광장은 행사가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사람들로 들어찼다.

행사장을 눈앞에 둔 여의도공원 교차로는 파란불에도 횡단보도를 건너기 힘들었다. 인파가 물밀듯이 쏟아졌다.

뒤늦게 행사장에 도착한 조합원들은 문화마당을 둘러싼 잔디밭에서 무대와 주변 스크린을 바라봤다. 공대위는 이날 조합원 10만여명이 참석한 것으로 집계했다.

남동발전노조 조합원 김성호(48)씨는 정부가 불법 논란을 자초하며 강행하는 성과연봉제와 에너지부문 민간시장 개방에 반대해 집회에 나섰다.

“불법 이사회로 성과연봉제가 시행되면 직원 개개인이 성과에만 연연하는 모습이 상상됩니다. 끔찍한 일이에요. 과거 투쟁으로 발전부문 민영화를 막아 낸 사례가 있어요. 그래서 이번에도 집회에 참석한 겁니다.”

기업은행 본점에서 일하는 김아무개(48)씨는 후배들이 걱정돼 나왔다고 했다. 김씨는 “7월 인사이동을 앞두고 강제로 성과연봉제 동의서를 쓴 직원들이 많다”며 “나이 든 사람들이야 몇 년 남지 않았지만 젊은 직원들은 해고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지부 조합원 박지현(가명·40)씨는 “지점별로 업무 특성이 다른 일반 직원들까지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 ▲ 금융노조 조합원들이 국회 방향으로 행진해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저성과자 1호는 박근혜 대통령"

공대위 소속 조직 깃발이 입장하는 것으로 이날 대회가 시작됐다. 대회사가 이어졌다. 김주영 공공노련 위원장은 “불법 성과연봉제 도입을 추진한 박근혜 정부는 제대로 된 정부가 아닌 범죄집단”이라며 “범죄자들을 반드시 감옥으로 보내자”고 외쳤다.

유지현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전체 노동자를 노예로 만들고 재벌들만의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의 본질”이라며 “공공성이 파괴된 세상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정부를 멈춰 세우자”고 호소했다.

이인상 공공연맹 위원장은 “조선·해운의 부실을 키운 낙하산 인사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가족을 위해 묵묵히 일한 조선노동자들만 길거리로 나앉게 됐다”며 “전문성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공공·금융 낙하산 인사들을 투쟁으로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대 노총 대표자들은 격려사를 했다.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은 “불법·탈법·공갈을 일삼은 정부, 불법과 탈법을 조장한 기재부·노동부 장관을 퇴출시켜야 한다”며 “한국노총은 공공·금융노동자들의 승리를 위해 끝까지 투쟁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임금피크제와 공무원연금 개악에 이어 성과연봉제와 공기업 민영화까지 막지 못하면 우리에게 지옥문이 열릴 것”이라며 “민주노총 80만 조합원들이 끝까지 투쟁해 막아 내겠다”고 밝혔다.

이날 대회에는 더불어민주당·정의당 소속 의원 8명이 함께했다.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성과연봉제 불법 사례를 조사한 당 진상조사단이 곧 후속조치에 들어갈 것”이라며 “내년 말 대선 국면을 맞아 공공성을 사수하고 대한민국 사회에 희망을 만들어 가기 위해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는 “저성과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 저성과자 1호는 박근혜 대통령”이라며 “대한민국 헌법과 가정의 행복,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힘차게 싸워 나가자”고 밝혔다.

▲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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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연봉제' 찢으니 '공공성 강화'

“만인을 위해 내가 싸울 때 나는 자유 자유.”

문화공연이 이어졌다. 가수 안치환씨가 <자유> <광야에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불렀다. 참가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깨 겯고 함께 노래했다.

로사 파바넬리 국제공공노련(PSI) 사무총장은 영상메시지를 통해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정부 폭압에 맞서는 한국 노동자들의 투쟁이 세계 공공노동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며 “국제공공노련은 향후 한국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에 모든 수단을 동원해 연대하겠다”고 밝혔다.

풍물굿패 ‘살판’은 무대에 올라 대고를 두드렸다. 심장 뛰는 소리를 연상케 하는 북소리를 배경으로 8명의 단위노조 대표자들이 투쟁사를 했다.

철도노조와 국민건강보험노조는 "다음달부터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예고했다. 성낙조 금융노조 KB국민은행지부 위원장은 “여기 모인 모두가 전사”라며 “끝까지 싸워 진짜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신명나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고 말했다.

행사는 상징의식으로 마무리됐다. 참가자들은 함성과 함께 무대 왼쪽에 걸린 대형현수막을 갈기갈기 찢었다. 현수막엔 ‘해고연봉제’ ‘강제퇴출’ ‘불법 이사회’ ‘기능조정 민명화’ 등의 단어가 쓰여 있었다.

찢겨진 현수막에 가려져 있던 또 다른 현수막이 등장했다. 어른의 손을 잡는 아이의 손을 배경으로 "공공성 강화" "좋은 일자리 확대" "안전하고 공정한 사회" 같은 문구가 드러났다.

이날 대회에 조합원 5만명을 동원한 금융노조는 국회의사당 방향으로 가두행진을 했다. 우리은행 신입사원 최수진(가명·27)씨는 “정부와 회사가 부당한 방법으로 성과연봉제를 강행하려 든다”며 “은행에 성과퇴출제가 도입된다면 고용불안으로 일에 집중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나머지 조직은 대회 장소에서 마무리 집회를 열었다. 공공운수노조는 이날 투쟁지침 1호를 발표했다. 노조는 7월 1차 파업 돌입과 성과연봉제 도입 성과급 전액 반납을 결의했다.

양우람 기자
윤자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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