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정 기자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서 방학 동안 단기 아르바이트를 한 고등학교 2학년 A씨는 임금 14만원을 받지 못하자 근로감독관을 찾았다. 서류 검토를 마친 근로감독관의 첫 마디는 "지금 14만원 때문에 진정을 넣겠다는 거냐"는 말이었다. '겨우 14만원'이라는 타박을 들은 A씨는 "근로감독관은 매번 수백만원 체불임금을 다뤄 14만원은 푼돈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나에겐 한 달 생활비"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대형마트 하청업체 파견직 아르바이트생이었던 B씨는 정규직 남자 캐셔에게 성희롱을 당하고, 임금체불 문제까지 겹치면서 일을 그만뒀다. 노동부에 진정을 넣고 근로감독이 나온 뒤 임금체불 문제는 해결됐지만 사내 성희롱에 대한 처벌은 없었다. B씨가 문제를 제기하자 근로감독관은 "목격자도 없고, 회사도 돈을 줬으니 더 이상 문제제기하지 말라"고 말했다.

◇부족한 근로감독관, 일은 산더미=집단적 노사관계법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저임금 미조직 노동자들이 임금체불이나 최저임금 위반 문제에 직면했을 때 마지막 보루로 찾는 곳이 고용노동부 지방고용노동청이다. 하지만 근로감독관들이 사건 처리를 소홀히 한다는 지적이 많다.

33개 노동·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최저임금연대가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최저임금준수·임금체불 근절을 위한 제도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에서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근로감독관의 일처리 태도가 구조적인 요인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김민수 위원장은 "한국에서 최저임금이 준수되지 않은 원인으로는 당국의 부실행정이 최우선으로 꼽히고 있다"며 "턱없이 적은 근로감독관수와 핵심과제를 빗겨난 업무설정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에 따르면 2014년 9월 기준 근로감독관은 1천485명이다. 정원(1천689명)의 87.9%다. 공무원 중에서도 '비선호 보직'이라 충원율이 정원의 80%대에 머물고 있다. 근로감독관 1인당 노동자 1만5천272명을 담당해야 한다. 김 위원장은 "근로감독관 스스로도 현장감독을 나갈 사람들이 없다고 토로하더라"며 "노동관계법령 집행을 우선업무로 처리해야 할 근로감독관들이 위에서 내리꽂는 일 때문에 본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근로감독관 전문성 문제도 제기됐다. 그는 "근로감독관들이 직무에 투입되기 전에 받는 연수기간은 4주밖에 안 된다"며 "공인노무사 시험도 2.5~3년간 공부해야 붙을 수 있는데 2주간 OJT(현장교육)까지 합해 겨우 6주 동안 배운 근로감독관이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최저임금법 위반 처벌 강화해야='솜방망이 처벌'이 최저임금법을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원인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노동부의 '2016년 사업장 근로감독 종합 시행계획'을 보면 2015년 한 해 최저임금법 위반건수는 1천502건이다. 이 중 사법처리된 사안은 19건(1.3%)에 불과하다. 1%만 사법처리되고 99%는 시정조치로 마무리됐다는 뜻이다.

현행 최저임금법은 최저임금을 주지 않으면(6조 위반)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최저임금을 알리지 않으면(11조 위반)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사업주가 최저임금 미지급 부분을 해결하면 형사처벌로 받지 않는다.

최재혁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팀장은 "솜방망이 처벌마저도 후퇴할 움직임을 보인다"며 "노동부가 내놓은 20대 국회 입법계획을 보니 최저임금법 6조 위반 벌칙규정을 형사처벌에서 과태료 부과로 바꾸려 한다"고 지적했다. 최 팀장은 "노동부는 제재의 실효성을 높이겠다고 하는데, 과태료를 부과했을 때 사업주들이 최저임금법을 제대로 지키는지에 대한 증거자료부터 가져와야 한다"고 꼬집었다.

송주현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현재 노동부와 국토교통부가 운영하고 있는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이나 명예과적단속원 제도를 차용한 '최저임금위반 명예감독관'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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