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진전기노조

김효준(36)씨는 첫 직장이었던 일진전기㈜에서 잘렸다. 일진전기는 재계 순위 50위권인 일진그룹의 주력 계열사다. 김씨는 스물여섯 나이에 입사해 직장생활을 하며 가정을 꾸렸다. 평탄한 일상만 펼쳐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에게 허락된 행복은 길지 않았다. 입사 8년 만에 정리해고자 신세가 됐다. 이달로 18개월째 해고 상태다.

“해고되기 전에는 회사에서 나오는 월급만으로도 외벌이가 가능했어요. 상여금이 나오는 달은 월 450만원, 보너스가 없는 달은 월 300만원 정도를 받았으니까요. 넉넉한 액수는 아니어도, 사택에서 생활한 덕에 주거비가 거의 들지 않았거든요. 지금은…. 완전히 도시 하층민으로 전락했죠. 도시가스 배관일을 배우고 있는데, 맞벌이를 해도 월 200만원 벌기가 힘들어요. 다달이 월세만 50만원씩 나가고.”

흑자회사의 정리해고?

해고에 이르는 과정은 짧았다.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회사 관리자는 “희망퇴직원을 제출하면 일할 만한 다른 회사를 알아봐 주겠다” 혹은 “일단 나가서 기다리고 있으면 뒤를 봐주겠다”며 퇴사를 종용했다.

일진전기는 중국에서 생산되는 광케이블과 비교해 가격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2014년 12월 반월공장 통신사업부 폐지와 정리해고를 추진했다. 그해 회사는 351억9천만원의 영업이익과 176억1천만원의 순이익을 냈다. 다만 정리해고가 이뤄진 통신사업부는 31억3천만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통신사업부 소속 직원 30여명이 '희망'과 상관없이 희망퇴직을 했다. 13명이 남았다. 평소 관리자와 친분이 있거나 인맥으로 연결된 7명은 다른 부서로 전환배치됐다. 전환배치된 직원 중에는 입사 1년도 안 된 신입사원도 있었다.

이제 6명이 남았다. 이들은 공교롭게도 노동조합 간부 출신이거나 열성 조합원이었다. 회사는 그해 12월29일 “취업규칙 제31조1항에 의거 사업부 폐지에 따라 경영상 해고한다”고 통보했다. 김씨를 비롯한 해고자 6명은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냈다.

초심과 재심 판정은 같았다. 회사 전체가 흑자를 기록하더라도 특정 사업부문에서 적자가 발생했다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인정된다는 내용이다. 특정 사업 분야만을 대상으로 하는 ‘쪼개기 정리해고’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노동위원회는 다만 회사가 정리해고 절차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은 점을 이유로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회사가 정리해고를 추진한 그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해고회피 노력 △해고 대상자의 공정한 선정 △노조 또는 근로자대표와의 협의 등 절차를 지키지 않은 점이 문제라는 뜻이다. 노동위는 노조간부와 조합원만 해고 대상에 포함시킨 것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해고자들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장래에 다가올 경영상 위기"라는 족쇄

법원의 판단은 어떨까. 최근 서울행정법원 제12부(재판장 장순욱 판사)가 일진전기 정리해고 사건에 대한 1심 판결을 내놓았다. 1심 판결도 노동위 판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리해고를 위한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은 인정되나, 정리해고 요건을 갖추지 못해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는 결론이 재확인됐다.

일진전기 사건과 관련해 노동위와 법원은 정리해고 사건에 대한 기존 법리를 답습했다. 근로기준법은 가장 중요한 정리해고 요건으로 ‘긴박한 경영상 필요’를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법원은 해당 법조문을 문언 그대로 해석하지 않는다. 대법원은 1990년대까지 ‘긴박함’의 정도에 대해 “회사가 파산할 정도의 어려움”(도산회피설)으로 좁게 해석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장래에 다가올 경영상 위기”도 정리해고 사유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기타 제조업체 콜트·콜텍 정리해고 사건에 대한 2012년 대법원 판결이 대표적이다. 세계 시장점유율이 30%에 달했던 콜트·콜텍은 국내공장 경영상태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2007년 4월 인천 콜트공장에 이어 그해 7월 대전 콜텍공장을 차례로 폐업했다. 회사 전체적으로는 안정적인 수익이 발생하는 구조였는데도 두 공장 노동자들은 대량 해고됐다.

이 중 콜텍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기업 전체로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하더라도 일부 사업부문의 경영악화가 기업 전체의 경영악화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면 해당 사업부문의 잉여인력을 감축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보아 불합리하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정리해고 요건인 긴박한 경영상 필요에 ‘장래에 올 수도 있는 위기’까지 포함된다”고 본 대법원 판결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로 계승되면서 와해되지 않는 완전체를 이뤘다. 일진전기 판결은 그 연장선에 있다.

실제 일진전기 사건에서도 재판부는 “원고(회사)가 통신사업부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 원고 회사 전체의 경영상황까지 악화될 상당한 개연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원고에게 통신사업부를 축소 내지 폐지할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정리해고 vs 통상해고
전가의 보도 '사회통념상 합리성'


이렇게 볼 때 일진전기 정리해고 사건에 대한 법원 판결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런데 1심 소송 과정에서 새로운 쟁점이 불거졌다. 회사측은 난데없이 “이 사건 해고는 정리해고가 아니라 통상해고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회사측 법률 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율촌은 앞서 언급한 콜텍 정리해고 사건의 대법원 판결을 끌어낸 당사자다. 이번 사건에서 율촌 소속 변호사들은 “원고(회사)가 ‘통상해고’라는 법률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 이 사건 해고가 ‘사업의 폐지에 따른 해고’로서 보통의 정리해고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율촌 변호사들은 “사업의 유지·존속을 전제로 하는 일반적인 정리해고와 달리 사업 자체를 폐업하는 것은 기업 경영활동의 자유에 속하는 것”이라며 “이 같은 결정이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결여한 판단이 아닌 한 존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대체 통상해고가 뭐길래 사용자측이 이같이 주장하고 나선 것일까.

해고의 종류는 통상해고(일반해고)와 징계해고·경영상 해고(정리해고)로 구분된다. 이 중 통상해고와 관련해 근로기준법 제23조1항은 “사용자는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를 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달리 말해 통상해고는 "정당한 이유가 있는 해고"라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정당한 이유’는 일반적으로 "사회통념상 근로계약관계를 존속하기 곤란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로 해석된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가 2011년 내놓은 ‘노동위원회의 통상해고 유형별 정당성 판단 사례연구’에 따르면 통상해고의 유형은 △근로자의 일신상 사유(건강악화·범죄 등)로 인한 통상해고 △근로자의 행태상 사유(업무명령 위반·근무태만 등)로 인한 통상해고 △기업의 사업상 이유(폐업 등)로 인한 통상해고로 나뉜다.

유성규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참터)는 “통상해고는 누가 보더라도 더 이상 근로계약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 예컨대 노동자가 사망하거나 회사가 사망(폐업)해 굳이 절차나 사유를 따질 필요가 없을 때 제한적으로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위장된 통상해고’ 분쟁 증가하나

일진전기의 경우 통신사업부를 제외한 나머지 사업 분야에서 큰 어려움이 없는데도 통상해고를 주장하고 나섰다는 데 문제가 있다. 실제로는 정리해고를 해 놓고 통상해고를 했다고 우기는 모양새다. 사측이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징계해고나 경영상 해고의 경우 엄격한 요건과 절차를 준수해야 하지만 통상해고는 특별한 절차규정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일진전기 회사측 변호사들도 이 점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일반적인 정리해고의 경우 해고회피 노력의 일환으로 작업방식 합리화, 신규채용 금지, 임시휴직 등 조치를 취해야 하지만 이 사건 사용자에게 이 같은 해고회피 노력을 기대하기는 불가능하다”며 “독립 사업부 자체를 폐업하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실행 가능한 해고회피 노력으로 통신사업부 정상화 노력과 희망퇴직을 실시하게 된 것”이라고 강변했다. 정리해고 요건을 피하는 우회로로 통상해고를 택한 셈이다.

결론적으로 이 사건 재판부는 회사측의 통상해고 주장을 인용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원고 회사 통신사업부는 존속하는 다른 사업부와 독립한 별개의 사업체로 보기 어렵다”며 “원고가 통신사업부를 폐지한 것은 사업축소에 해당할 뿐 사업체 전부를 폐업한 것과 같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근기법상 통상해고의 개념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회사측 귀책사유인 ‘사업상 이유에 의한 통상해고’를 둘러싼 노동위와 법원의 판단 또한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기술 발전으로 제품 생산주기가 빨라지고, 중국 등 해외업체와의 가격경쟁력에 밀려 국내 사업장을 폐업하거나 특정 사업을 중단하는 기업이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정리해고냐 통상해고냐를 둘러싼 분쟁은 갈수록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성규 노무사는 “만약 법원이 정리해고를 통상해고라고 주장하는 경영자들의 요구를 수용할 경우 지금보다 정리해고가 남발될 가능성이 커진다”며 “하나의 사업부서를 만들거나 없애는 권한은 사용자의 인사재량에 속하는데, 사용자가 정리하고자 하는 인원을 일정 부서나 사업부문에 배치한 뒤 해당 부서와 사업을 폐지하는 형태로 해고가 남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우려가 상상에 그치지 않고 현실화할 여지도 크다. 정부가 ‘저성과자 일반해고’의 기준을 명확하게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2대 행정지침을 강행했던 것처럼, 제2의 통상해고 지침을 들고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용자들이 통상해고 주장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근기법상 정리해고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법원이 정리해고와 관련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장래에 다가올 경영상 위기까지 확대해 해석하다 보니, 급기야 사용자가 정리해고를 통상해고라고 우기는 황당한 행태를 보이는 것”이라며 “긴박한 경영상 필요를 ‘현존하는 경영 악화’로 한정해 해석하도록 근기법 조항을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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