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해운·조선업종의 구조조정을 유도하기 위해 12조원의 자금을 확보하기로 했다. 정부가 수출입은행에 1조원 규모로 현물출자 하고, 한국은행과 기업은행은 11조원 한도의 국책은행자본확충펀드를 조성하는 방식이다. 규제를 피하기 위해 한국은행은 기업은행에 10조원을 대출하고, 기업은행이 펀드에 재대출하는 방식을 취했다. 기업은 한국자산관리공사에 후순위대출로 1조원을 보탠다. 한국은행 발권력을 동원해 기업 구조조정을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렇게 찍어 낸 돈을 무기로 조선사들에게 구조조정을 압박할 방침이다. 이미 대형 조선사들은 갖가지 자구책을 내놓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자회사를 모두 매각하고, 현대중공업은 도크 가동중단과 인력감축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중공업도 생산설비와 인력감축을 추진한다.

정부 대책에 사실상 중소조선소는 빠져 있다. 성동조선·대선조선·SPP조선 등 중소조선사들은 채권단이 추가 자금지원을 하지 않기로 하면서 자력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대형조선소는 살리고 중소조선소는 배제하는 정부의 구조조정 대책이 실행되면 조선업 생태가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정부는 지난 2009년 '조선산업의 구조조정과 경쟁력 강화방안'과 같은 대책을 통해 조선업 호황기일 때 난립하던 소형조선소들을 대거 정리했다. 노동계는 이번 구조조정 과정을 지나면 이른바 빅3로 불리는 대형조선소 중심으로 조선업이 정리될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선업을 지속적으로 축소시키는 대책 이면에는 조선업을 사양산업으로 보는 정부 시각이 있다. 정부가 지난 8일 발표한 산업·기업 구조조정 추진계획에는 조선업과 병행된 조선 기자재 업체의 업종전환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감축(해고)이 예상되는 조선소 협력업체 숙련자들은 설비투자 확대 국가인 일본·인도·중동으로 취업하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기자재 업체를 죽이고, 조선 기술인력 국외 유출을 묵인하는 수준을 넘어 장려하겠다는 셈이다.

박종식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은 "조선산업의 대외적 위기가 과장되고 있다고 분석해 왔는데 이제 정부가 설비투자를 축소하고 인력 유출까지 묵인할 경우 진짜 조선산업 위기가 닥칠 수 있다"며 "조선산업 발전과 수주절벽시기 선박금융 지원과 같은 대책을 내놓지 않은 채 포기부터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속노조에 따르면 조선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20만명에 달한다. 조선업 포기로 고용위기에 내몰리고 있는 이들에 대한 대책이 있는지 정부에게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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