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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적 일자리와 그 정상성
▲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보통의 사람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가족, 그리고 그 가족을 꾸려 갈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제공해 주는 일자리가 아닐까. 혹 누군가에게 일자리가 단순한 가족부양의 의미를 넘어 자아실현과 사회공헌의 기회, 그리고 부의 축적 계기까지 돼 준다면 그는 남다르게 큰 행운을 누리는 것이리라.

그 정도까지 아니더라도 요사이는 아침에 일어나 출근할 곳이 있고, 낮 동안 그곳에서 내게 요구되는 능력을 발휘하면서 시간을 보낸 후 퇴근해 가족과 쉼을 갖는 삶이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만 있다면 하고 바라는 이들이 많다. 우리가 기본이라고 생각한 그 무엇이 특별한 감사의 소재가 된 것이다. 무언가 비정상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자리에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결합시키는 일은 일자리 자체의 제공 못지않게 중요하다. 노예나 농노에게도 일자리는 있었고, 노동 3권이 부정된 자본주의 초기단계 노동자들에게도 일자리는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일자리는 그야말로 ‘죽지 못해 하는 노동’이 지속되는, 사회가 강요하는, 구조적으로 부당한 '노역'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강제노동이 아니라 자발적 노동이어야 한다.

문제는 자발적인 노동에 대한 대가, 그러한 노동이 수행되는 조건에 대해 사회가 어느 정도로 규율을 하느냐 하는 것이다. 구직자와 그에게 제공되는 일자리는 일종의 함수관계에 있다. 일자리 공급자들에 대한 사회적 규제장치의 최소치를 어떻게 정하느냐 하는 문제는 그렇게 제공되는 일자리를 취하는 국민이 어떠한 일상을 보내고 어떠한 꿈을 꾸며 어떠한 미래를 건설해 가느냐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수준이 높은 나라에서는 일자리에 대한 규제도 강하고 세심하다. 심지어 누군가 일자리를 취하려는 이가 일자리에 대한 접근이 잘 이뤄지지 않을 경우 그들이 겪는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해 별도의 수준 높은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한다. 교육훈련 기회도 마련해 준다. 행여 부득이하게 일자리를 잃는 상황이 돼도 다음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버틸 수 있는 생존 기반도 제공받는다. 민주주의가 그에게 생존과 생활의 기회를 열도록 채널링(channeling)돼 있는 것이다.

그뿐인가. 그들은 일터에서 함부로 취급받지 않고 온당한 대우를 받도록 보호된다. 이 일 저 일 고용주 입맛에 맞춰 아무렇게나 일을 수행하지 않고, 자신의 정해진 직무를 수행하고, 그 과정에서 최대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장려받는다. 만일 자신의 직무수행주권이 침해받거나 부당한 대우가 행해질 경우 그들은 개인적·집단적으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고 시정이 이뤄지도록 사용자와 국가에게 요구할 수 있다. 생활과 미래를 위해 저축할 수 있을 정도의 적정한 수준의 대가를 받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오늘날 비정규직과 하청노동이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는 정규직 일자리에 대해 일부 비난과 질시의 시선이 던져지고 있다. 평등이라고 하는 민주사회의 또 다른 중요한 원리가 누군가의 잘못에 의해 일그러졌기 때문이리라. 문제는 그 비난을 정규직 노조에게만 가하는 것이다. 정규직 노조가 굼뜨고 소극적인 면도 없지 않지만 그러한 문제를 고스란히 그들에게만 화살을 돌린다고 풀리는 것은 아니리라.

더 큰 문제는 그렇게 정규직 노조의 보호를 받는, 말하자면 민주주의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짙은 일자리 상황 자체를 비정상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는 어불성설이다. 지금의 정규직이 양보를 해서 일자리 전반에 아직 더 체화해 가야 할 민주주의를 포기하라는 것은 궁극의 답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그나마 양질의 일자리로 간주되는 영역에 결부돼 있는 민주주의적 가치들을 그렇지 않은 일자리까지 확산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문제는 불평등이지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리고 민주주의라면 불평등을 묵과해서는 안 된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mjnpark@kli.re.kr)

박명준  mjnpark@kl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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