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과세계

대형마트에서 16년째 근무 중인 권혜선(55)씨. 하루 8시간 근무하고 그가 받는 월급은 세금을 제하고 120만원가량이다. 시급으로 환산하면 딱 6천30원 수준이다. 협력업체 사원으로 시작해 무기계약직으로 일하는 권씨는 3년 전 남편과 사별한 이후 갑작스레 가장이 됐다. 그는 “전에는 최저임금에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최저임금이 나와 아들, 딸의 목숨줄이라는 걸 체감했다”고 밝혔다.

동서울우편집중국에서 우편물 분류 작업을 하는 5년차 집배노동자 이중원(52)씨는 연장근무를 밥먹듯 한다. 근무시간은 저녁 9시부터 이튿날 오전 6시까지지만 연장근무를 할 때는 14시간을 일한다. 그렇게 일해도 월 수령액은 20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이씨가 "야간노동을 하며 잔업·특근을 해야 겨우 세 아이를 부양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유다. 이씨는 “그동안 살면서 돈 때문에 포기했던 일이 너무 많다”며 “시급이 1만원이 된다면 야간·연장근무에 목매지 않고도 하나하나 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저임금은 아들딸의 목숨줄”

내년 최저임금 결정을 앞두고 최저임금으로 생계를 꾸려 가는 노동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20대부터 70대까지 연령은 물론 우편집배원·마트노동자·학교 야간당직노동자·청소노동자·아르바이트 노동자까지 하는 일도 다양했다. 민주노총이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개최한 '최저임금 1만원, 돈이 아닌 인권이다' 집담회에 참석한 노동자들이다. 최저임금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으로도 사람 도리를 하면서 살 수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보습학원에서 강사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조은별(21)씨는 월급 70만원으로 생활하고 있다. 월세와 공과금·교통비·통신비·식료품 구입 같은 필수 생계비용을 제하면 그가 쓸 수 있는 돈은 거의 없다. 조씨는 “친구들과 차 한 잔 마시는 비용도 부담이 될 때가 많다”며 “현재 최저임금으로는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품위는 남의 나라 얘기”라고 하소연했다.

이날 증언에 나선 최저임금 당사자들은 경조사비나 문화생활은 꿈도 꾸지 못한다고 말했다. 부모나 자녀 용돈은커녕 대출금 상환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주변 사람들도 돌아보고 사람답게 살려면 최소한 최저임금이 1만원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년유니온이 이날 발표한 '2016 청년층 최저임금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15~39세 청년 1천40명 중 92%(959명)가 현재의 최저임금이 적정하지 않다고 답했다. 본인이나 주변에서 최저임금, 혹은 그에 준하는 임금(월급 150만원 이하)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는 응답이 78%(811명)나 됐다.

"결정기준 바꾸자"

노동계는 최저임금 결정기준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저임금법 제4조와 제23조에 따라 1987년 처음 시작된 ‘미혼 단신근로자 생계비 분석’은 현재까지 최저임금 결정기준으로 활용되고 있다. 노동계는 최소 2인 가구 생계비를 결정기준에 반영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권혜선씨같이 최저임금으로 가족을 부양하며 생활하는 가장이 많다는 것이다.

오민규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전략실장은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소상공인과 중소 영세업체가 망한다고 주장하는데, 오히려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민간소비가 활성화돼 지역경제에 도움이 된다”며 “최저임금 1만원 실현이 곧 경제민주화”라고 주장했다.

재계는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적용과 최저임금 산입 범위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일부 대학생들은 최저임금위원회가 열리는 9일 서울 마포구 한국경총 앞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청년 직접행동’을 벌인다고 예고했다. 이들은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적용은 사실상 최저임금을 인하하겠다는 것으로 최저임금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한편 최저임금위 전원회의는 이달 2일부터 매주 목요일 세종시에서 열리고 있다. 최저임금법에 따르면 최저임금위는 28일까지 내년 최저임금을 심의·의결해 고용노동부에 제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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