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태우 기자
▲ 서울의료원은 교대 근무자가 환자를 돌볼 수 있도록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는 방식으로 인수인계를 하고 있다. 구태우 기자
▲ 병동 복도에 간이 데스크(서브 스테이션)을 설치해 간호사가 병실 상황을 24시간 볼 수 있도록 모니터링하고 있다. 간호사는 볼록거울에 비친 환자 모습을 살펴 낙상이 우려되는 환자가 없는 지 살핀다. 구태우 기자

“이젠 환자를 보호자나 간병인에게 맡기는 게 오히려 불안해요. 24시간 간호사가 환자를 돌보거든요. 보호자와 간병인이 미처 몰랐던 증상을 발견해 환자 상태가 호전되기도 합니다. 간호사가 해야 하는 일인데 그간 어떻게 보호자나 간병인에게 맡겼나 싶을 정도예요.”

서울의료원 수간호사인 김남희 파트장은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시행 이후 변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입원 환자 보호자가 상주하지 않고 간호인력이 환자를 돌보는 제도를 말한다. 환자 식사 지원이나 대소변 관리, 목욕을 간호사·간호조무사 같은 도우미로 불리는 간병지원인력이 24시간 도맡는다는 얘기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서울의료원은 623개의 병상을 보유한 종합병원이다. 서울의료원에서는 보호자가 환자 옆에 마련된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자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앞으로 6인실 병실 보호자 취침을 위한 간이침대도 한두 개를 제외하고 병실에서 사라진다.

서울의료원은 1년여의 준비 과정을 거쳐 간호·간병통합서비스(옛 보호자 없는 병원·환자안심병원)를 2013년부터 시행했다. 호스피스·정신병동을 제외한 일반병동(400병상)에서 보호자·간병인이 아닌 간호인력이 환자를 24시간 보살핀다. 서울의료원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선정한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선도병원 일곱 곳 중 한 곳이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3일 보건의료노조와 함께 서울시 중랑구에 위치한 서울의료원을 찾아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시행 3년이 병원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살펴봤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의 전신은 보호자 없는 병원이다. 노동·시민단체가 2009년부터 요구한 제도다. 2011년부터 경기도를 비롯한 일부 지자체가 보호자 없는 병원 시범사업을 했다.

지난해 12월29일 의료법이 개정되면서 올해 9월30일부터 전면 시행된다. 개정안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제공·확대와 서비스 제공인력의 원활한 수급, 근무환경 개선을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공공의료기관은 1개 병동 이상에서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시행해야 한다. 환자들은 기존 입원료에서 20% 가량을 더 부담하면 서비스 시행 병원에 입원할 수 있다.

병실에서 사라지는 간이침대

서울의료원 92병동 데스크에서 환자 상태를 모니터링하던 7년차 이보람 간호사가 황급하게 병실로 뛰어갔다. 병상에 누워 있던 70대 환자가 호출한 모양이다. 고령의 환자는 너스레를 떨며 이것저것 물었고, 이 간호사는 웃으며 대답했다. 간호인력이 하루 종일 환자를 돌보기 때문에 보호자가 병원에 머물 이유가 없다. 보호자가 하는 일은 환자 입·퇴원 때 관련 서류에 서명하고, 간호에 필요한 물품을 사 오는 게 전부다.

간호사들은 복도 곳곳에 마련된 간이데스크(서브 스테이션)에서 환자 상태를 실시간 모니터링한다. 복도에 설치된 볼록거울이 병실 곳곳을 비추고 있어 환자가 침대에서 일어나는 모습까지 확인할 수 있다. 환자는 간호인력의 도움이 필요할 때 손목에 연결된 콜벨을 누른다. 간호인력들은 휴대한 무전기로 업무를 공조한다. 병동마다 주파수가 다르다.

서울의료원 의료진은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시행에 따라 환자 안전사고를 줄이고,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현장 아이디어를 수렴해 반영하고 있다. 주로 환자 낙상사고를 예방하는 제안이 많다. 보다 효율적인 돌봄방안도 제안에 포함된다.

서울의료원은 이를 활용해 '데이(낮)-이브닝(저녁)-나이트(밤샘)' 근무조가 교대할 때마다 환자 상태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전자인수인계 시스템을 도입했다. 시스템에 접속하면 간호메모난에 환자 건강기록과 보호자 심리상태까지 적을 수 있다. 환자 머리맡에는 알림판을 만들어 “간호시 엉덩이쪽 발진 발라 주세요”라거나 “금식. 물도 드시면 안 돼요” 같은 내용을 써 놓는다.

간호인력 두 배 늘어

서울의료원은 노동계가 모델로 삼을 정도로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제대로 운영되는 곳이다. 비결은 인력이다. 볼록거울이나 무전기, 전자인수인계 시스템은 업무효율성을 높이는 도구일 뿐이다. 서비스 시행에 맞춰 서울의료원은 인력을 꾸준하게 충원했다.

예컨대 서울의료원 92병동 병상수는 50개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시행 이전에는 18명의 간호사가 3교대로 근무했다. 지금은 31명의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6명, 병동 도우미 5명이 92병동에서 일한다. 보호자나 간병인이 했던 일을 간호인력이 전담하면 노동강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를 간호인력 충원으로 보완한 것이다.

다른 병동도 비슷하다. 서비스 시행 전 서울의료원 간호사수는 122명이었다. 지금은 110명이 늘어나 232명이 근무하고 있다. 간호조무사 48명과 병동 도우미 32명도 추가로 채용됐다. 50병상 기준 근무조별로 3명이던 간호사를 데이(7명)-이브닝(6명)-나이트(5명)로 늘렸다. 1인당 환자수는 데이 근무조 7.1명, 이브닝 근무조 8.3명, 나이트 근무조 10명이 됐다. 신입 간호사가 증가한 만큼 수간호사 외에도 주임간호사·선임간호사를 배치해 직무교육을 진행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만족도 또한 높게 나타난다. 인력충원을 바탕으로 업무환경을 개선하고, 업무동선을 효율화하는 방식으로 서비스를 운영하기 때문이다. 이인덕 서울의료원 간호부장은 “간호사들의 불만 사항은 노동강도보다 (보호자나 환자가) 필요한 물품을 제때 가져오지 않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 부장은 “보호자가 없는 환경을 환자와 간호사가 선호하다 보니 남아 있으려는 면회객을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신입 간호사가 병원에 들어오면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듯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역시 격동의 시기를 겪어야 비로소 안정화된다”고 조언했다.

이보람 간호사는 “기저귀 교체처럼 전에 안 하던 일을 하게 돼 몸이 힘든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보호자가 간호사에게 배워서 했던 일을 간호사가 직접 하는데, 환자 상태가 호전되는 것을 보면 자긍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전보다 능동적으로 환자를 돌볼 수 있어 좋다"며 "간호인력을 많이 늘린 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운영한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운영병원은 '좌충우돌 중'
간호인력 절대 부족, 땜질 식 운영도 … 서울의료원 수준 되려면 정부 지원 필요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비교적 잘 운영되는 서울의료원과 다른 병원의 격차는 크다. 현재 서비스를 시행하는 지정병원은 전국 152곳이다. 대다수 병원은 1개 이상 병동을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1개 병동을 시범운영하는 ㅇ대 의대 산본병원은 대다수 간호·간병통합서비스 기관의 현실을 보여 준다. 이 병원은 진료과 구별 없이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운영하는 탓에 간호인력들이 업무 과부하를 호소하는 실정이다. 간호인력을 여러 곳에서 차출해 배치하는 식으로 운영하면 담당과와 상관없는 업무를 배정받는 간호사가 나오기 마련이다. 익숙지 않은 환경에 처한 간호사는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산본병원 간호사 B씨는 “병동 한 곳에서 15개 진료과 환자를 받다 보니 간호사들이 혼란스러워했다”며 “통합서비스 시행 초기에 환자들의 요구가 적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고,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직종 간 갈등이 불거지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일산 ㅂ병원 관계자는 "입원환자와 퇴원환자가 많은 날 간호·간병통합서비스에 대해 설명할 직원이 부족해 병원이 아수라장이 된 적이 있었다"며 "간호사들이 모든 상황을 하나하나 설명해야 했다"고 증언했다. 이 관계자는 “병실 침대 시트를 가는 것을 비롯해 이것저것 잡일이 많다”며 “직원들이 자존감이 떨어진다며 '호텔리어 같다'는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이달 3일 보건의료노조가 서울의료원 대강당에서 주최한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현장 사례 보고’에서 나온 증언을 종합하면 간호사들은 △현실적인 수준의 인력충원 △시범병동 진료과 혼재 △신입 간호사 교육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간 직종 갈등 △보호자의 병원 상주 △보호자의 불필요한 민원을 어려움으로 꼽았다.

올해 9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 시행을 앞두고 있는 만큼 정부 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나영명 노조 정책실장은 “통합서비스가 제대로 운영되려면 비용을 병원에 떠넘겨서는 안 된다”며 “시설·인력·장비 기준을 마련하고 충족시킬 수 있도록 정부가 전폭적으로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나 실장은 “진료과별 특수성을 감안해 세부 인력기준을 만들고 전체 병동으로 보호자 없는 병원을 확대한다면 우리나라 의료체계를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다”며 “흑자운영을 하고 있는 건강보험공단 예산을 활용하고, 재정 누수를 바로잡으면 보호자 없는 병원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의료원 수간호사인 김남희 파트장은 “환자 식사나 대소변 관리는 환자 보호자가 당연히 해야 하는 보조적인 일이 아니다”며 “환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세심하게 살피면서 환자 몸 상태를 알게 되는 위생간호의 영역인 만큼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환자 건강에도 좋은 제도”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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