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라는 이름의 기만과 폭력, 간접고용 현장실습 실태보고.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가 2005년 발표한 보고서 제목이다. 청소년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고 10~12시간의 중노동에 시달렸다. 중소·영세 업체가 대부분인지라 작업환경은 열악했다. 산업재해 위험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그 후 10년여가 지났다. 문제는 외려 악화됐다. 현장실습을 하던 학생 노동자들의 죽음이 이어졌다. 자성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해법을 찾는 이들의 기고를 다섯 차례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최근 청년실업 해결책이라는 이름으로 특성화고 학생들의 취업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 단위 학교에서는 일정 정도 취업률이 돼야 각종 사업(중소기업청 맞춤형사업, 특성화고 취업기능강화사업 등)을 신청할 수 있고, 그런 사업에 따른 예산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기업체의 조기취업 요구를 무시하기 어렵다. 원칙적으로 2학기에 현장실습을 실시하도록 돼 있지만 올해도 5~6월부터 실습을 요구하는 회사들이 나타나고 있다.

열악한 작업환경이나 법적 한도를 초과해 연장근무와 휴일근무를 시키는 업체라는 것을 알면서도 현장실습을 내보내는 사례들이 발생한다. 특히 현장실습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영세업체·3D 업체에서 최저임금을 받는 단순 저임금 인력으로 충원된다. 고용형태는 하청업체 비정규직이다. 위험한 작업환경과 장시간 노동에 종사하면서 산업재해에 직접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

보통 특성화고 졸업생들의 취업률은 매년 12월께 정점에 다다른 후 지속적으로 낮아진다. 학생들이 재학 중일 때에는 학교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하지만, 졸업과 동시에 관리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이탈자가 발생한다. 따라서 학생들이 실제로 취업에 성공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 1년 동안 취업을 유지하는 비율은 더욱 낮아진다.

허약한 법적 토대

현장실습에 참여하는 학생들을 규율하는 법령으로는 초·중등교육법과 직업교육훈련 촉진법이 있다. 초·중등교육법은 수업일수를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3분의 2 이상 출석하지 않은 학생은 유급 대상이 된다. 직업교육훈련 촉진법에 따르면 직업교육훈련생은 현장실습을 받아야 한다.

현장실습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미비하다 보니 각자 입장에 따라 현장실습 기간이나 실습 내용에 대한 주장이 다르게 나타난다. 이로 인해 특성화고 학생들은 정상적으로 3학년 2학기 교육과정을 이수하지 않고 현장실습이라는 이름으로 학습권을 포기당하고 있다.

3학년 2학기에 현장실습에 나가는 학생들은 고등학교 6개 학기 중에서 한 학기 수업을 받지 못하게 된다. 명목상으로는 실습이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실제 제품생산 과정에 참여하기 때문에 전혀 교육적이지 않다. 학교에 남아 있는 학생들도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실제적인 수업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한 학기 교육이 부실해지고 결과적으로 특성화고 졸업생들의 기술 수준이 저하된다. 결국 현장실습은 직무능력 저하와 직업교육 파행의 근본적 원인이 된다.

전교조 실업위원회는 여러 차례 이러한 문제를 시정하라고 요구했다. 그럼에도 근본적 변화 없이 오랜 기간 현장실습 문제가 잇따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업은 저임금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학생은 탈학교와 동시에 일정한 급여를 받을 수 있으며, 학교는 시설과 예산을 절감하고, 교사는 취업 관련 업무가 늘지만 대신 수업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대안은 무엇인가

우리나라의 산업화 과정은 한마디로 짧은 기간의 압축 성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산업화 과정에서 선진국의 여러 제도를 받아들여 쫓아가기에 바빴다. 때문에 하나의 정책을 우리 것으로 만들기 위해 충분히 검토하고 모범사례를 만들어 제도로 정착시킨 사례가 별로 없다.

오늘날과 같은 직업교육의 큰 틀은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우리나라 특성화고 직업교육은 종국교육적인 관점을 갖고 있음에도 대학 진학을 허용하는 계속교육 제도를 포함하고 있다. 특성화고의 교육이 어떤 입장이어야 하는지 논란에 직면한 배경이다.

최근 직업교육과 관련한 새로운 정책으로 마이스터고, 국가직무능력표준(NCS), 도제와 일·학습 병행 등 선진국에서 좋다고 하는 거의 모든 제도가 도입되고 있다. 하지만 사회 여건이 미비하다 보니 현장에서 많은 혼란이 발생한다. 심하게 말하면 위에서 시키는 정책을 지침에 따라 시행하는 역할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나 제도라도 그 나름의 성공조건이 필요한데, 단지 결과만 보고 따라하니 성과를 내기 어렵다. 먹고사는 문제를 충분히 해결한 지금, 조급함을 버리고 일관된 정책을 세워 실행할 필요가 있다.

본질적 질문 : 교육(훈련)인가, 노동인가

현장실습은 교육(훈련)일까, 노동일까. 교육에 필요한 실습비를 부담하지 않고 실습(노동)에 따른 수당으로 임금을 받는다는 점에서 전혀 교육적이지 않다. 어느 기관이 교육생들에게 수당을 지급하며 교육을 진행하는가. 기업체에서 학생들에게 임금을 준다는 것은 현장실습이 노동이라는 사실을 방증한다. 더구나 일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사고(재해)를 보다 원활하게 해결하기 위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에서 근로관계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이뤄지고 있는 현장실습은 이름만 실습이지 교육(훈련)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현장실습을 교육적으로 바꿀 수는 없을까. 교육이 이뤄지려면 교육에 맞는 적절한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교육 프로그램과 이를 운영하는 인력이 있어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 엄청난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문제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비용이다. 대다수 특성화고 학생들이 실습에 참여하는 중소기업의 경우 이런 비용을 투자해 인재를 키워 낸다고 하더라도 그 인재가 더 나은 근무조건의 대기업으로 옮기게 되면 투자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현장실습이 교육적인 기능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론을 대신해

현장실습이 제대로 되려면 학교의 부족한 부분을 기업체가 보완해 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 여건에서 교육적인 형태의 현장실습은 불가능하다. 그러면 대안이 있는가. 대안으로 현장실습 파견을 12월부터 실시할 것을 제안한다. 실습을 하기 전까지 학교가 충실히 교육해서 능력 있는 기능인을 양성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실제적으로 12월이 되면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의 수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다. 기업 입장에서도 보통 3개월 정도의 수습기간이 필요하다고 보면 12월부터 졸업까지 대략 3개월간의 수습기간을 충족할 수 있다. 적절한 타협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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