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지심 공인노무사(법무법인 함께)

‘여성혐오’란 말이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있습니다. “여혐 남혐 구분 말고 모두모두 사이좋게 지내자”라는 말은 얼핏 보면 좋아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성들이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귀 기울이지 않고 이해하지도 못한다면, 어찌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까요.

‘혐오’라는 말은 상대방을 노골적으로 적대시하는 경우만 포함되는 것으로 생각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상대방의 사회적 위치를 일방적으로 정해 놓고 강요하며 그 범주 안에 있는 여성들만 칭찬한다면 그것 역시 여성혐오입니다. 여성들이 사회가 정해 놓은 범주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는 강박과 위협에 시달리기 때문입니다.

노동에서의 여성혐오 역사를 생각해 봅니다.

1978년, 민주노조를 만들기 위해 투쟁하던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에게 남성노동자들은 “건방지다”고 욕설을 퍼부으며 똥물을 투척합니다. 70년대 여성노동자들은 오빠나 남동생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본인 학업은 포기하고 구로동 벌집촌에서 새우잠을 자며 장시간 열악한 노동을 했습니다. 그러한 그들의 ‘희생정신’은 추앙받지만, 그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하면 이렇게 똥물까지 뒤집어쓰며 비난을 받습니다.

98년, 현대자동차 식당에서 일하던 여성들은 정리해고 저지투쟁에서 투쟁대오를 위해 열심히 밥을 짓고 ‘투쟁의 꽃’이라는 찬사를 들으며 함께 투쟁했지만, 협상 타결 과정에서 희생양이 돼 전원 정리해고 대상이 되고 하청노동자가 됩니다. 다시 제2의 싸움을 시작하는 그들에게 노동운동은 그렇게 차가울 수 없었습니다.

2007년, 기간제법 시행을 앞두고 일제히 해고를 당한 이랜드 여성노동자들이 역사에 남을 장기간 파업투쟁을 했습니다. 사측의 온갖 탄압을 이겨 내야 했던 그들은, 가정에서 부인이자 어머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또 다른 ‘탄압’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2016년, 여성의 사회진출이 많아져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올라갔다는 말이 나오고 ‘역차별’이라는 용어도 등장합니다. 그러나 성희롱과 유리천장이 만연한 노동현장에서 겨우 버티던 여성은, 임신·출산을 한다는 이유로 노동사회에서 배제되고 다시 들어가게 되더라도 제한된 업종, 제한된 고용형태, 저임금 일자리만 제시될 뿐입니다. 경력단절을 피하기 위해 일하는 여성은 남편에게 내조하지 못하고 아이를 방치한다는 죄책감에 끊임없이 시달려야 합니다.

여성은 사회에 진출하긴 했으나, 그 영역이 매우 제한적일 뿐 아니라 사적영역에서의 책임과 눈치는 온전하게 여성의 몫입니다. 우리는 여성혐오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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