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연봉제가 금융공기업을 넘어 민간은행을 덮치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불법 논란을 모른 체하면서 "금융공기업 성과연봉제 도입 완료"를 선언하더니 급기야 타깃을 민간은행으로 돌린 것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최근 열린 제4차 금융공공기관장 간담회에서 “금융공공기관들이 진통 끝에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만큼 이를 모델로 전체 성과중심 문화를 민간 금융권으로 확산하겠다”고 말했다.

민간은행을 회원사로 두고 있는 단체는 기다렸다는 듯이 컨설팅에 착수했다. 연구가 완료되면 은행별로 성과연봉제 도입 움직임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회장 하영구)는 올해 금융노조(위원장 김문호)와의 산별교섭에서 성과연봉제 도입을 핵심 요구안으로 내건 상태다.

'개별 성과측정 지표' 구하러 나선 은행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연합회는 이달 초 컨설팅업체와 계약을 맺고 회원사 성과연봉제 운영 지원을 위한 연구용역에 들어갔다. 연구용역 발주에는 대다수 시중·지방은행이 참여했다. 연구용역은 7월 말 완료된다. 연구용역의 목적은 성과연봉제 운영을 위한 개인별 성과측정 지표 발굴이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금융공기업이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상황에서 민간은행에도 꾸준한 요구가 있었다”며 “임금체계 변경을 위해 무엇을 기준으로 성과를 측정해야 하는지를 연구해 은행별로 적용할 수 있는 공통된 안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특수은행을 제외한 모든 은행이 연구에 참여한 것으로 보면 된다”며 “결과가 나오면 참여 은행들과 내용을 공유할 계획인데, 그대로 적용할지 여부는 은행별로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다.

민간은행들이 집단으로 성과연봉제 컨설팅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성과연봉제 도입을 추진하는 강도가 예년과 다르다는 얘기다.

현재 민간은행은 호봉제 기반 임금체계를 갖고 있다. 성과급이 연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 내외로 금융공기업의 절반 수준이다. 그나마 영업점 단위 집단성과평가다. 차등 폭도 크지 않다.

은행들은 판을 뒤집고 싶어 한다. 호봉제를 폐지하고, 개인별로 평가해 임금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 관계자는 “은행 이익은 떨어지는데 연공급제로 직원들의 임금만 오르면 금융산업이 지속가능하겠느냐”며 “고위직 무임승차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은행권 임금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은행권 노사관계 '폭풍 전야'

성과연봉제 도입을 놓고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가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것과 달리 개별 은행 노사관계는 예상외로 조용하다. 성과연봉제 도입과 관련해 구체적인 행보를 보이는 곳은 거의 없다. 산별교섭이 진척되지 않은 터라 개별행동을 자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KEB하나은행 관계자는 “성과연봉제와 관련해 자체적으로 하는 사업은 없다”며 “은행연합회 소속사들과 함께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주도 SC제일은행지부 홍보부장은 “민간에 성과연봉제를 확산하겠다는 예고에도 사측에서 특별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며 “노사 모두 산별교섭에 주목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우리은행지부 관계자도 “당분간 은행들이 다른 은행 동향을 살피는 눈치 보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관건은 최근 막이 오른 산별교섭이다.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는 지난 2일 산별교섭에서 노조에 호봉제 폐지와 성과연봉제 도입을 비롯한 4대 요구안을 제시했다. 노조는 요구안 철회를 촉구했다. 성과연봉제가 △불완전판매 증가 △협업 파괴 △저성과자 해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용자협의회 관계자는 “하영구 회장이 성과연봉제 도입 요구안을 철회할 의사가 없다는 뜻을 피력했다”며 “은행연합회 컨설팅이 완료되고 회원사들의 요구가 있을 경우 결과물이 교섭에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문호 위원장은 “불법이사회로 금융공기업에 성과연봉제 도입이 완료됐다는 것도 금융위만의 판단인데, 이를 민간은행까지 확산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교섭과) 법적 투쟁을 병행해 성과연봉제를 무효화하고 확산을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